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트로피컬 박 Mar 15. 2021

선유도 좀비 1화. 다신 오지 못할 평화

선유도 좀비

21세기가 20년을 채 지난 어느 날, 사람들을 괴물로 만드는 바이러스가 하루 만에 대한민국을 장악한다. 소문으로는  바이러스가 아시아 지역을 집어삼키는 데에는 72시간이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소문 또한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는 없다. 소문을 퍼뜨린 사람들의 99% 이미 괴물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아직 괴물이 되지 않은 1%의 사람들은 다행스럽게도 대한민국이 바이러스에 지배되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어느 때와 같은 일요일이었던 그날은 너무나 평화로웠기에 이것이 평화인지조차 인식할 필요가 없었다.

오전 11시. 선유도 부근에 위치한 아파트 17층엔 책장 넘어가는 소리만 공간을 채우는 집에 있었다. 거기에 사각거리는 연필 소리가 덧대어질 때도 있었는데 연필의 주인공은 수요일이었다. 맞은편에 앉은 케이트는 스마트폰으로 자신이 써놓은 독후감을 읽고 있었다. 책을 뒤적이며 무언가를 준비하는 페니는 넷 중에서 가장 바빠 보였다. 반면 제일 느긋해 보이는 박경은 약간 눈이 풀린 듯 보이지만 분명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은 아니었다. 아직 바이러스는 선유도까지는 미치지 않았다. 그 시각 바이러스는 우이산을 넘어 처음 보이는 지하철역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상보다는 지하에 들어가려는 바이러스 감염 괴물의 특징으로 인해 지하철을 탄 이들이 쉽게 희생양이 되었고 지하철 4호선 노원역은 바이러스로 빠르게 물들고 있었다. 마치 공장에서 아이스크림 콘을 찍어내듯 사람들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쉽게 괴물이 되었다. 그 흔한 비명소리도 내지 않고 말이다.


"그럼 녹음 시작할까요?"


수요일이 침묵 속에서 목소리를 냈다. 사실 선유도의 한 아파트에 수요일과 케이트, 페니와 박경이 모인 이유는 라디오 방송 녹음 때문이었다. 팟캐스트라는 개인 라디오 방송을 시작한 지 4개월. 2년 전 독서모임으로 만난 그들은 책에 대한 토론을, 방송으로 남겨보자는 의견이 나왔고 서로 동의했다. 팟캐스트 시작을 결정하고 그들은 기존에 하던 모임날 외에 하루 더 모여 녹음을 하기 시작했다. 녹음이라고 해서 거창하지는 않았다. 네 사람이 한 테이블에 앉아 스마트폰을 놓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그 다섯 번째 녹음날이 바로 오늘이었다.


만약 팟캐스트를 시작하는 것에 아무도 동의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오늘 선유도에 모이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회사 동기이자 친구였던 수요일과 케이트가 독서모임을 시작해보자고 모의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이 시간 선유도에 모여있을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이런 식의 '않았다면...'은 끝도 없지만 하고자 하는 말은 이 것이다. 모든 것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팟캐스트 방송은 한 달에 한번, 모임에서 다뤘던 책을 가지고 녹음을 하는데 이번 달의 책은 '시녀 이야기'였다. 디스토피아 소설과 여성 서사에 침을 흘리며 몰입하는 박경은 녹음이 시작된다고 하자 풀린 눈을 가다듬었다. 방송의 오프닝 멘트 담당이기도 한 박경은 나머지 세 사람이 문구를 어떻게 생각할지 신경을 많이 쓰지만 풀린 눈으로 그런 자신의 예민함을 가리는 특성이 있었다. 어쩌면 박경뿐 아니라 나머지 세 사람도 각자 하나씩은 녹음을 하며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으리라. 페니는 그것이 눈에 너무나도 잘 띄는 사람 중 하나다. 방송에서 이번 달 책의 줄거리를 소개하는 역할을 맡은 페니는 그 역할이 끝나기 전까지 긴장을 놓치지 않았다. 그녀가 놓치지 않았던 그 긴장 덕분에 최장시간 괴물이 되지 않은 무리에 낄 수 있었던 걸까.


"지금 생각해보니 직장에 다녔다는 게 이상하다. ‘일’. 웃기는 단어다.

일이란 남자들을 위한 것이다. 아이들 배변 훈련시킬 때, 어디 큰일 한번 치러볼까

하고 말한다..."


수요일의 목소리로 오프닝 멘트가 읽히고 녹음이 시작되었다. 수요일은 아나운서를 해도 될 만큼 발음과 목소리가 좋았지만 그런 그녀에게도 방송의 시작을 알리는 오프닝 멘트는 약간의 부담이었다. 하지만 세상에는 나눌 수 없고 또 나눌 필요가 없는 수많은 짐들이 존재한다. 수요일은 그 누구보다 그걸 잘 알고 잘 행하는 사람이었다. 아니 남의 짐을 지면 지었지 자신의 것을 떠맡기는 이는 아니었다. 선유도 그 아파트에 모인 네 사람 모두 그런 특징이 있었지만 각자 다르게 표현되었다. 그들이 가진 그 '다름'은 특이하게도 괴물이 안되고 얼마나 버티느냐의 척도가 되었다. 미리 귀띔하자면 수요일 또한 최장시간 괴물이 안되고 버티는 쪽이었다.

 

"잠시만요.."


오프닝에 들어가는 배경음악을 재생하던 케이트가 잠시 손을 들어 녹음을 멈췄다. 세 사람은 케이트를 바라봤다.


"이상한 문자가 왔어요..."


케이트는 스마트폰에  문자를 확인했다. 문자에는 '바이러스 경보. 실시간 바이러스 이동 확인'이라는 문구와 함께   없는 링크가 추가되어 있었다.  시간, 시계는 11 4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1화 끝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