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문-오픈서퍼
1.
이날 코스의 교육 사항은
모두 끝났다.
지금부턴 자율학습.
오늘 배운 걸
총동원할 차례가 왔다.
파도를 살피다가
파도가 시작되면 뒤로 돌고,
서핑보드 위에 납작 엎드려
열심히 패들*하고 스탠딩,
그리고 테이크 오프!
이제 막 배운 것이기도 했지만
근력이 현저히 달리는 상태인지라
테이크 오프까지의 과정을
버벅이기만 했다.
이 과정들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질 때까지
테이크 오프는 요원해 보였다.
*이때 서핑보드 속도를 더 높이기 위해 무릎을 구부려서 일부러 무게 중심을 앞으로 하기도 한다.
2.
'나는 나의 운동신경을 안다.
오늘 내로 테이크 오프는 안 될 예정이다.'
참 잘 포기하는 나는
이 날의 코스가 끝날 때까지
'서핑보드에 앉아 뒤돌기'만 연습하기로 마음먹었다.
...
그것도 잠시,
잘 되는 기술이래도
이내 싫증이 났다.
결국 연습하셔야 느는 겁니다!
교육 끝무렵에 강사님이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일이던
취미던,
항상 대면하게 되는 지점.
편하게 대충해서 지금에 머물 것인가,
지금보다 노력해서 한 단계 나아갈 것인가.
3.
지금 생각해 보면
한 과정 더 연습해 보는 것에
무슨 생각이 그리 많았었나 싶다.
그냥 시키는 대로 할 것이지.
단순하게.
돌이켜보면
본능 적으로,
서핑이라는 취미를
쉽게 포기할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4.
테이크 오프까지의 과정을
마저 연습하기로 마음먹었다.
'파도치'인 나로선
'뒤돌기'이후 어찌할 바를 모르는 상태였다.
스탠딩 하자마자 빠지는 것도 문제였다.
바다에서 나가지 않고
두 교육생을 봐주시던 강사님이
열심히 코치해 주셨다.
'패들, 패들, 패들~'
나는 강사님의 구호에 맞춰
패들하기 바빴다.
이후 종종 강사님의 '업'소리가
아련하게 들리긴 했지만 그 뿐이었다.
아무래도 내가 파도의 속도를
못 따라잡고 타이밍을 놓쳐서
그런 것이었을 것이다.
나름 '업' 구호에 맞춰
재빨리 스탠딩 했다고 생각했지만
이내 퐁당 빠지고 말았다.
5.
'업!'
강사님의 강한 구호에 나도 모르게 스탠딩!
아니었다.
강사님은 아직도 멀리,
서핑보드 위에 앉아 계셨다.
그건 바로 '파도가 밀어준 것'이었다!
6.
'파도가 밀어준다.'
서핑 첫날이었던 서핑 체험 때부터 듣던 말.
이 말이 그렇게 멋진 말인 줄 몰랐다.
'파도가 밀어주는 느낌'은
파도를 '사람처럼' 느끼게 해주었다.
두발자전거 타는 법을 배울 때
처음엔 누군가가 뒤에서 잡아줘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타는 것에 익숙해진다.
그러다 문득 뒤돌아 봤을 때
잡아주던 사람이 멀리 있었다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된다.
파도가 밀어줄 때의 느낌이
자전거 타기의 경험과 비슷했다.
어떤 '존재'가 나를 도와주는 것 같았다.
7.
스스로 예상했듯이
이 날 나는 테이크 오프를
성공하지 못했다.
하지만
'파도라는 존재'를 경험하고
서핑이란 스포츠에 '감명'을 받았다.
이전까지
스포츠라는 건
건강, 유희 정도의 의미였다.
하지만 이 날,
스포츠라는 것이
사람에게 어떤 '영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체감하게 되었다.
파도는 어떤 예술 작품보다도 위대했다.
8.
더 이상
멋있는 서퍼,
화려한 취미의 문제가 아니었다.
'파도'를 더 '만나고 싶었다'.
신이 나서 리조트 사무실로 가
연습할 때 필요한 사항들에 대해 물어봤다.
그런 후 서핑협회 등록 서류를 작성하는데
직원분은 내가 신난 게 보이셨는지
벽에 있던 포스터를 가리키셨다.
"다음 주에 서핑대회 나가보세요."
그 농담에 나는
테이크 오프도 못하는데
무슨 출전이냐며 웃었다.
사실, 속으로는
대회 때문에 서핑 연습 못할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1. 다음 글, 2016년 1월 12일(화) 발행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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