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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로피컬 박 Mar 16. 2021

선유도 좀비 3화. P의 마지막 전화

선유도 좀비


선유도의 그 아파트는 긴 복도 형태로 되어있었다. 집을 나서면 멀리 한강이 보였고 양쪽에는 엘리베이터 구역이 있었다. 그들은 선유도에 있는 이 아파트에 올 때마다 늘 오른쪽 엘리베이터를 타곤 했는데 페니가 오른쪽으로 가려는 케이트와 수요일을 막아섰다.


"저 지갑을 안 가져왔어요! 아.. 아니 스마트폰!"


조금 큰 액션에 케이트와 수요일은 잠시 멈칫했지만 너무 배가 고파 그런가 보다 생각했다. 너무 배가 고프면 정신이 혼미해질 때도 있으니까.


"잠시만요, 문 열어줄게요"


수요일이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는 동안 케이트는 한강 쪽을 바라봤다. 두 사람을 빠르게 스캔한 페니는 오른쪽 끝에서 어슬렁거리는 사람을 바라봤다. 사실 페니가 스마트폰을 놓고 나왔다고 말하며 시간일 끈 이유는 이 사람 때문이었다. 페니의 스마트폰은 그녀의 하늘거리는 원피스 주머니 안에 이미 얌전히 들어가 있었다.




검은색 후드티와 검은색 모자를 쓴 채 복도 끝에 서있는 사람은 성별을 알 수는 없었지만 페니는 그 사람의 정체를 확실히 알고 있었다. 페니는 뒤에서는 눈치채지 못하도록 그쪽을 향해 손짓했다. 검지를 들어 밑을 향해 찌르는 시늉을 하자 그 정체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찰나의 순간이었다.


"죄송해요! 스마트폰 여기 있네요!"


케이트, 수요일 모두 어깨를 으쓱하며 문을 다시 닫았다. 두 사람에게서 의심의 표정은 찾을 수 없었다. 페니는 안도했다. 그 후드티의 정체는 페니를 해치려는 이는 아니었다. 그저 페니에게 무언가를 부탁하려고 온 사람에 불과했다. 페니는 오랜 시간 운영되어온 지하조직의 멤버였는데 초등학교 교사인 그녀는 스스로 원하지 않았던, 화투 플레이어로서의 재능으로 인해 지하조직의 멤버가 되었다. 게다가 10여 년 전부터 그곳의 정신적 지주로 존재해왔다. 많은 멤버들이 그녀가 수장이 되어 왕좌를 이어받기를 권유해왔지만 그녀는 단호히 거절했다. 그녀는 은퇴 전까지 화투 플레이어로 남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페니에게 수장을 맡기려는 이들이 끈질기게 그녀의 근처를 맴돌았다. 현재의 수장은 타성에 젖어 새로운 멤버를 유입시키지 않고 돈만을 쫓았기 때문이다. 페니라면 이 조직의 초심을 찾아줄 인물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페니는 그 어떤 감투도 원하지 않았고 자신이 그 조직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지도 않았다.


페니는 그 후드티와 다른 사람들이 마주치는 것을 피하고 싶어 왼쪽 엘리베이터로 향하려 했지만 케이트와 수요일은 이미 저 멀리 앞서 나갔다. 그때 뒤를 돌아보자 멀리서 그 후드티가 페니를 바라보고 있었다. 후드티는 페니를 존중했다. 수장이 되기만을 원했을 뿐이다. 페니도 그 사실을 알기 때문에 공포를 느끼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갑작스레 나타나는 것이 곤란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페니는 후드티를 포함한 지하조직의 다른 멤버들에게 동질감과 동정이 느껴졌기에 참았다. 그런 포옹력 때문에 그들이 그토록 페니가 수장이 되기를 바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세 사람이 상가건물 1층에 있는 마트에 들어섰다. 크지 않은 마트 입구에는 제철 과일들이 놓여있고 세일 중인 과자들도 가득했다.  마트 안쪽으로 들어서자 좁은 가판대 속에 손님들이 가득했다. 그들을 비집고 들어서는 세 사람. 그때 케이트는 바닥이 쿵쿵 울리는 것이 느껴졌다. 바닥 깊은 곳에서 울리는 듯했다.


"공사하나?"


케이트가 혼잣말을 했다. 그때 수요일은 이미 가판대 안으로 들어가 레시피의 재료를 고르고 있었다. 그 뒤에 페니가 바짝 붙어있었다. 후드티를 입은 그 정체가 따라붙지는 않았는지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케이트! 얼른 재료 골라요! 빨리 사서 가야지!"


수요일이 쿵쿵거리는 바닥에 갸우뚱거리는 케이트를 불렀다.  그제야 케이트는 수요일과 페니 곁으로 다가섰다. 그때 마트 한가운데 걸린 시계가 12시 5분을 가리켰다.


거실에 혼자 남은 박경이 눈을 떴다.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보자 시간은 12시 20분이었다. 꽤 지났네.. 하며 박경은 또 습관적으로 유튜브를 켰다. 특별히 봐야 할 영상은 없었으나 또 안 볼 이유는 없는 영상들이 유튜브엔 가득하다. 그게 유튜브의 중독점이라고 해야 하나. 유튜브 알고리즘이 보여주는 리스트를 쭈욱 내려보는데 한 영상의 제목이 눈에 띄었다. 라이브 영상이었다.


'지옥이 된 서울시청 현재 상황'


3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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