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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지 Jan 28. 2016

11. 맥주거품 사이로

서핑대회 관람

1.

드디어 새로 산 웻수트를 입을 때가 됐다.

비키니 수영복을 입고

그 위에 입을 웻수트를 꺼냈다.


캐러반 안에서 입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서핑숍 탈의실에서 입던 상황이

한 번 더  재연되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더 요란하게 입어야 했다.


'그새 살이 쪘나?'

침대에  걸터앉아 발을 넣어 보다가 안 되자,

침대에 누워 겨우 발을 넣었다.

그마저도 더 추켜올려야 해서

캐러반 안을 콩콩 뛰어다녀야 했다.

그렇게 해서야 겨우 웻수트 안에 들어 갈 수 있었다.*


웻수트 안에 들어간 후

신용카드, 썬스틱, 먹던 탄산수, 돗자리, 핸드폰을 챙겨

캐러반을 나왔다.


해도 강하고

그늘이 없는 곳이라

선글라스를 쓰고 비치타월을

뒤집어쓰고 걸어가야 했다.

자갈밭도 통과해야 하니

아쿠아슈즈를 신고 나갔다.


아쿠아슈즈.

워터파크를 자주 가려고 초여름에 산 것이었다.

여행가방과 아쿠아슈즈를 비롯한 많은 것들이

서핑을 중심으로 바뀌어 있었다.


물밖에서의 서핑 패션**/ 하조대 서피비치 2015년 10월/ 출처: 김은비


*웻수트의 손목, 발목 부분을 뒤집고 입으면 더 쉽게 입을 수 있다.

**(풀수트 기준으로) 보통의 경우 물 밖에선 웻수트가 답답해 상의에 해당하는 부분을 벗고 다닌다.  이때, 피부 화상을 입기 쉬워서 비치타월이나 옷, 수건 소재로 만들어진 후드 망토를 입고 다닌다.  직사광선뿐이므로 선글라스도 필수. 신발은 모래를 털어내기 쉬운 쪼리를 신는 게 보통이다. 서퍼용으로 나온 강력한 썬크림과 썬스틱 역시 필수이다.



2.

사무실에서

서핑보드 오후 대여를 신청하고

캐러반의 열쇠를 맡겼다.*


"제5회 KPSA 서핑대회"

얘기 듣던 대로 해변은

서핑 대회가 한창이었다.


대회를 맞아 방문한 서퍼들로

9월이라는 시기가 한 여름처럼 느껴졌다.


서핑 용품이나 스케이트보드 업체가

한켠에 스폰서 부스로 자리 잡고 있었고,

전국의 서핑스쿨의 깃발들도

강한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진하게 그을린 피부를 가진 서퍼들이

해변에 앉아 대회를 관람하고 있었고,

바다에선

대회를 치르는 서퍼들이 여럿 있었다.


처음 보는 분위기와 광경.

초보 서퍼인 나를 위축시키기에 충분했다.


*웻수트 중에 '열쇠 주머니'가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날 그 기능의 필요성을 알았다. 보통 웻수트 설명에선 자동차 열쇠를 넣으라고 한다.


서핑대회 관람중인 서퍼들/ 하조대 서피비치 2015년 9월/출처:김은지


 대회에 참가한 서핑스쿨들의 깃발들. 참가자들의 서핑보드들이 바닥에 놓여 있다/ 하조대 서피비치 2015년 9월/ 출처:김은지



3.

개인적으로 온 서퍼들이 서핑할 수 있는 구역은

대회 중인 구역을 통과해야 했다.


한쪽엔 서핑보드,            

한쪽엔 소지품 뭉치를 들고

서핑 대회장을 두리번거리며 걸어갔다.


이날,

서핑을 하기엔 파도가 좋지 않았다.

바람은 거칠었고,

생기는 파도라곤 모두 '맥주 거품'*같은 것들 뿐이었다.

(2번 글 첫째 사진 파도 모양 참조)


하얗고 커다란 파도 사이로

대회 참가 중인 서퍼들이 작게 보였다.


라인업에 앉아 파도를 기다리던 서퍼들이

큰 너울에 패들해 나오고,

그중 가장 먼저 파도를 잡은 서퍼가

테이크오프를 했다.


파도에 익숙하게 대처하는 서퍼의 모습이

너무도 멋져 보였다.


서핑대회 때문에 받았던

위압감은 사라지고

대회 중인 서퍼들의 모습에

걸음을 멈추게 되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


나도 나름 서퍼라고

서핑대회가 매우 흥미로워 보였다.


*맥주 거품 파도: 보통 서퍼들은 파도가 제일 높은 지점(피크Peak)부터 부서지면서(브레이크Break) 양쪽 혹은 한쪽으로 결을 만드는 경향을 가진 파도를 탄다. 하지만 이렇지 못하고 파도 전체가 한꺼번에 거품을 많이 만들면서 부서지는 것을 보통 '맥주 거품' 같다고 한다. 이 안 좋은 파도에서 테이크 오프를 성공하면 '맥주 거품 탄다'고 한다.



4.

내가 이제 파도를 볼 줄 알게 된 건진 모르겠지만

여튼 내 인생에서 파도가 이런 모양으로 부서지는 건 처음 보는 것 같았다.


내 눈엔 그냥 하얗게 거품만 보였다.

나라면 어느 시점에 테이크오프 해야 하는 지도 모를 텐데

참가자들은 용케 테이크오프를 해냈다.


서핑대회가 재밌었던 건

테이크오프 하기 위해 조심히 일어나는

서퍼들의 모습 때문이었다.


내가 서핑 연습하는 곳에서

숙련자들은 파도를 어떻게 대하는지를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파도 타는 서퍼. 오른쪽에 테이크오프 중인 서퍼도 보인다/ 하조대 서피비치 2015년 9월/ 출처: 김은지



5.

일이던 서핑이던

선생님이나 숙련자가

가르쳐주는 방법 외에

결국 나에게 맞는 방법이 따로 있는 경우가 있다.


나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 가는 것이 연습, 학습인데
서핑대회가 나에게 좋은 교재가 되어 주었다.


단박에 팝업-테이크오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파도를 잡아도 주행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는 것,

파도가 어떤 모양일 때 테이크오프 해야 하는지 등을

생생히 보고 배울 수 있었다.


서핑대회를 관람한다는 게

아니,

운동경기를 관람한다는 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이 날 절실히  체험할 수 있었다.



6.

(내가 봤을 때)

대회는

서퍼가 파도를 잡고 파도가 소멸 될 때까지

라이딩Riding*해야 통과되는 방식이었다.


조건이 안 좋아서인지

참가자 대부분은 테이크오프에 실패했고

테이크오프를 성공해도

이내 물에 빠지고 말았다.


악조건을 극복한 몇몇의 서퍼들은

다음 날  예정된

결선에 올라가게 됐다.


결선에 올라간 서퍼가 호명되자

다음 날도 경기를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핑 대회 관람의 재미를 느끼고는

하루 더 경기를 볼 수 있다는 게 기쁘게 느껴졌다.


*라이딩Riding: 테이크오프 후 주행하는 것. 해석 그대로 파도 '타기'.


한 서퍼가 '세탁기'** 당하고 계신다/ 하조대 서피비치 2015년 9월/ 출처: 김은지


서핑 경기가 끝남을 알리는 빨간 깃발. 사이렌도 울린다/ 하조대 서피비치 2015년 9월/ 출처: 김은지


**세탁기: 서퍼가 물에 빠져 파도에 거칠게 휩쓸렸을 때 '세탁기 당했다.' 등으로  표현한다. 이때, 종종 서핑보드가 파도 밖으로 발사되기도 한다. 당해봤는데 정확히, 세탁기 속 빨래가 된 기분이 든다.




다음 글, 2016년 2월 3일(수) 발행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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