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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지 Jan 06. 2016

8. 파도가 나를 밀어준다

입문-오픈서퍼

1.

이날 코스의 교육 사항은

모두 끝났다.


지금부턴 자율학습.

오늘 배운 걸

총동원할 차례가 왔다.


파도를 살피다가

파도가  시작되면 뒤로 돌고,

서핑보드 위에 납작 엎드려

열심히 패들*하고 스탠딩,

그리고 테이크 오프!


이제 막 배운 것이기도 했지만

근력이 현저히 달리는 상태인지라

테이크 오프까지의 과정을

버벅이기만 했다.


이 과정들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질 때까지

테이크 오프는 요원해 보였다.


*이때 서핑보드 속도를 더 높이기 위해 무릎을 구부려서 일부러 무게 중심을 앞으로 하기도 한다.



2.

'나는 나의 운동신경을 안다.

오늘 내로 테이크 오프는 안 될 예정이다.'


참 잘 포기하는 나는

이 날의 코스가 끝날 때까지

'서핑보드에 앉아 뒤돌기'만 연습하기로  마음먹었다.


...


그것도 잠시,

잘 되는 기술이래도

이내 싫증이 났다.


결국 연습하셔야 느는 겁니다!


교육 끝무렵에 강사님이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일이던

취미던,

항상 대면하게 되는 지점.


편하게 대충해서 지금에 머물 것인가,

지금보다 노력해서 한 단계 나아갈 것인가.



3.

지금 생각해 보면

한 과정 더 연습해 보는 것에

무슨 생각이 그리 많았었나 싶다.

그냥 시키는 대로 할 것이지.

단순하게.


돌이켜보면

본능 적으로,

서핑이라는 취미를

쉽게 포기할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4.

테이크 오프까지의 과정을

마저 연습하기로  마음먹었다.


'파도치'인 나로선

'뒤돌기'이후 어찌할 바를 모르는 상태였다.

스탠딩 하자마자 빠지는 것도 문제였다.


바다에서 나가지 않고

두 교육생을 봐주시던 강사님이

열심히 코치해 주셨다.


'패들, 패들, 패들~'

나는 강사님의 구호에 맞춰

패들하기 바빴다.

이후 종종 강사님의 '업'소리가

아련하게 들리긴 했지만 그 뿐이었다.


아무래도 내가 파도의 속도를

못  따라잡고 타이밍을 놓쳐서

그런 것이었을 것이다.


나름 '업' 구호에 맞춰

재빨리 스탠딩 했다고 생각했지만

이내 퐁당 빠지고 말았다.


안 되는 걸 붙잡고 있는 건 아닐까.



5.

'업!'


강사님의 강한 구호에 나도 모르게 스탠딩!


울렁!하는 기분에

강사님이 나의 서핑보드를

뒤에서 밀어주시는 줄 알았다.


아니었다.

강사님은 아직도 멀리,

서핑보드 위에 앉아 계셨다.


그건 바로 '파도가 밀어준 것'이었다!



6.

'파도가 밀어준다.'


서핑  첫날이었던 서핑 체험 때부터 듣던 말.

이 말이 그렇게 멋진 말인 줄 몰랐다.


'파도가 밀어주는 느낌'은

파도를 '사람처럼' 느끼게 해주었다.


두발자전거 타는 법을 배울 때

처음엔 누군가가 뒤에서 잡아줘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타는 것에  익숙해진다.

그러다 문득 뒤돌아 봤을 때

잡아주던 사람이 멀리 있었다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된다.


파도가 밀어줄 때의 느낌이

자전거 타기의 경험과 비슷했다.


어떤 '존재'가 나를 도와주는 것 같았다.


출처: 아래(각주2) 참조



7.

스스로 예상했듯이

이 날 나는 테이크 오프를

성공하지 못했다.

하지만

'파도라는 존재'를 경험하고

서핑이란 스포츠에 '감명'을 받았다.


이전까지

스포츠라는 건

건강, 유희 정도의 의미였다.

하지만 이 날, 

스포츠라는 것이

사람에게 어떤 '영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체감하게 되었다.


파도는 어떤 예술 작품보다도 위대했다.



8.

더 이상

멋있는 서퍼,

화려한 취미의 문제가 아니었다.


'파도'를 더 '만나고 싶었다'.


신이 나서 리조트 사무실로 가

연습할 때 필요한 사항들에 대해 물어봤다.


그런 후 서핑협회 등록  서류를 작성하는데

직원분은 내가 신난 게 보이셨는지

벽에 있던 포스터를 가리키셨다.


"다음 주에 서핑대회 나가보세요."


그 농담에 나는

테이크 오프도 못하는데

무슨 출전이냐며 웃었다.

사실, 속으로는

대회 때문에 서핑 연습 못할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당시 벽에 붙어있던 서핑대회 포스터/ 2015년 9월/ 출처: 한국서핑협회 페이스북(URL아래 연결)




1. 다음 글, 2016년 1월 12일(화) 발행 예정.

2. 6번 아래 사진 출처 클릭

3. 8번 아래, 서핑대회 포스터 출처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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