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2.3. 고객 불만은 프로세스를 점검하라는 신호이다

by 오경희

VOC 코드 설계를 통해 고객의 목소리를 체계적으로 수집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수집된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이다. 기업이 고객 데이터를 분석한 후 이를 정책에 반영하는 과정에서 고객의 기대와 어긋나는 의사결정이 이루어진다면, 고객 경험은 오히려 악화될 수 있다. 기업이 제공하는 서비스와 고객의 실제 경험이 일치하지 않을 때, 불만이 발생하고 이는 곧 기업의 신뢰도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고객 불만은 단순한 불평이 아니라, 프로세스를 점검하고 개선할 수 있는 중요한 신호다.


제주에서의 미팅에 참석하기 위해서 일찍 집을 나서던 길이었다. 공항에서의 혼란을 피하기 위해 모바일로 사전체크인을 진행했다. 체크인을 하려고 접속하니, 좌석은 비상구 좌석과 A, B, C등급으로 나뉘어 있었고 등급에 따라 비용이 별도로 적용되었다. 큰 비용은 아니지만, 저가 항공을 구매해서 절약한 금액이 다시 올라가는 느낌이 들어서 유쾌하지는 않았다. 사실 사전에 추가 비용에 대한 자세한 안내를 읽어보지 못했던 탓도 있었는지 모르겠다. 잠시 고민하다가 늦게 타고 일찍 내리고 싶은 마음에 A등급의 좌석을 구매했다.


공항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이동했는데, 지하철 5호선과 9호선이 엇갈려 있는 김포공항역에서 공항을 가리키는 이정표를 쉽게 찾지 못해 시간을 허비했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모바일 탑승권을 소지한 경우 출발 30분 전에 입장하지 않으면 티켓이 자동 취소된다는 문구를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땀을 흘리며 뛰어들어갔고, 간신히 3분 전에 입장했다.


헉헉거리며 출발장 게이트웨이를 통과하니 탑승알람이 뜬다. 자리에 앉아있는데, 저 멀리 지인들이 들어오는 것이 보인다. 맨 앞줄 프리미엄급 좌석에 앉았다. 내리면서 반갑게 인사를 하니 늦어서 카운터에서 티켓을 발급받았는데, 좋은 자리를 줘서 편하게 왔다고 한다. 사전 좌석 배정받고 땀 흘리며 뛰어온 터라, 역차별받는 느낌이 들었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다시 좌석을 선택하려고 하니 모바일에서는 선택할 수 없고 카운터로 오라는 메시지가 떴다. 혹시 좌석이 부족한 것은 아닐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직원이 좌석을 배정해 주었다. 그리고는 비상구 창가 좌석을 무료로 배정해 줬다고 했다. 이런 경우 기뻐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나는 불쾌했다. 사전에 모바일 탑승권을 발권하지 않고 현장에서 발권하면 비용 없이 더 좋은 좌석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은 고객의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를 조장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사전 배정으로 추가 비용을 지불한 고객이 형평성 문제를 느끼지 않도록, 좌석 배정 원칙을 명확히 하고, 사전 구매 고객에게는 차별화된 혜택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정책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항공사 좌석 배정 정책은 고객의 편의와 수익 창출을 동시에 고려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었다. 일반적으로, 고객이 원하는 좌석을 미리 선택하거나 특정한 혜택을 받으려면 추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이 정책은 항공사의 수익 모델 중 하나이자, 고객 서비스 차별화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된다. 우리나라는 저가항공사를 중심으로 좌석에 따른 비용차별화를 도입하였고, 특히 많은 고객들이 선호도를 가지고 있는 비상구 좌석을 유료로 운영하기 시작하였다.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따라서 많은 고객이 서로 비상구 좌석을 요구하는 경우가 발생하니 이를 유료화하는 것은 타당하다고 볼 수 있는 정책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 고객의 시비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객의 마음은 정상적으로 이슈를 제기할 수 있는 곳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위처럼 미묘한 아쉬움에서 발생한다. 그러므로, 데이터 분석을 통해 항공편의 좌석 선택 패턴을 분석하고, 이를 기반으로 고객의 만족도를 높이는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


고객 경험은 기업이 제공하는 서비스와 고객의 상호작용에서 형성된다. 이 과정에서 고객은 합리적인 기대와 기업의 정책이 조화를 이루는 경험을 통해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위와 같은 사례는 고객 경험이 불균형해지고, 고객의 신뢰를 손상시킬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고객정책 설계와 프로세스의 중요성을 논의해 보는 것이 좋겠다.


항공사뿐만 아니라, 고객 정책의 불균형이 발생하는 또 다른 대표적인 사례가 있다. 필자가 근무했던 통신사에서는 해지 고객을 붙잡기 위한 오퍼(혜택)로 인해 심각한 형평성 문제가 발생한 적이 있었다.

장기 가입 고객보다 해지를 요청한 고객에게 더 많은 혜택을 제공하는 방식이었다. 새로운 고객을 유치하는 것보다 기존 고객을 유지하는 것이 비용적으로 효율적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해지를 막기 위해 위약금 면제, 추가 사은품 제공, 요금 할인 등의 혜택을 제공했지만, 문제는 이러한 혜택이 충성 고객에게는 제공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고객 간 불균형이 발생했다. 일부 고객들은 해지 신청 후 혜택을 받은 뒤 다시 가입하는 방식으로 통신사의 정책을 악용하기 시작했다. 신규 가입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일부러 해지를 신청하는 전략을 활용하는 고객도 늘어났다. 특히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에서는 '통신사 해지 보상 꿀팁'이라는 정보가 공유되면서, 해지를 신청하면 더 나은 조건을 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이를 본 고객들은 ‘해지를 해야만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학습을 하게 되었고, 실제 해지를 원하지 않더라도 형식적으로 해지 신청을 하는 고객들이 급증했다.

이러한 현상이 심화되면서 정상적으로 서비스를 이용하는 장기 고객들이 오히려 손해를 보는 구조가 되어 불만이 증가했다. 장기 고객들은 동일한 조건을 유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지를 신청하는 고객에게만 더 나은 혜택이 주어지는 것을 보며 불공정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러한 상황은 기업의 운영 비용을 증가시키고, 장기적으로는 기업과 고객 간의 신뢰를 손상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장기적으로 충성 고객보다 해지 신청을 반복하는 고객이 더 많은 혜택을 받는다면, 기업의 정책이 고객 행동을 왜곡시키는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사례는 고객이 기업의 정책을 불공정하다고 인식할 경우 브랜드 신뢰도가 하락할 수 있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형평성이 보장되지 않은 고객 정책은 단기적인 수익 창출에는 기여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브랜드 충성도를 약화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한다.


고객 정책은 단순히 운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고객과의 신뢰를 구축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고객이 기업의 정책을 공정하고 합리적이라고 느낄 때, 충성도가 증가하고 재이용률이 높아진다.

위 사례들은 고객 정책 설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함정을 보여준다. 고객의 불만은 단순한 불평이 아니라, 기업이 프로세스를 점검하고 개선할 기회다. 기업이 고객의 관점에서 정책을 재검토하고, 데이터를 활용해 보다 공정하고 일관성 있는 시스템을 구축한다면, 장기적으로 더 많은 충성 고객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고객 경험의 불균형은 기업의 신뢰도를 저하시킬 수 있다. 고객의 작은 불만이라도 귀 기울여 듣고, 이를 개선하는 것이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길이다. 고객 경험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단순한 서비스 만족도를 넘어, 기업의 장기적인 성장과 신뢰 형성을 위한 필수 요소이다. 불합리한 정책으로 인해 발생하는 고객의 불만은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신호이며, 이를 빠르게 개선하는 것이 결국 고객과의 신뢰를 유지하는 핵심 전략이 될 것이다.


고객의 입장에서 경험해 보고 그 경험이 어떤 불유쾌함과 도덕적인 결함을 가져오게 될지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필요하다. 회사의 잘못된 정책으로 인해 고객의 도덕성이 훼손되게 해서는 안된다. 고객 정책은 단순히 프로세스를 효율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고객과의 신뢰를 구축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고객 경험에서 발생하는 불만은 기업이 고객 관점에서 정책과 프로세스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신호임을 명심하자.


keyword
월, 목 연재
이전 08화2.2 효율적인 VOC분석을 위한 코드 설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