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키지 시장에서 찍은 사진을 보내주기 위해서 케스케에게 이메일을 보낸 지 2주가 지났다. 본문은 그간 소설을 쓰기 위해 노력해온 내용, 푸념과 자아비판, 그렇게 도와줬는데도 소설을 완성시키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로 채워졌다. 그런데 아직도 답장이 없었다. 사진만 보낼 것을 괜히 쓸데없이 소설에 대한 무거운 소식을 전하는 바람에 좋은 친구를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찰거머리처럼 내 머리에 붙어 떨어질 줄을 모르니 더 괴로웠다. 아니다, 처음부터 나를 도와준 그이기에 소설의 진행상황을 알 권리가 있다. 그에 관련해 의견을 보내든 말든 그건 케스케가 알아서 할 일이다. 그리고 친구관계 부분은 사실 도쿄에서 세 번 만났을 뿐인데다가 그에게 나에 대해서 거짓말까지 했는데 그가 나를 친구라는 범주에 넣어줬는지도 의문이었다.
novel_tuna story라고 파일명을 정한 소설은 여전히 먼지가 쌓여가는 채로 컴퓨터 하드디스크 안에서 내가 다시 파일을 열고 이야기를 이어가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되도록 소설은 잊으려고 노력하며 번역일 마감에 집중했다. 그러던 어느 깊은 밤, 또 밤샘인가 하며 거울 속에 수심에 가득 찬 한 여자의 얼굴에 깊어진 다크서클을 들여다보는데 이메일 도착을 알리는 메시지 창이 컴퓨터 화면에 떴다.
케스케로부터의 이메일이 도착한 것이다.
『잘 지내나요? 나는 잘 지냅니다. 답장이 늦어져서 미안해요. 보내준 이메일을 읽고 걱정은 되는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오래 망설였거든요. 그러다가 내가 좋아하는 작가 스티븐 킹이 쓴 <on writing>라는 책이 떠올랐죠. 그 책을 보면 스티븐 킹도 처음부터 잘나가는 작가는 아니었다는 이야기가 나와요. 그는 이미 어렸을 때부터 무조건 자신의 소설들을 여러 편집자들에게 꾸준하게 보냈어요. 처음에는 무응답이었지만 슬슬 편집자들의 코멘트를 받기 시작했고, 글이 매체에 실리기 시작하고, 결국에는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유명한 작가가 됐죠. 요점은 그가 꾸준히 글을 써냈다는 사실이에요. 아무도 그의 글에 신경조차 쓰지 않아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글을 써냈어요.
그러니까 우선 참치 이야기를 완성해줬으면 해요. 벌써 줄거리랑 주제까지 잡혔다면서요. 그럼 다 쓴 거나 마찬가지에요. 빨리 써지지 않는다고 해도 자꾸 츠키지 시장에서의 느낌을 떠올리며 포기하지 마세요. 끈기를 가지고 완성해주세요. 완성하지 않으면 그 소설이 충분한지 부족한지조차 알 수 없잖아요. 충분하다면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을 테고 부족하다면 실력을 키우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겠지요. 얻으면 얻었지 잃을 건 없잖아요? 그러니 힘내요!
Keisuke
p.s. 사진 감사합니다.』
눈물이 핑 돌았다. 이렇게 든든한 지원군이 생기니 너무나 기쁘고 마음이 놓였다. 아니다, 두 눈을 시퍼렇게 부릅뜨고 나를 노려보는 일감을 해결하기 전까지는 아직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
마감을 마친 나는 혼자서 우두커니 벽이 책으로 빽빽한 좁은 방 한 구석의 책상에 앉아 노트북 화면에 적힌 글자 뒤의 하얀 공백 앞에서 깜빡이는 커서를 응시했다. 가만히 있던 두 손은 이제 키보드 위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며 하얀 공백을 검은 글씨로 채워 넣었다. 귀로는 멋대로 선곡한 재즈음악의 선율이 흘러들었다. 손들이 잠시 움직임을 멈추더니 먼저 오른손이 옆에 있던 와인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과일향이 강해서 달콤한 것 같지만 드라이한 맛을 품은 샤도네가 혀를 타고 스르르 미끄러지듯 목구멍으로 흘러들었다. 눈은 왼편의 자료를 내려다보고 왼손은 시선의 속도에 맞춰 자료를 넘겼다. 이따금씩 따로 프린트해서 붙여둔, 이 소설의 발단인 브르노 바비가 1985년에 찍은 츠키지 시장의 사진에 시선이 머물렀다.
문득 그가 이 사진을 찍는 순간의 느낌이 내가 그곳을 보고 느꼈던 것과 똑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두근거리는 심장의 소리를 들으며 그 순간을 제대로 포착해고 싶다는 강한 욕망에 사로잡혔을 것이다. 그 사진이 수십 년이 넘게 지난 뒤에도 누군가에게 어떤 감동을 줄 수 있을 거라는 계산 따위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포착해내고 싶은 순간을 발견하고 셔터를 눌렀을 뿐. 내가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와 함께 영감의 순간을 맞이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내게로 찾아온 영감의 순간을 글로 표현할 뿐 이 이야기가 얼마나 재미있는지 누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는 알 수 없고 그렇게 중요한 일도 아니다. 영감을 내 방식대로 표현해낸다는 사실만이 중요하다.
힘이 솟았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쓴다면 며칠 뒤에는 참치 이야기의 초고를 완성할 수 있을 것이란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