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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지 Feb 03. 2016

12. 트러블 메이커

조류

1.

대회 예선전을 보던 나는

멈췄던 걸음을 다시 옮겼다.

신나고 재밌는 구경이긴 하지만

남 잘하는 거 구경하다가

내 실력 키울 시간을 놓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서핑에 빠진 사람이 나 혼자인 줄 알았는데

서핑 시즌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 서핑 오신 분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그동안 몇 차례 방문한 서피비치는

혼자 서핑을 온 데에다

비시즌으로 인적이 드물어

고독과 쓸쓸함을 종종 느끼게 했다.

하지만 이날은 서핑 대회 탓인지

전보단 많은 서퍼들이 해변에 있었다.

다른 서퍼들과 통성명하고 서핑하는 건 아니었지만

서핑에 열심인  그분들 덕분에

'고독한 서퍼' 신세를 면하게 됐다.


좋지 않은 파도임에도

서퍼들은 각자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맥주 거품'도 탈 수 있는 숙련자들은 아니었다.

하지만 남녀를 불문하고,

두껍게 바른 선크림 밑으로 보이는

진하게 그을린 얼굴이

서핑 연습에 꽤 많은 시간을 할애해 왔음을 짐작케 했다.


투박한 풀수트, 그을린 얼굴의

순수해 보이는 서퍼들 뿐이었다.


개인적으로 서핑을 연습하던 서퍼들/ 하조대 서피비치 2015년 9월/ 출처: 김은지



2.

'오늘은 테이크오프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준비 운동을 하는 내내

테이크오프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파도가 서퍼를 밀어주는 건 이제 알겠으니,

나도 서핑대회 선수들처럼

시원하게  라이딩해보고 싶었다.


일단 라인업까지 가야 한다.

가는데...

가고자 하는 지점과

자꾸 멀어져만 갔다.

나는 앞으로 간다고 생각하는데

자꾸 옆으로 밀려나고 있었다.


몇 차례 서핑을 오면서 느끼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패들 실력이 좋지 않으니

바다 위에 떠다니는 미역처럼

나는  계속 라인업에서 멀어지기만 했다.


부표까지 패들 해서 다녀오기


서핑 체험을 진행하신 강사님이

패들이 서핑의 가장 기초적인 부분이라며

알려주신 훈련 방법이었다.

이런 방법이 무슨 소용인지는

이날에야 알게 되었다.


이날 나는

테이크오프가 문제가 아니라

일단 부표까지 가는 게 급선무였다.



3.

강사님들이 '조류'에 대해 언급하실 때

'파도'에 대해서만 생각했던 나였다.


부표라는 지점을 설정하고

하염없이 패들 하면서

조류한테 호되게 혼나는 기분이었다.

로컬한테 조류 사정을 왜 물어봐야 하는지,


조류 파악 안 하고 바다에 들어가면 어떻게 되는지
이 날 아주 뼈저리게 느꼈다.



4.

겨우겨우 라인업에 도착.

힘들게 라인업에 도착한지라

몇 분간은 서핑보드에

엎드려 쉬었다.


짧은 쉼이 끝나고

다른 서퍼들처럼

서핑보드 위에 앉아

파도를 향했다.


너울, 파도의 모양은

해변에서 관찰하던 것과

라인업에서 보는 것과 달랐다.


해변에서 보던 파도 모양은

너울부터 파도의 소멸까지 잘 보였는데

라인업에서 파도를 보니

변화가 더욱 극적으로 보였다.

내 곁을 지나던 작은 너울이

금세 큰 파도로 변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느 나비의 날갯짓이 토네이도가 될지 맞혀야 하는 기분이었다.


...


라인업에서의 막연한 관찰이  계속되었고

나는 그렇게

조류에 떠내려갔다.


조류는 라인업에도 있었다...




5.

조류와의 싸움과

몇 차례의 스탠딩 실패로 인해

수트안으로 물이 들어왔다.

바닷물이 코로 귀로 들어가는 마당에

꽉 끼는 웻수트라고

별 수 있었겠냐만은.



6.

휴식이 필요했다.


이마저도 거친 파도 때문에

해변으로 나오는 것마저 쉽지 않았다.


거친 맥주 거품이

쉽게 보내 주기라도 하면 좋으련만

서핑보드 위에 엎드려

패들 해 나가려는 나를 자꾸 덮쳤다.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파도는 해변의 모래와 함께

내 서핑보드를 자꾸 쓸어갔다.

쉬겠다는 일념으로

쓸려가려는 서핑보드의 리시를 꽉 붙잡았다.

그렇게

버티는 개를 끌고 가듯

서핑보드를 바다에서 끌고 나왔다.


마지막 힘을 끌어보아

놓아두었던 짐 앞에 서핑보드를 뒤집어 놓았다.

털썩 앉아 답답한 웻수트의 윗부분을 벗었다.

...

웻수트 안으로 물이 가득 들어왔다고 생각했는데

느낌이 그게 아닌 것 같았다.

땀이었다.

웻수트 안은 땀 때문에 미끈거렸다.


웻수트를 입고도 추울 것 같았던 9월.

나는 한 시간 정도의 시간 동안

땀을 뻘뻘 흘리며

바다와 씨름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색깔있는 자외선차단제(버트라- 코나골드 사용)를 바르면 서핑하다 차단제가 지워졌는지 확인할 수 있다.(어머, 뒤에 '시강')/ 하조대 서피비치 2015년 9월/ 출처: 김은지




다음 글, 2016년 2월 8일(월) 발행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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