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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로피컬 박 Mar 16. 2021

선유도 좀비 6화. 지긋지긋한 악연

선유도 좀비

페니는 자신의 입과 코를 막는 따뜻한 손이 느껴졌다. 죽은 건가 싶었다. 그래 고통을 느끼지 않고 죽었다면 난 꽤나 운이 좋은 편이다,라고 페니는 생각했다. 그러나 잠시 후 페니의 입을 막은 손은 페니가 숨을 뱉지 못하도록 거세게 힘을 주었다. 페니는 정말 죽을 것 같아 급히 눈을 떴다. 그리고 자신을 해치려 했던 포마드 헤어의 한쪽 팔 남자가 남은 한쪽 발과 더불어 머리까지 통째로 잃는 모습을 보게 된다. 순간 칼이 휘둘린 공기 속에서 희미하게 김밥 단무지 냄새가 났다. 숨을 막은 손 때문에 참기름 냄새까진 맡지 못했지만 페니는 당분간 김밥은 못 먹겠다 확신했다.



페니의 숨을 막은 손에는 투명한 오렌지빛 컬러의 네일아트가 칠해져 있었다. 중지 위에는 골드 컬러의 동그란 파츠가 장식되어 있었는데 얼마 전 박경은 그것을 보고 영화 '판의 미로'의 눈알 괴물 같다고 말했다. 수요일은 그 어떤 대꾸도 하지 않았지만 메이크업을 할 때 혹은 손을 씻을 때 아니 손을 보는 매 순간 눈알 괴물을 떠올렸다. 그건 조건반사 같은 거였다. 어쨌든 하고 싶은 말은, 그 손의 주인이 수요일이라는 것이다.

수요일의 손은 길고 얇았다. 덕분에 대학시절, 동기들과 선배들은 수요일에게 담배를 들고 있어 보라고 자주 권하곤 했다. 담배를 든 모습이 너무 예쁘고 멋지다는 이유에서였다. 수요일은 포마드 헤어의 머리가 날아가는 모습을 보며 그 동기들과 선배들을 떠올렸다. 그녀가 기억하는 그들의 온전한 모습은 이제 없을 것이다.



"괜찮아요?"



김밥집에서 가져온 칼로 방금 포마드 헤어의 남은 팔과 머리를 날린 케이트가 페니와 수요일을 보며 물었다. 페니는 숨이 막힌 상태에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괜찮지 않았다. 난자된 시체같이 생긴 이들이 걸어오는 것, 그런 이들이 가까이 와서 숨을 맡으려는 하는 것, 케이트가 김밥 냄새가 나는 칼을 휘두르는 것 그것도 너무나 익숙하게 휘두른다는 것 모두, 괜찮은 상황이 아니었다. 게다가 몰려드는 괴상한 무리들의 행렬은 끝이 없어 보였고 어디로든 움직여야 했다.

페니는 손의 정체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살아야 하기에 손을 떼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수요일은 쉽게 손을 풀지 않았다. 그것이 페니를 지키는 유일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멀리서 검은 후드티를 입은 사람들이 그들을 향해 몰려오기 전까지의 생각이다. 족히 100여 명은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페니와 수요일, 케이트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고 시계는 12시 15분을 무심히 가리키고 있었다.



"오지 마!!"



겨우 손을 뗀 페니가 후드티 무리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후드티 무리들은 망치와 도끼, 장도리들로 괴상한 이들을 쓰러뜨려가며 페니를 향해 전진하고 있었다. 그 옆으로 케이트가 칼로 괴상한 이들의 심장을 정확히 찌르는 모습도 보였다. 순간 숨을 막고 있던 페니에게 다가오지 않던 괴상한 무리들이 페니 쪽으로 점점 다가섰다. 수요일은 다시 페니의 숨을 막으려고 손을 뻗었지만 페니는 그 손을 피해 후드티 무리들에게 달려가려 했다. 위험에 쳐한 것을 두고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수요일은 발악하듯 소리 지르는 페니의 팔을 잡고 껴안아 숨을 막았다. 페니는 울부짖었다. 자신이 왜 울부짖는지 정확한 이유를 그녀 스스로는 깨닫지 못했지만 그것은 화투 국제 지하조직의 정신적 지주로서 느끼는 깊은 애정이 분명했다.



수요일은 페니를 더 꽉 껴안아 눈과 귀, 숨조차 새지 않게 했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을 지켜봤다. 바이러스가 이토록 순식간에 전파되는 광경을 참으로 오랜만에 본다. 지긋지긋한 악연으로 의절한 친구를 다시 만난 느낌이다. 300년 만인가. 이 바이러스가 올 것임을 알고 있었고 대비도 했지만 혼자서 선유도 아파트에 앉아 바이러스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리고 싶지는 않았다. 조금 괴팍하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독서모임에서 만난 세 명의 여성들과 이 지옥 같은 소용돌이를 헤쳐나가는 게임을 하고 싶었다. 수요일은 300여 년을 살아온 자신에게 이 정도의 게임은 허락해도 되지 않을까 하며 자위했다. 페니는 울부짖고 케이트는 칼을 휘두르며 고군분투하는 데에 조금 미안한 감은 있었지만(거실에서 자고 있을 박경 덕분에 미안함을 조금 덜은 것은 사실이다) 이들은 살아남을 것이다. 그것이 물론 사람으로서는 아니겠지만.



6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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