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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로피컬 박 Mar 16. 2021

선유도 좀비 5화. 포마드 헤어의 공격

선유도 좀비

시간은 다시 12시 5분,


장소를 케이트와 수요일 그리고 페니가 있는 마트로 옮긴다. 페니는 여전히 자신을 주시하는 후드티의 기운을 느꼈다. 집은 물론 직장인 학교 근처 남자 친구와의 데이트 장소까지 후드티는 그 모습을 자주 드러냈다. 요 며칠 새 후드티가 어찌나 자주 모습을 드러내던지 페니의 반려견 니로도 산책을 나갈 때면 이제 후드티에겐 짖지 않았다. 늘 검은 모자와 검은 후드티. 페니는 늘 모습을 드러내는 후드티의 정체가 한 사람이 아님을 확신한다.


한편 케이트는   시간  자신에게  문자 내용이 자꾸 마음에 쓰였다. '바이러스 경보'. 만약 이것이 실제상황이라면 분명 P에게 며칠 전에는 연락이 왔을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케이트에게 왔던 지령은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는 무관한 일들이었다. 중국에서 성노예로 착취당하는 여성들을 탈출시키거나 파키스탄에서 명예살인으로 죽을 뻔한 소녀를 탈출시키는 일들이 대부분이었으니까 말이다. 바이러스라는 카테고리는 케이트의 임무와는 조금 무관한 것이긴 했다. 그러나 그건 케이트의 생각일 뿐이었다. 선유도로 향하는 바이러스는  누구에게도 무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 케이트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익숙한 번호였지만 평소 케이트가 쓰는 스마트폰으로 단 한 번도 걸려온 적이 없었기에 케이트는 당황했다. 망설이는 사이 곧 끊길 것만 같았다. 케이트는 수요일과 페니를 두고 마트 밖으로 뛰어나갔다. 신중하게 만두피를 고르던 수요일과 그 옆에 선 페니는 마트에 남았다. 평소 같았으면 케이트를 잡고 단속을 하겠지만 이번엔 웬일인지 수요일은 그런 케이트의 뒷모습을 바라보기만 했다. 무언가를 아는 표정이었지만 그녀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는 아직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급히 마트 밖으로 나온 케이트는 전화를 받았지만 전화기 너머에서는 지지직 소리만 들려왔다. 대답이 들리기를 기다리며 케이트의 시선이 머문 곳에는 분식집이 보였다. 주인으로 보이는 아주머니는 김밥을 썰고 있었고 그 뒤로 고등학생을 보이는 여학생 셋이 까르르 웃으며 떡볶이를 먹고 있었다. 평화로운 그림이었다.


"... K"


몇 초가 지났을까.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힘겨웠고 동시에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기계음과 동물의 하울링을 섞은 듯했다. 하지만 분명 P였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걸까.


“P! 말해! 무슨 일이야?”

“아직 네가 온전하다면..”


P는 힘겹게 말을 이어나갔다.


“칼을 찾아.”

“그게 무슨 소리야?”


케이트가 물었다. 간절했다.


“그리고 살아. 살아서 날 찾아 죽여줘"


그 말을 마지막으로 전화가 끊겼다. 케이트는 P가 한 말을 헤아려보려고 애썼다. 분명한 것은 칼을 찾아야 한다는 것. 그런데 죽여달라는 말은 헤아리고 싶지 않았다. 그것 또한 반드시 해야 하는 임무라는 것을 케이트는 알았기 때문이다.


쿵쿵 쿵쿵


마트 안에서 장을 보던 페니는 흔들리는 바닥 때문에 하마터면 옆으로 넘어질 뻔했다. 곁에 있던 수요일이 그런 페니를 잡았다. 이상하게도 수요일은 놀라지 않은 표정이었다. 12시 10분이 지나는 이 시각, 바닥이 흔들릴 것을 아주 오래전부터 알았던 사람처럼.

덕분에 넘어지지 않은 페니는 지진인가 생각했다. 그런데 왜 저 멀리 보이는 케이트가 김밥집에서 칼을 들고 나오는 것일까.


“저.. 저기..”


페니는 옆에 있는 수요일을 붙잡고 케이트를 가리켰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케이트를 향해 걸어 나갔다. 그 모습은 관객이 무대로 진입하는 모습 같았다. 마치 마트의 차양막은 무대의 장막 같았고 케이트가 서있는 곳은 무대 위였다. 그 짧은 순간에 모든 것이 비현실적이라고 페니는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 페니가 화투 국제 지하조직의 수장으로 추앙받는 것도 현실적이지 않으니 누구나 비정상으로 여겨지는 진실 하나쯤은 지니고 있는 게 아닐까.


마트 입구에 다다른 페니는 멀리 지하철 선유도역 쪽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달려오는 것을 발견했다. 비명과 절규 소리와 더불어 어떤 냄새가 났다. 난생처음 보는 경악스러운 장면에 숨조차 쉬지 못하는 사람들의 감정. 바로 공포라는 냄새였다. 무언가를 보고 놀라 도망쳐 오는 사람들 뒤로 피투성이의 사람들이 보였다. 사람처럼 걷지도 않고 사람처럼 뛰지도 않았다. 누군가는 짐승처럼 기어 다녔고 다리 관절이 꺾여 바닥에 팔을 댄 채 몸을 끌어오는 이도 있었다. 어떤 이는 팔 한쪽이 없었고 어떤 이는 배 한가운데가 뚫려있었다. 그 뒤로 자신의 머리를 들고뛰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머리를 들고뛰는 이는 얼마 가지 않아 멈춰 쓰러졌다. 순식간에 선유도역 마트 앞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페니는 그 광경에 숨 쉬는 것을 잊어버렸다. 아니 잊고 싶었다. 그 사이 페니의 눈 앞까지 한쪽 팔이 없는 이가 걸어왔다. 포마드로 말끔하게 올렸을 머리는 떡이 져 있었고 일요일인데도 회사원 차림의 정장을 걸친 것을 보니 서비스직에 근무했던 남자사원으로 보였다. 온전했다 먼 20대 후반이니 30대 초반이었을 그는 페니가 숨쉬기만을 기다리는 듯 페니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대고 킁킁거렸다. 페니는 숨 쉬면 안 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지만 이미 숨을 많이 참은 상태였다. 끝까지 참으려 했다. 그런데 끝은 어디란 말인가. 페니는 어쩔 수 없이 숨을 토해냈다. 순간 눈 앞의 사람인지 괴물인지 모를 이의 피 냄새가 페니의 코로 들어섰다. 그의 만족스러운 표정도 눈에 들어왔다. 힘든 등산을 끝내고 정상에서 산의 냄새를 맡는 이의 표정 같았다. 그리고 그는 남은 팔을 들어 올렸다. 페니는 공포에 눈을 감았다. 죽는구나. 페니는 그 찰나의 순간 인생은 소풍이었다고 되뇌었다. 시간은 12시 12분이었다.



5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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