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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로피컬 박 Mar 16. 2021

선유도 좀비 4화. 칼 끝의 검은 심장

선유도 좀비

박경은 ‘지옥이 된 서울시청 현재 상황’이라는 제목의 라이브 영상을 클릭했다. 영상에는 괴물 같은 사람들이 어디론가 뛰어가고 있었다. 피를 흘리고 눈이 벌어지고 뼈가 드러나는 흉측한 모습들이었다. 그리고 영상을 찍고 있는 사람에게로 괴물 하나가 달려들었다. 마치 스마트폰 화면 밖으로 달려오는 것 같이 실감 났다.



"CG대박인데..."



영화 리뷰나 신작 예고편이 분명했다. 자극적인 영상으로 조회수를 올리려는 유튜브 영화 리뷰 채널은 세고 셌으니까. 박경은 순간 염증을 느꼈다. 유튜브를 꺼버리고 어딘가 숨어있을 TV 리모컨을 찾았다. 스마트폰 아니면 TV라니.. 박경은 자신이 디지털 지옥에 빠진 것 같아 억지로라도 아날로그 적인 행동을 해야겠다 싶었다. 리모컨을 찾는 것을 멈추고 베란다로 향하던 박경은 한동안 소식이 없던 장이 마침 운동을 시작했음을 깨달았다. 어쩔 수 없이 화장실로 경로를 바꿨다.


볼일이 끝난 박경은 자신이 다 쓴 휴지를 채워 넣기 위해 화장실 선반을 열었다. 웬만하면 화장실 선반에 있어야 할 휴지는 그 자리에 없었고  대신 일회용 주사기가 무더기가 놓여있었다. 박경은 멈칫했다. 변호사로 일하는 수요일에게 이 많은 주사기가 왜 필요한 걸까. 소송을 위한 증거 수집품인가, 변호사 사무소가 아니라 대기업에서 일한다고 들었는데 대기업도 증거 수집품을 필요로 하는 걸까, 그래 직업도 없는 내가 뭘 알겠어, 어쩌면 한의사를 한다는 수요일의 동생이 준 걸지도 모르지, 근데 한의사한테 주사기가 필요한가? 박경의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당뇨인가, 당뇨약이 주사위로 넣는 거였던가, 아니면 스스로 다른 약물을 주입해야 하는 병이 수요일에게 있는 걸까. 생각은 끝없이 흘러갔지만 수요일이 올 때까지 박경은 조금 참기로 한다. 그런데 잠시 뒤 박경은 더 이상한 광경을 목격한다.


아날로그적인 일을 하고자 박경은 멀리 빌딩들을 바라보며 베란다로 향했다. 창밖을 본 박경은 멀리 보이는 도로가 주차장으로 바뀐 듯 꽉 찬 모습을 보게 된다. 차가 움직일 수도 없이 막히는 모양이었다. 박경은 꽉 막힌 길을 운전하는 게 얼마나 고역인지 알기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모든 차의 운전석 문이 열려있었던 것이다. 마치 운전자들이 차를 두고 도망치기라도 하는 것처럼. 드문드문 조수석도 열려있었다.


“왔더… 헬…”


돈이 생길 때마다 간헐적으로 전화영어로 공부를 하고는 했지만 영어 한 문장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박경은 가끔 너무 놀라면 영어로 욕을 하고는 했다. 사실 박경은 한글로 된 문장도 제대로 끝맺음을 하지 못했다. 영어라고 뭐 다를까. 어쨌든 멍했던 눈은 영어 욕을 내뱉으며 빛이 났다. 박경은 바깥의 이상한 상황을 조금 더 잘 관찰하려고 베란다의 다른 한쪽으로 몇 걸음을 옮겼다. 그때 바닥이 살짝 꺼지는 느낌을 받았다. 이 또한 이상했다. 박경은 조심스럽게 바닥에 엎드려 조금 꺼진 바닥을 손으로 똑똑 두들겼다. 바닥이 아니었다. 바닥 아래는 어떤 공간이 있는 것 같았다.


윙!!!!!!!


그때 갑자기 스마트폰에 경보음이 울렸다. 바닥에 엎드려있던 박경은 일어나 스마트폰을 향해 몸을 던지듯 뛰었다. 스마트폰에 보이는 시간은 1시 10분을 넘기고 있었다.




‘바이러스 경보! 접촉 시 사망률 100%, 바이러스를 피할 방법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임. 이 경보를 본다면 가까운 이에게 마지막 인사를 보내길 바람.’


정부에서 온 경고 문자였다. 혼란스러웠다. 이걸 믿어야 하는 건가? 뭐 이런 장난을? 아냐 진짜 같은데. 장을 보러 간 케이트와 수요일, 페니는 왜 다시 오지 않는 것인가. 식은땀이 나는 것 같았다. 아니 실제로 땀이 났다.


쿵쿵


그때 현관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분명 한 사람이 두들기는 것이 아니었다. 분명한 것은 수요일과 케이트, 페니는 아니라는 것. 그들이었다면 현관을 두들기는 대신 도어록 번호키를 눌렀을 테니 말이다.


박경은 현관으로 다가가 밖이 보이는 작은 렌즈로 한쪽 눈을 댔다. 눈에 초점이 맞아지는 그 짧은 순간에 방금 본 유튜브가 떠올랐다. 그 유튜브는 영화 리뷰도, 신작 예고편도 아닌 실제 상황이라는 것을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순간 렌즈에 검붉은 액체가 튀겼다. 믿기 싫었지만 그건 눈알이었다. 박경은 놀라 비명을 지르고 엉덩방아를 찧으며 뒤로 나자빠졌다. 박경이 공포에 휩싸인 그 시간, 12시 35분. 현관문 너머에는 칼을 쥔 케이트가 서있었다. 그 칼 끝에는 누구 것인지 모를 검은 심장 하나가 꽂혀있었다.


4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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