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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로피컬 박 Mar 17. 2021

선유도 좀비 7화. 어쩌면 아름다웠던 시절

선유도 좀비

1728년,


수요일의 남편은 난을 도모하고 역모를 꾸민 죄로  사약을 받았다. 남들은 역모라고 했지만 부패한 정치 싸움을 끝내려고  남편을 수요일은 원망하지 않았다. 남편의 명예는 땅끝으로 떨어진 것이 할  뿐이었다. 그래서 수요일은 포기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끝까지 살아남아 남편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이 증명되는 모습을 지켜보기로 했다.  나라의 정의라는 것이  위로 드러날 때까지.


그러나 녹록지 않았다. 아무리 부귀영화를 누려도 산다는 것 자체가 고달픈 게 아니던가. 남편의 죽음 이후 수요일과 두 아들은 간신히 죽음을 면했지만 뿔뿔이 흩어져 노비의 삶을 살아야 했다. 그로부터 10년, 수요일은 새벽부터 밤까지 이어지는 노비로서의 삶을 묵묵히 이겨냈다. 어느 날이었다. 수요일이 일하는 김대감집의 노비 하나가 수요일에게 꽃을 건넸다. 하얀 들꽃을 한데 모아 꽤나 풍성했다.



"여인들은 이런 걸 좋아한다고 해서..."



수요일은 자신보다 10살은 족히 어려 보이는 자신 앞의 노비를 빤히 바라봤다. 노비의 얼굴은 금세 달아올랐다. 꽃을 든 손은 점점 떨려왔다.



"여인이라고 꽃을 다 좋아하는 건 아니에요. 이런 꽃 뭉치 만들 시간에 닭이라도 한 마리 더 잡는 게 나을 거 같은데."



수요일은 자리를 떴다. 노비는 부끄러움에 그 자리에 내내 서있었다. 해가 질 때까지.

다음날이었다. 빨래를 하는 수요일에게 다가온 노비는 한 손에 갓 잡은 닭을 쥐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한 손에는 새로 만든 꽃 뭉치가 들려있었다. 수요일은 노비를 쳐다도 보지 않고 남은 빨래를 마무리했다. 빨래가 담긴 소쿠리를 들어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 저 주셔요!"


노비는 수요일이 든 소쿠리를 들어주려고 했으나 양손에 닭과 꽃을 상태였다.


"무슨 손으로 들겠다는 거예요?"


수요일이 소쿠리를 다시 한번 정돈하며 노비의 옆을 지나쳐갔다. 노비는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다. 그때 수요일이 노비를 향해 뒤돌아섰다.


"닭은 좋은 놈으로 잡은 것 같으니 부엌에 가져다 놔요. 대감님이 좋아하시겠네.."


노비는 그때 희미하게 드러난 수요일의 미소를 봤다. 행복했다. 오랫동안 흠모한 수요일이 자신에게 웃어줬으니 말이다.


 이후 노비는 수요일에게  무언가를 건넸다. 못난 자신이 감히 수요일에게 빈손으로 나타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어렵구한 비녀부터 귀한 약재, 여인들이 입술에 바른다는 연지까지. 그러나 수요일은 수요일 자신에게  것은 받지 않았다. 그래도 아주 가끔 노비에게 희미한 미소를 건넸다. 노비는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몇 해가 또 흘렀다. 나라에는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사람도 괴물도 아닌 것이 저 멀리 배를 타고 항구를 통해 육지로 들어왔다는 것이다. 저 아래 제주섬과 가까운 지역부터 반인 반괴가 사람들이 괴물로 만들고 있다는 그 소문이 한양까지 올라왔다. 소문은 한양 전체를 들썩이게 만들고 거기에 어떤 물을 만들어 먹으면 괴물이 되지 않는 얼토당토 한 이야기까지 나돌았다. 노비는 믿지 않았다. 그러나 많은 무역상과 시장상인들이 괴물이 곧 한양에 올 것이라며 개성 쪽으로 도망치듯 이사를 가자 불안해졌다. 노비 신분에 도망칠 수도 없고 연모하는 수요일을 두고 떠날 수는 없었다. 방법을 찾아보자고 생각한 노비는 암시장에서 괴물이 되지 않게 한다는 물의 비밀이 적힌 종이를 얻게 된다.


"이거예요. 이거면 우리가 살 수 있어요!"


노비는 확신에 차있었다.


"괴물이 온다는 걸 어찌 믿죠? 소문 따위에 흔들리지 말아요"


수요일이 차갑게 말했다.


"밑져야 본전이니까 이 물, 한번 만들어 주셔요!"

"내가 왜? 직접 해요!"

"저.. 저는.. 글을 못 읽어요. 그쪽은... 배우신 분으로 들었어요"


수요일은 멈칫했다. 글을 읽을 일이 없는 노비 신분이었지만 자신이 분명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임에 새삼 벅차 왔다. 그리고 갑자기 글이 고파왔다. 수요일은 말없이 노비가 가져온 종이를 읽어 내려갔고 노비에게 종이에 적힌 재료들을 구해오게 했다.

물을 만드는 작업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고 게다가  물이 효능이 있는지도   없었다. 종이에 적힌 대로 수요일은 물을 만들었고 한동안  사람은 물을 바라보기만 했다.  시간 한양 끝에서는 반인 반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왠지 께름칙한 생각이 들어 수요일은 물을 마시는 것을 차일피일 미뤘다. 노비도 수요일이 마시지 않자 함께 미뤘다. 대신 자신이 읽을  있는 유일한 , 물을 만드는 법이 적힌 종이는  가슴에 간직했다. 글이 고플  읽을  있도록. 그래서 며칠이 지나가거의 외울 정도가 되었다.


빨래터에 간 수요일은 멀리서 수많은 새가 한 방향으로 끝없이 이동하는 것을 보게 된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리고 더 이상한 일이 눈앞에 펼쳐졌다. 한 여자가 피범벅이 된 채 자신을 향해 느리게 걸어오는 것이었다. 수요일은 놀라 눈을 비볐다. 그 여자는 분명 아침까지만 해도 함께 빨래를 하던 오대감 댁 신참 노비였다. 수요일은 그때 깨달았다. 믿지 않았던 그 소문이 맞았구나.


수요일은 내달렸다. 부엌에 숨겨둔 그 물을 마셔야 했다. 부엌에 다다르기 전에 노비를 찾는 것도 잊어선 안된다. 미리 마실 것을. 후회했다. 그러나 후회할 시간도 없었다. 괴물 무리는 더욱 많아질 것이다. 죽더라도 남편에게 그런 흉한 꼴로 갈 수는 없었다. 수요일이 죽을힘을 다해 뛰던 선유도길, 시간은 현재로부터 300여 년 전 오후 5시경인 유시를 지나고 있었다.



7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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