웻수트
1.
오픈서퍼 코스를 마치고
다시 출근.
사무실에 앉아있어도
내 몸과 마음은
여전히 서핑 중이었다.
서울 날씨가 맑으면
그 시간이 아깝게 느껴졌다.
'오늘같이 날씨 좋을 때 서핑하면 얼마나 좋을까!'
2.
사무실에서,
집에서.
틈 나는 대로
서핑에 대해 인터넷 검색을 했다.
'앞으로 갈 수 있는 날들,
경로와 일정,
내가 가진 예산,
서핑에 드는 비용...'
3.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드는 생각.
다음 서핑은
아무리 빨라도 9월 말.
올해,
서핑을 얼마나 더 갈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이미 웻수트 없인
서핑이 불가능한 날씨.
'수상스키도 타고,
서핑도 할려면...'
고민이 끝나기도 전.
이미 나는
구입을 위해
웻수트에대해 공부하고 있었다.
결국
그분이 오셨다,
지름신!
4.
취미를 시작했을 때,
기초 장비를 갖추는 것 또한
즐거운 일 중 하나 아니겠는가?
그 날 저녁,
나는 나의 쇼핑 멘토인
내 동생과 서핑숍에서 만나기로 했다.
웻수트를 살 거란 말에
기함하는 동생.
서핑에 대한
나의 미친 추진력에
동생이 어이없어했다.
5.
일단 오프라인 매장을 가보기로 했다.
물론 온라인으로 사면 편하다.
하지만 처음 웻수트를 사보는 거라
매장 직원분에게
웻수트의 선택 방법 등을
직접 조언받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핑숍이 여러 군데 있지만,
사는 곳과 비교적 가깝거나
활동 반경과 겹치는 곳을 우선으로 가보기로 했다.
직접 샀을 때
교환, 환불, 수선, 추가 구매 등이 비교적 편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결정한 곳이 홍대의 한 서핑 샵이었다.
6.
쇼핑 감각이 없는 나는
친동생을 쇼핑 멘토로 모시고 있다.
내가 쇼핑을 재미없어하는 데에다가
'편한 옷' 위주의 구매를 일삼다
필요한 옷을 구비해 두지 못해
곤란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서핑숍에서 만난 쇼핑 멘토님은
나에게 다시 한번 물으셨다.
"언니, 웻수트 꼭 사야겠어? 빌려 입으면 안 돼?"
나는 당연히 사야만 한다고 했다.
쇼핑 멘토라도 지름신은 못 이기는 법이니까.
7.
방문 당시 서핑숍에는
각양각색의
수영복과 래시가드, 어패럴류의 제품들이
2 개층에 가득 걸려있었다.
다양한 선글라스를 비롯한
관련 용품들도 눈에 들어왔다.
웻수트를 사러 왔다는 말에
아래층 구석으로 안내해주시는 사장님.
생각보다 디자인이 한정적이었다.
이에 나는 쇼핑 에너지가 한 풀 꺾여
남은 것 중에서 괜찮은 게 있나 살피며
동생과 행거를 뒤적였다.
몇 가지 안 되는 종류였지만
제품 특징이 분간이 안 갔다.
우리가 도움을 청하자
얼른 와 도와주시는 사장님.
8.
사장님은
여름 동안 서핑을 배우고
서핑에 빠진 사람들이
보통 9월에 웻수트를 사러 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하셨다.
그런데 9월 중순은
신상품은 소진되고
재고 할인이 주를 이루는 기간이라 하셨다.
보통 신상품은 11월은 돼야 들어오기 시작하고 말이다.
그 말씀에 또 한번 꺾인 나.
나는 올해 남은 기간 입을 웻수트를
재고 중에 골라야만 했다.
사장님은
수상스키, 서핑 시 입을 수 있는 제품 중
10월 강원도 양양 바다 수온에 맞는 것으로
4/3mm 풀수트Fullsuite*를 추천한다고 하셨다.
수상스키만 탈 경우,
수온이 바다보다 높아
두께 2mm 내외의 웻수트가 좋지만,
10월 양양의 동해바다 수온엔
얇은 두께라고 하셨다.
그리고 투피스일 경우
서핑 시 웻수트 안으로
바닷물이 너무 많이 유입돼
체온 유지가 제대로 안 된다고 하셨다.
미안하다며 나의 체중을 물어보시는 사장님.
키와 체중을 기준으로
웻수트의 사이즈가 결정되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4/3mm 풀수트: 보통 [사삼 미리 풀수트]라고 읽는다. 일단 상의와 하의가 붙어있는 점프슈트 형태의 웻수트를 '풀수트'라고 부른다. 웻수트의 전체 두께가 4mm이고, 움직임이 많은 부분과 얇아야 입기 쉬운 부분 등을 3mm로 제작한 경우 4/3mm로 표시한다.
9.
사장님께 내가 알던 사이즈를 말씀드렸는데,
대여점에선 입고 벗기 쉽게
일부러 큰 사이즈를 빌려준다고 하셨다.
게다가 브랜드마다 사이즈 기준표와 명칭이
제각각이라고 하셨다.
할 수 없이 오픈한 나의 체중.
사장님은 내 체중을 아시고는
사이즈를 추천해 주셨다.
4/3mm 두께에
풀수트고
내 사이즈가 남은
재고품은...
딱 한 벌 뿐이었다.
처음부터 선택이란 없었던 것이었다.
할 수 없이 받아 든 한 벌의 풀수트.
보기만 해도 전혀 맞지 않을 것 같았다.
너무 작아 보이는 풀수트였다.
사장님과 동생은
물 속에서 입는 옷은 원래 그렇다며
얼른 탈의실에서 갈아입어 보라고 했다.
10.
풀수트를 탈의실에 들어가 입어보는 데
내 사이즈라는 걸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꽉 끼어 들어가지 않았다.
입어보다가 땀이 날 정도였다.
탈의실에서 낑낑대자
사장님은 들어가면 일단 된 거라고 말씀하셨다.
겨우 입고 나가긴 했는데
풀수트가 작아서
서있으면 팔이 절로 공중에 떴다.
조만간 숨도 막힐 것 같았다.
온라인에서 샀다면
이 사이즈는 교환감이었다.
하지만 이게 맞는 거라는 사장님.
풀수트 입고 물에 들어가면
수트가 물을 먹어서 늘어진다고 하셨다.
내가 혼자 입고 지퍼까지 올릴 수 있다면
맞는 거라고 하셨다.
11.
결국 한 가지의 풀수트만 입어보고 사왔지만
직접 가서 사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장님께서 쇼핑 멘토가 못해 줄 조언을 많이 해주셨으니까.
웻수트 쇼핑까지 완료.
이제 주말만 기다리면 된다!
1. 다음 글, 2016년 1월 20일(수) 발행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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