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에 구멍 난 체 바리깡 사러 가기
앞으로도 계속 달리면서 기록을 해볼 생각이다. 숨이 가빠지면서 힘들어지고 멈추고 싶지만 뛰고 나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걸 알고 있다. 가쁜 숨이 주는 행복함을 잊어버린 채 살고 싶지 않다.
작은 동네에도 미용실쯤은 하나씩 다 있다. 옛날에 아버지 따라 불국사에 구석에 있는 미용실에 간 적이 있다. 이상한 달력이 걸려 있었지만 실력은 좋아서 아버지는 자주 가셨던 것 같다. 그래서 작은 동네의 미용실에 대한 의심은 많이 없는 편이다. 하지만 해외의 경우에는 달랐다. 내가 살고 있는 Weimar의 작은 도시에도 미용실은 있었다.
머리가 너저분해서 바람이 불 때마다 앞머리가 멋대로 헝클어져 모자를 쓰지 않으면 계속 날렸다. 하지만 이제는 잘라야 될 때가 온 것이다. 일단은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기 시작했다. 여기 미용실 어떠냐고. 돌아오는 대답은 절대 가지 말라는 것. 중학교 두발 정리할 때처럼 짧은 밤송이머리가 된 다는 것이었다. 외국인과 두상이 다르니까 잘 설명하면 되지 않을까? 어쭙잖은 영어, 독일어로 설명했다가는 대충 밀어버릴 것 같은 미용사의 표정이 그려진다. 그래서 나는 P양에게 부탁해서 머리를 잘라달라고 했다.
친구인 Y양도 남자친구 머리를 잘라준다고 했다. 그래서 Y양에게 이발기구를 빌렸다. 유튜브에 셀프컷을 찾아보고 이렇게 잘라달라고 P양에게 부탁했다. P양의 눈은 초롱초롱했다. 나를 인형처럼 꾸밀 수 있다는 거에 맑은 눈의 광인이 된 것이다. 영상을 보고 바리깡으로 옆머리를 신나게 미는데 점점 바리깡의 힘이 줄어드는 게 느껴졌다. 충전기를 급하게 꽂으려고 했지만 맞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게 옆머리에 구멍이 난 체 우리는 바리깡을 사러 갔다. 모자를 눌러썼지만 좌우 비대칭이 심했다. 그래도 P양과 돌아다닐 때는 단 둘이 지구에 있는 느낌이라 괜찮았다. 이왕 셀프미용으로 계속 이발해야 된다면 조금 괜찮은 제품으로 사야 될 것 같아서 길이 조절 탭 기능도 있고 부가적인 물품도 주는 세트 킷을 구매했다.
머리를 자르면서 뭔가 당했다는 느낌이었지만 그래도 잘라준 게 고마웠다. 처음 해보는 가위질과 이발이 쉽지는 않았을 텐데 조심스러운 바리깡의 움직임을 느꼈다. 코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것도 다 봤다. 그만큼 신경을 많이 써줘서 그런가 머리도 예쁘게 잘 됐고 미용사였던 동생에게 영상통화를 걸어 머리를 보여주니 잘 잘랐다는 칭찬도 해줬다. 뭔가 챙겨줘야 될 것 같은 P양은 항상 잘 해낸다. 멋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