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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선택

기준과 결과

또 걷고 싶어? 그냥 우리랑 있자.


예상보다 딱 3일 일찍 산티아고에 도착했다. 순례길 후반부로 갈수록 체력이 붙어서 하룻동안 걷는 거리가 초반보다 훨씬 늘어났다. 부지런히 걸은 덕분에 내게 3일이라는 시간이 더 주어졌다. 그리고 산티아고에 도착했지만 뭔가 아쉬웠다. 나는 더 걷고 싶었다. 그래서  땅끝마을인 묵시아까지 87km를 또 걷겠다고 동행들에게 말하자 위와 같은 반응이 나왔다. 이제 걷는 거 지긋할 때도 되었지 않느냐, 동행들끼리 더 먹고 놀며 여흥을 즐기자, 묵시아까지는 버스타고 가면 된다. 그러면 피니스테까지 더 볼 수 있다.... 그 제안에 솔깃하긴 했지만 결국 나는 떠나는 것을 선택했다. 선택의 기준은 하나였다. 5년 뒤에 내가 무엇을 더 후회할까.


살면서 선택의 순간은 너무 자주 찾아온다. 깃털처럼 가벼운 것부터 숨막히게 무거운 것까지 다양하다. 그때 나는 무엇이 더 좋은 선택일지 몰라서 우물쭈물하다가 주저앉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제법 요령이 생겨서, 정말  선택에 있어서 명쾌한 기준을 얻었다. 5년 뒤에 (너무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이다) 내가 무엇을 더 후회할까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면 적당히 현재에 만족스러우면서도 미래의 나에게 이로운 선택을 할 수 있었다. 현재와 미래 중요성에 적당한 밸런스를 유지한 선택. 고민이 많이 되거나 어려운 문제에서 이 기준을 적용한다면 해답이 비교적 쉽게 구해진다.


내가 아는 나라는 사람은, 동행들과 산티아고에서 더 못 논 것을 후회하는 게 아니라, 묵시아까지 더 못 걸은 것을 후회할 것이다. 5년뒤에 더 후회하지 않기 위한 선택기준을 적용하니, 결정은 어렵지 않았다. 열흘간 함께 지냈던 가족 같은 동행들을 산티아고에 남겨두고, 나는 여느때와 같이 새벽에 일어나 여느때와 달리 혼자 길을 나섰다. 출발하자마자 느껴지는 감정은 외로움이었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았다. 나는 내 선택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산티아고 도시 외곽으로 가자, 익숙한 순례길 표지석이 보였다. 남은 거리를 나타내는 숫자가 한참 줄었는데 다시 87km로 껑충 뛰었다. 허무하기는 커녕 감사했다. 걸을 수 있는 거리가 남아서.


걸으면서 계속해서 든 생각은, 인생은 정말 알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내가 레온에서 동행들을 만나 산티아고 도착할 때까지 계속 함께할 줄 꿈에도 몰랐다. 원래 계획보다 3일이나 일찍 도착해서 묵시아까지 갈 수 있는 여유가 생길 줄 정말 몰랐다. 인생은 절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어떤 변수가 생겨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전혀 모르기에 기대되고 설레는 이 여행은, 나에게 계속 등을 밀어준다. 더 걷지 않으면 후회할 거라면서. 어렴풋이 나는 느꼈던 것 같다. 이 길의 처음과 끝은 혼자여야 한다는 것을. 혼자서 이 길을 마무리하며 그동안의 경험을 반성을 시간이 필요했다. 때로는 함께, 때로는 혼자여야 했다. 이제부터는 혼자여야만 했다.


혼자 네그레이라 마을에 도착해서 샤워를 하고 빨래를 돌리려는데, 늘 언니오빠들과 돈을 나눠 냈던 세탁비가 세삼 혼자 내려니 부담스러웠다. 동행의 테두리가 그토록 안전하게 느껴졌는데, 이제는 내가 직접 부딪칠 차례였다. 옆에 있는 다른 순례자에게 용기를 내서 세탁기 함께 돌리자고 제안을 했다. 순례길 초반의 나라면 쑥쓰러움에 결국 혼자서 돌렸을텐데, 이제 제법 먼저 다가가고 말을 거는 게 어색하지 않았다. 흔쾌히 제안은 수락되었고, 반값에 세탁기를 돌릴 수 있었다. 이게 뭐라고 여태 어려워했을까 싶다. 이제 익숙해지려니 이 길이 이틀뒤면 끝난다는 것에 아쉬웠다. 바셀린을 떡칠하고 양말을 한겹만 신는 물집 철벽수비 비법도 깨달았는데, 써먹을 날이 이틀밖에 안남았다. 반박자(아니다, 이정도면 세박자 정도) 늦는 게 늘 아쉽다.



내가 늦게 시작한 것은 하나 더 있다. 걷다가 화살표나 표지석에 적혀진 글귀들을 읽고 감동을 받기도 하고 힘이 나기도 해서, 나도 꼭 그런 메시지를 남기고 싶었는데 펜이 없었다. 펜을 사고 싶다고 생각은 했으나 마땅히 살 기회가 없었는데, 드디어 네그레이라 마을의 중국마트에서 마카를 샀다. 순례길 끝나기 이틀 전에 나는 마카를 살 수 있었고, 순례길 끝나기 하루 전날 숨이 턱 막히는 막강한 오르막을 오르다 쉼터에서 숨고르며 벤치에 글귀를 남길 수 있었다. 뭐라고 쓸까 고민을 하다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뮤지컬의 트랙 제목을 썼다. ‘’Just be who you wanna be” 네가 원하는 모습이 그냥 되어라. 순례자들에게, 그리고 내 스스로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다. 맑은 눈빛을 갖고, 해사한 미소를 지으며, 단단한 내면을 가진 그런 사람이 되길.... 진심을 담아 꾹꾹 눌러썼다.


그 날, 또 하나의 특별한 경험을 했다. 새벽 일찍 일어나 걸어서 온통 주변이 깜깜했다. 가로등 하나 없은 산길을 혼자 걸으려니 무지 무서웠다. 내일은 해 뜬 뒤에 출발하겠다는 생각만 하면서 도저히 무서워서 안되겠다고 빨리 산길이 끝나기만을 바라며 걷다가 마주쳤다. 까만 밤에도 유난히 눈에 띠던 하얀색 털을 가진 조그만 여우가 내 앞에 있었다. 그 당시에는 여우라고 확신을 했는데, 지금은 설마 진짜 여우일까? 큰 고양이를 여우라고 착각한 건 아닐까? 의심이 들기도 한다. 어쨌든 녀석을 만나자마자 무서움이 깨끗하게 사라졌다. 해리포터에 나오는 패트로누스처럼 디멘터로부터 나를 보호해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뭔지 모를 동물은 곧 산으로 사라졌고, 나는 다시 걸었다. 두려움이라곤 전혀 없이.


디멘터를 유일하게 무찌를 수 있는 패트로누스 마법을 사용하려면 행복한 기억을 떠올려야 한다. 강렬한 행복한 기억은 어둠과 불행을 물리칠 수 있다. 나는 어찌됐건 선택의 순간에 나를 가장 존중할 수 있는 결정을 내렸고, 그 덕분에 행복한 기억을 듬뿍 얻을 수 있었다. 살다보면 힘들때가 분명 올 것이다. 반드시. 그럴 때, 우울감에 빠져서 낙담한 나를 구원해주고 싶을 때,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던 그 기억을 떠올릴 것이다. 순도 높은 행복감을 경험할 수 있었던, 씩씩하게 걷는 나 자신이 근사하게 느껴졌던 그 때를 떠올릴 것이다. 한때 그렇게 스스로에게 만족스러웠던 멋있는 때가 있었음에 위안을 받고, 다시 그 모습을 되찾으려고 노력할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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