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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고객은 항상 옳다?

by 오경희

고객은 무조건 옳다?


고객 서비스의 기본 원칙 중 하나로 "고객은 항상 옳다(The customer is always right)"라는 말이 자주 언급된다. 하지만 이 표현은 때때로 기업과 직원들에게 잘못된 부담을 주기도 한다. 고객의 요구를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과연 기업의 장기적인 성장과 고객 만족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될까?


고대 함무라비 법전으로 유명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문구는 흔히 복수의 개념으로 오해되지만, 사실 그 시대의 무분별한 보복을 제한하기 위한 것이었다. 우리는 무슨 일을 당하거든 참지 말고 똑같이 되갚아주라는 뜻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당시 사회상을 들여다보면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문구는 상당히 파격적인 내용이었다. 여기에는 누군가가 너에게 피해를 이를 부러뜨리는 피해를 주었다면 가서 상대를 때려죽이지 말고 똑같이 이만 부러뜨려라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마찬가지로, "고객은 언제나 옳다"라는 표현도 본래의 의미와 다르게 해석되는 경우가 많다.

이 문장은 1900년대 전후 미국 소매업의 선구자들이 언급하면서 널리 퍼졌고, 이후 1980년대 리츠칼튼 호텔이 이를 슬로건으로 활용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그러나 이 문구가 국내에서는 "고객의 말은 무조건 옳다"는 뜻으로 해석되면서, 서비스 담당자들이 무례한 고객의 말도 다 들어주어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 잡게 되었다.


하지만 본래 이 문구의 의미는 고객의 의견이 객관적으로 맞다는 뜻이 아니라, 고객이 어떤 문제에 직면했을 때 그들의 감정과 경험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객이 느끼는 불편함이나 문제는 그 자체로 중요한 피드백이므로, 이를 무시하지 않고 경청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기업이 "고객은 언제나 옳다"는 문구를 절대적인 원칙으로 삼을 경우, 몇가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첫째는 고객의 부당한 요구나 무례한 행동에도 직원이 무조건적인 서비스 제공을 강요받게 된다. 두번째는 고객 개개인의 요구를 모두 수용하려다 보면 서비스의 일관성이 무너질 수 있다. 또한, 일부 악성 고객의 요구를 무조건 수용하게 될 경우 오히려 선량한 다수의 고객이 피해를 볼 수 있고, 이 사실이 알려질 경우 상대적으로 억울한 마음이 생길 수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고객의 요구를 무조건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으로 분석하고 기업의 핵심 가치와 장기적인 목표에 맞추여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


필자가 근무하던 회사에서는 인적 문제로 발생하는 VOC를 '긴급 VOC'로 별도 관리했다. 특히 고객과 밀접하게 관계를 맺는 현장 기사 및 상담 직원과 관련된 문제는 발생 즉시 본사까지 전파되도록 프로세스를 만들어놓았다. 그중 한 사례를 소개하겠다.

어느 날, 한 고객이 콜센터에 전화를 걸어 AS 기사가 자신에게 욕설을 했다고 신고했다. 이는 중대한 VOC로 본사 및 현장 책임부서에 즉각 전달되었다. 그러나 사실 확인 결과, AS기사가 주유를 하러 갔다가 뜻하지 않게 해당 민원인과 다툼이 발생하였는데, 해당 민원인이 우리 기사의 따귀를 때렸다. 본인이 폭력을 휘두르고 나서 뒤끝이 두려운 상황에 유니폼을 입고 있는 AS기사인 것을 확인하고 우리에게 불친절로 신고를 한 것이었다. 당시 현장 책임자는 고객이 화가 나 있으니 AS 기사와 함께 직접 가서 사과하라고 지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본사 책임자로서 필자는 먼저 AS 기사와의 면담을 진행하고, 그를 위로한 뒤 사건을 면밀히 조사할 것을 요청했다. 고객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업은 직원의 정당한 권리를 보호하는 책임도 있다. 만약 AS 기사가 억울한 마음에 회사를 떠나거나 극단적인 대응을 했다면, 이는 더욱 심각한 문제가 되었을 것이다. 결국 해당 사건은 고객의 부당한 요구로 밝혀졌고, AS 기사의 권리를 보호하면서도 기업 이미지가 훼손되지 않도록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었다.


다른 사례로, 연체 고객과의 분쟁 사례를 들어보겠다. 한 고객이 연체로 인해 방송 서비스가 중단되었는데, 사전에 충분한 안내가 없었다며 불만을 제기했다. 당시 해지 프로세스가 명확하지 않았던 탓에 고객에게 일관된 안내가 되지 않았고, 이에 고객은 크게 화를 내며 심야에 콜센터에 전화해 항의하고, 본사까지 내방해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고객의 이력을 확인한 결과, 그는 반복적으로 연체를 하면서도 일부 금액만 납부하여 단선(서비스 중단)만 면하는 패턴을 보였고, 콜센터 직원들에게도 지속적으로 불만을 제기했던 사례가 있었다. 심야 상담사들 사이에서는 기피대상 1호 고객이었다.

이 상황에서 기업이 해야 할 일은 고객의 요구를 무조건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하는 것이었다. 이에 고객과 직접 만나 합의서를 작성하고, 이후 3개월 이상 연체 시에는 반드시 해지 절차를 진행할 것임을 명확히 고지했다. 이후 연체로 인해 단선 조치가 이루어졌을 때, 사전에 고객과 합의한 내용이 있었기에 불필요한 분쟁 없이 절차를 진행할 수 있었다.

이 사례를 통해 우리는 고객의 불만이 단순한 문제 제기가 아니라, 회사의 해지 프로세스가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되었고 이후에 제대로 된 프로세스를 설계했다. 이렇듯이 고객의 불만은 서비스 개선을 위한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고객이 불만을 제기할 때 이를 경청하고 분석하여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고객의 요구를 전부 들어줄 수는 없지만, 요구를 반영해서 종합적으로 고객정책을 수립하여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단초를 찾아야 한다.


고객은 중요하다. 그러나 고객의 불만이나 요구사항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오히려 서비스 품질을 해치고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고객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이를 기반으로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합리적인 정책을 수립하는 것이다.


VOC 경영은 고객의 요구를 단순히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분석하고 체계적으로 반영하는 과정이다. 고객의 감정과 경험을 존중하되, 기업이 이를 합리적으로 조율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고객 중심 경영이라 할 수 있다. "고객은 언제나 옳다"는 단순한 문구 이상의 깊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기업은 고객의 의견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더 나은 서비스와 경영 방침을 발전시켜야 한다.


결국, 고객과 기업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건강한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야말로 VOC 경영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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