아 옛날이여
지금이야 영화관에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지만 나 어릴 적에는 영화관이 많지 않았고 내가 흥미를 느낄 만한 영화가 없었기 때문에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명절은 내가 영화를 보는 특별한 기간 중 하나였다. 명절마다 영화가 편성에 많이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 OTT로 콘텐츠를 몰아보듯 영화를 많이 볼 수 있었다.
명절에 친가와 외가를 방문하듯 TV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는 영화가 있다면 성룡이 출연한 영화였다. 멋진 액션뿐만 아니라 코믹한 장면이 많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영화도 최신작보다는 1~2년 지난 영화를 많이 볼 수 있었는데 그 영화보다 내 기억에 남는 영화는 코미디언들이 주연으로 열연한 영화였다. ‘우뢰매’로 유명한 김청기 감독이 심형래를 비롯한 코미디언을 주연으로 세워 많은 어린이 영화를 제작했는데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코미디언들이 배우 못지않은 연기력을 선보였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영화는 <슈퍼 홍길동 2>다. 시리즈물이라 홍길동으로 연기한 배우가 자주 바뀌었는데 김정식이 출연한 두 번째 슈퍼 홍길동을 참 좋아했다. 왜 좋아했는지 기억을 더듬어보면 좋아했던 애니메이션이었던 <날아라 슈퍼보드>의 손오공 목소리와 비슷하게 들렸던 이유가 있고, 다른 홍길동보다 액션 연기와 장난꾸러기 같은 소년 연기를 참 맛있게 잘했기 때문인 것 같다.
무과 시험에 응시하기 위하여 한양으로 길을 떠나던 길동은 도중 공초 도사(임하룡)와 곱단(이혜진), 똘이(이규민) 남매를 만난다. 길동은 눈이 먼 곱단을 돕기 위해, 측근의 모함으로 귀양을 간 곱단 아버지의 누명을 벗겨주기 위해 공초도사와 함께 왜구 무사들까지 끌어들인 문제의 집단과 맞선다.
이 영화를 우연히 다시 보게 됐는데 어릴 때는 즐겨 읽은 동화를 다시 읽는 기분이었다. 책꽂이에 꽂아놓고 그 위치도 기억하지 못할 만큼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읽는 동화. 지금 나오는 영화에 비하면 모든 것이 부족할 수 있지만 보는 내내 재미있게 볼 수 있었던 것은 젊은 시절의 코미디언들과 그들의 허술하지 않은 연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농담과 겸손이 섞인 말이겠지만 배우 최민식이 코미디언들의 연기를 보며 연기를 배운다고 했던 말은 거짓이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코미디 영화, 어린이 영화라고 대충 장난처럼 만들었을 거라고 착각할 수 있지만 영화는 여러 가지를 시도했다. 홍길동의 도술은 애니메이션 효과를 활용해 보는 재미가 있었고 여러 소품을 활용한 것도 지금 CG 기술 발전에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홍길동이 미래를 넘나드는 장면, 공초도사인 임하룡과 당시 큰 인기를 누렸던 <쇼 비디오 자키>의 ‘도시의 천사들’이라는 코미디 코너를 활용하는 장면 등도 옛 생각을 나게 해 인상 깊었다.
유튜브 <김청기 엉뚱TV> 채널에 영화의 감독인 김청기 감독이 영화의 풀버전을 올려놨으니 옛날을 추억하고 싶다면 보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