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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로피컬 박 Mar 16. 2021

선유도 좀비 2화. 바이러스 경보

선유도 좀비


케이트는 방금 온 문자를 확인하고 얼굴을 찌푸렸다. 바이러스 경보라니, 느낌이 이상했다. 케이트가 문자에 있는 링크를 클릭하려 손가락을 옮기는 순간 어느새 몸을 밀착한 박경이 케이트의 팔을 잡았다.


"스팸 같은데요?”


순간 케이트는 이 링크가 범상치 않음을 본능적으로 느꼈지만 자신의 팔을 잡은 박경의 손을 보며 자신이 틀릴 확률이 더 높을 수도 있음을 이성적으로 파악했다. 한국에서 손에 꼽히는 통신회사에 다니니 조금 더 스팸에 조심해야 한다며 며칠 전 농담 섞인 진담을 건네던 회사 동료의 말이 동시에 생각났다. 케이트가 스마트폰 화면에서 손을 거두는 순간 어디선가 우르릉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페니였다. 페니의 꼬르륵 소리.


"죄송해요. 아침을 먹었는데도..."


페니는 자신도 어떻게 저지하지 못하는 꼬르륵 소리에 대해 모두에게 사과했다. 하지만 또다시 우르릉. 그 소리는 케이트에게 온 의심스러운 문자 때문에 멈춘 거실의 공기를 다시 순환시켰다. 수요일이 웃으며 책을 덮었다.


"우리 페니 님 굶기면서 녹음할 수는 없으니까 먹고 할까요?"


덕분에 케이트의 문자는 자연스럽게 혀졌다. 케이트는 읽으려던 책을 책장 끝으로 밀어 넣듯 문자를 기억 구석으로 밀어냈다. 하지만 기억이란 책과 같이 손에 잡히는 물건이 아니기에 사람이 마음대로 어쩌지 못한다. 케이트에겐 기억이란 특히 더 그런 것이다.


“장 보러 가실 거죠? 전 안에 있을게요”


 말을 건네는 박경의 눈은 여전히 풀려있다. 직업 없이 서울 변두리로 독립을  그녀는 최근 불면증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30년이 넘은 그녀의 빌라 건물에 벌레가 너무 많아서였을까 아니면 설거지를 하고 나면 배수관에서 물이  금방 바닥이 흥건해져서일까. 신세를 쉽게 비관하지 않는 박경직업, 남자, 벌레 없는 집이 없는 자신을 밤마다 비관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낮이면 박경의 눈은 멍했다. 박경은 물론 자신의 멍한 결코 좋아하지 않았지만 좋아하지 않는 무언가가 자신의 생명의 길이를 연장시킬 줄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항상  앞의 일만을 예상하지만 그조차도 맞추지 못하는 박경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좀 자려고요?”


자리에서 일어선 페니가 자신의 가방을 챙기며 박경을 향해 뒤돌아보는 순간 박경은 바닥에 이미 누워있었다. 순간 박경이 미드에서 본 좀비 같다고 페니는 생각했다. 말해봤자 이미 램수면 상태에 들어선 박경은 듣지 못할 것이다.


“만두 만들 레시피 찾아보니깐 떡갈비를 넣더라고요. 떡갈비랑 만두피, 채소만 좀 사 오면 될 거 같아요. 우리 분업해서 칼로 열심히 다져야 할거 같은데?!”


이들은 오늘 만두를 직접 빚어 먹기로 했었다. 수요일은 최대한 시간을 단축시킬 레시피를 미리 찾아냈고 덕분에 장을 빠르게 볼 수 있을 것이다. 빠르게 보면 얼마나 빠르겠어, 의심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원래 인생은 간발의 차가 생사를 좌우할 때도 있다. 그들에겐 오늘이 그랬다.

그렇게 수요일과 페니, 케이트 세 사람은 장을 보기 위해 현관으로 나가려는데 또다시 우르릉 소리가 들렸다. 케이트와 수요일이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페니의 배에서 난 소리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들은 믿지 않았겠지만. 그건 선유도를 향해 다가오는 무리들의 뜀박질 소리였다.


“아 근데 칼은 잘 들어요?’


신발을 신으며 케이트가 물었다. 케이트는 아차 싶었다. 자신의 질문을 다시 입안으로 집어넣고 싶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수요일은 그게 왜 궁금하냐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너무 잘 들어서 케이트 님한테는 안 맡길 거예요.”


농담 같은 말투였지만 진심이었다. 수요일은 케이트를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여기곤 했다. 케이트가 마무리하지 못하는 게 있으면 늘 수요일이 마무리해줬고 조금이라도 위험한 행동을 하면 수요일이 단속 해주곤 했다.  그렇지만 수요일이 모르는 것이 있었다. 아니 지하부터 지상, 상공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이 모르는 일이었다. 지금 이 시간 소말리아 내전에서 총을 잡고 있는 Q, 뉴욕에서 언론인이자 킬러로 활동하는 P,  그리고 그들을 관리하는 찰리만이 케이트가 최고의 칼잡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해가 떠있을 때면 케이트의 사무실 책상, 케이트의 집 부엌에도 칼은 없었지만 케이트만이 아는 공간에서 잘 관리된 케이트의 칼들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케이트에게 칼은 연상되기 어려웠지만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주체가 그 어느 때보다 더 잘 어울릴 때가 있는 법이다. 케이트는 어색하게 웃으며 현관문을 열었고 세 사람은 밖으로 나갔다. 또다시 우르릉 소리가 들렸다. 시계는 11시 5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2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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