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신입생이 되어 캠퍼스에 적응하기에도 정신없던 어느 날 〈현대 소설의 이해〉를 가르치시던 교수님이 문학기행을 과제로 내셨다. 과제에는 현대 소설과 관련된 어느 곳이든 상관없으나 대신 혼자 떠나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다. 수강생 대부분이 이제 겨우 성인이 된 직후였기에 혼자 여행을 떠나라는 교수님의 말에 강의실이 술렁거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별거 아닌 일이지만 당시에는 지금처럼 핸드폰 하나로 많은 정보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없던 시절이어서 대부분 여행지를 결정하는 것보다 어떻게 가야 하는지가 더 난감했다. 나 역시 혼자 떠나는 여행에 대한 부담으로 처음 계획했던 날에서 한 주가 더 지난 후에야 집을 나서 전주역으로 향할 수 있었다. 가방에는 소설 한 권, 노트와 펜, MP3 플레이어와 작은 디지털카메라가 전부였다. 홀로 플랫폼에 서 있던 순간까지도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막상 다가오는 기차를 보았을 때는 설렘과 호기심이 가득해졌다. 부모님이나 형 없이 떠나는 여행은 어린 시절에 상상만 하던 탐험을 떠나는 느낌이었다. 기차표에 적힌 도착지는 순천, 『무진기행』의 배경이자 김승옥 작가가 자란 곳이며 당시 작은아버지께서 살고 계시던 곳이었다. 순천은 그렇게 홀로 떠나는 나의 첫 여행지가 되었다.
작가의 모교를 방문한 후 죽도봉에 올라 낯선 도시를 내려다보았다. 처음 보는 이 도시는 긴 천을 품은 채 조용히 누워 있었다. 천변이 다음 천변으로 이어지는 내 고향과 달리 이곳의 천변에는 끝이 있다고 했다. 천변의 끝, 그곳은 순천만이었다. 할머니 댁이 있던 부안을 다니며 서해를 주로 보고 자란 내게 순천만은 생의 첫 남해였다.
갯벌이 펼쳐진 바다와 소설 속 뿌연 안개를 상상하며 버스에서 내렸건만 정작 나를 맞이한 건 광활하게 펼쳐진 갈대들의 흔들림이었다. 묵은 갈대의 갈색과 새로 난 갈대의 초록이 섞인 갈대밭은 부안을 오가며 보곤 했던 김제평야를 닮아 있었다. 하지만 평야 뒤에도 평야가 펼쳐져 있는 그곳과 달리 순천만은 자기 등에 바다를 업고 있었다. 당시는 본격적인 관광지로 조성되기 이전이었으므로 순천만은 지금보다 덜 인위적이었고 별다른 입구 없이도 들어설 수 있었다.
갈대를 만지며 걷고 또 걸으며 노래를 듣기도, 친한 형과 통화를 하기도 했다. 형이 내게 어떤 시를 썼냐고 물어본 기억이 있는 것으로 보아 순천만에서 시를 쓴 것 같기도 하지만 남아 있기는커녕 무슨 내용인지도 생각나지 않는다. 아마 문학기행에 왔다는 들뜬 기분과 드넓은 풍경에 취해 아무런 흔적조차 남기지 못한 글 몇 자를 썼었나 보다. 대신 대열을 이루어 흔들리던 수많은 갈대와 그 갈대의 흔들림으로 자기 모습을 선명하게 보여주던 바람은 기억 속 한 편에 선명히 남아 있다. 안개의 희미함 대신 갈대의 고요함을 마주한 나는 흙바닥에엉덩이를 깔고 갈대와 바람이 주고받는 움직임을 오래 지켜보았다. 한적한 그곳에서는 시간이 아닌 갈대와 바람만이 흐르고 있었다.
갈대가 노을빛을 받아 더욱 붉어질 때쯤 멀리서 낯선 소리가 들려왔다. 낯선 풍경 속 낯선 소리는 바람을 타고 멀리까지 흩어졌고, 흩어진 소리 끝을 물고 다시 낯선 소리가 바람을 타고 내게 다가왔을 때쯤 그 소리는 익숙한 소리로 바뀌어 들렸다. 갈대밭 반대쪽 멀리 조카를 데리러 온 작은아버지께서 내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갈대밭을 바라보고 작은아버지를 향해 뒤돌아 달려가던 순간, 어쩌면 갈대와 바람이 내게 말을 걸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훗날 너는 나를 보러 몇 번을 더 이곳에 올 거라고, 지금이 시작일 뿐 앞으로 홀로 이곳저곳을 여행하는 삶을 사랑하게 될 거라고.
순천, 내 여행의 고향. 내가 전주의 말씨를 끝내 버리지 못하고 있듯 이후 나의 여행지는 주로 순천만의 갈대밭처럼 고요함과 한적함을 가지는 곳이었다.
여행 전에는 귀찮은 과제를 내준 교수님에 대한 불만이 가득했으나 막상 떠나고 보니 미지의 즐거움이 펼쳐있었다. 어쩌면 교수님은 스무 살이 된 우리에게 추억을 선물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특별한 시기라고 수없이 들어왔지만 정작 특별한 일 없이 보내는 스무 살들이 대부분이 었으니 그 시절을 먼저 지나온 사람으로서 스무 살이라는 짧은 시기에 낭만을 더해주고 싶으셨을지도 모른다. 사람이 추억을 먹고 사는 존재라는 걸 알게 될 즈음, 자신의 스무 살을 떠올렸을 때 특별하게 떠먹을 수 있는 추억 만들어보기가 그 과제의 궁극적인 목적이었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이후로도 사랑하는 사람과 순천만 정원을, 유학을 떠나는 친구와 향일암을, 동료 선생님들과 갈대밭을, 때로는 홀로 작은 서점들을 찾아 순천을 다녀왔다. 그때마다 순천은 자신이 가진 소중한 곳을 하나씩 꺼내주었고 지난여름에는 천변에서 물놀이를 하는 사람들을 보여주었다. 사람들이 도시의 천변에서 물놀이를 하는 풍경이 너무나 오랜만이어서 깜짝 놀랐기도 했지만 이내 1급수의 물이 흐른다는 안내문을 볼 수 있었다. 부모와 자녀가 서로에게 물을 끼얹는, ‘하늘에 순하는 곳(順天)’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그 모습을 성남교에서 지켜보다 만약 전주나 대전이 아닌 다른 곳에서 살아야 한다면 그곳은 하늘도, 하늘 아래 풍경도, 그 풍경에 살아가는 사람들도 모두 순해 보이는 순천이었으면 했다.
스무 살로부터 이십 년이 지난 지금, 순천과 나는 조금씩 변해 있지만 순천에는 여전히 내가 좋아하던 풍경이 살아 숨 쉬고 있다. 그리고 그 풍경에는 나의 이십 대와 삼십 대의 추억이 남아 있어 순천을 찾아갈 때마다 과거의 나를 만날 수 있다. 마흔 살이 된 올해, 또 한 번 순천을 찾아가 그때의 과제만큼은 아닐지라도 한 번씩 떠올릴 수 있는 무언가를 갈대 사이에 두고 오고 싶다.
글, 사진 : 임성현
네이버 블로그 : 노을이 다 지기 전에
Insta : @always.n.allday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