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종현 May 29. 2019

욕망으로 쌓아 올린 도시

시기리아 바위성

믿음은 때론 아무런 뒷받침을 만들어 놓지 않는다

스리랑카에는 사자가 살지 않는다. 그러나 스리랑카인들은 자신이 사자의 후예라고 믿었다. 어쩌면 용맹하고자 했던 열망이 이러한 믿음을 만들어냈을지도 모른다. 덩치도 크고 멋진 상아를 가진 코끼리도 많은데, 왜 하필 자신의 나라엔 살지도 않은 사자를 숭배의 대상으로 선택했을까? 

믿음은 때로는 어처구니가 없도록, 아무런 뒷받침을 만들어 놓지 않는다. ‘전 못 믿겠어요.’라고 말하면, ‘넌 믿음이 부족하구나.’라는 비난을 받는다. 당최 이 믿지도 못할 상황에서도 믿음을 보여주는 사람을, 우리는 진정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한다. 

세상은 아이러니하다.      
<시기리아 바위성으로 들어가는 주출입구: 사자의 발톱이 남겨져 있다.>


스리랑카의 고대 도시시기리아

스리랑카 고대의 도시들은 이러한 믿음을 기반으로 세워졌고, 불교가 도시계획의 중심이었다. 또한 스리랑카는 불교의 태생적 모습을 가장 잘 간직한 나라로 알려져 있다. 

그 믿음을 만들었던 사람들은 이젠 사라지고 없지만, 그 흔적을 더듬으려는 순례자들이 아직도 이곳을 찾는다. 한번 생겨난 믿음은 시공간을 넘어 존재한다.     


광기로 만들어진 바위 성

시기리아는 비극과 광기의 역사가 낳은 경이로운 장소다. 멀쩡한 정신을 가진 사람의 머리로는 절대로 탄생하지 못할 곳이었다. 이곳은 마치 하늘 위에 떠 있는 바위 성과 같다. 마치 미야자키 하야오의 ‘천공의 성, 라퓨타’를 보고 있는 듯하다. 

5세기, 스리랑카에는 왕이 되고픈 서자 카샤파가 살고 있었다. 그는 왕이 되고픈 욕망에 휩싸여 부왕을 살해했고, 보복이 두려운 나머지 기존의 수도(아누라다푸라)를 버리고 거대한 바위 위(면적 약 15,000㎡, 높이 200m)에 요새 같은 왕국을 건설했다. 

그가 찾아낸 곳은 적의 침입이 어려운 곳임에는 분명했다. 그러나 너무 두려움에 휩싸인 나머지 왕은 스스로 고립되는 선택을 하게 되었다.

그의 집권 기간은 20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그가 남겨 놓은 바위 성의 화려한 벽화, 관개시설, 도시계획 및 정원계획 등은 과거 찬란했던 스리랑카의 문화와 기술을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카샤파 왕이 죽은 후, 수도는 다시 아누라다푸라로 옮겨갔다. 이곳은 14세기까지 불교의 수도원으로 사용되다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 후 1831년 영국 장교에 의해 발견되면서, 다시 세상 밖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역사상 가장 오래된 정원계획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정원계획으로 평가받는 곳이다. 고대 정원계획에 대한 스리랑카 사람들의 뛰어난 감각을 살펴볼 수 있다. 시기리아의 정원은 물의 정원, 돌의 정원, 테라스 정원으로 크게 3가지로 나누어진다. 물의 정원은 평지에서 정확한 대칭적 균형으로 계획되었고, 돌의 정원과 테라스 정원은 산등선을 따라 비대칭과 곡선으로 계획되었다. 이 정원들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고대 스리랑카인들은 주변 환경을 적극 이용하면서도, 동시에 자연에 크게 의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전통은 여전히 제프리 바와를 중심으로 현대 건축에까지 연결되고 있다.   

<시기리아의 도시계획(왼)과 정원계획(오른)>
<시기리아의 정원계획>


바위성에 오르기 위해서는 영국 식민지 정부가 100년 전에 만들어 놓은 통로를 이용해야 한다. 약간은 위험해 보이는 녹슨 철재 계단은 바위의 중턱에 설치되어있다. 이 오래되어 녹슬고 구멍이 뚫린 철제 난간을 믿을 수 있을까?  

원통계단을 올르면 바위 절벽에 그린 벽화가 있는 회랑으로 연결된다. 한 때 500여 명의 압사라(힌두교와 불교에서 등장하는 구름과 물의 여신)가 있었지만, 지금은 20여 점만 남아있다. 카샤파 왕이 죽은 후, 승려들을 위한 시설로 쓰이는 동안, 반나체의 여자들이 민망해서 많은 부분이 훼손되었다고 한다.      



도시는 욕망으로 발전한다

정상에 도착했다. 가파른 바위를 힘들여 올라왔건만, 정작 왕이 살았던 터는 허망할 정도로 초라하다. 생각보다 작은 왕의 주거지와 의전 의자, 저수시설, 관료들의 주거지 흔적만 보였다. 

어쩌면 권력이란 이런 것일까? 용쓰고 애쓰고 별짓 다해서 얻은 건, 그저 허망함뿐일지도 모른다. 

때로는 지나친 광기가 경이로운 건축물을 남긴다. 넘치는 사랑으로 만든 타지마할, 인간의 허영심이 탄생시킨 베르사유 궁전, 나치즘 특유의 과대망상증이 낳은 베를린 계획(Germania), 그리고 이 작은 섬나라의 시기리아까지. 광기와 욕망으로 우리는 도시를 만들어 왔고, 여전히 우리 곁에 존재한다.      


<시기리아 바워성의 정상>


믿음의 섬나라

스리랑카 사람들은 종종 외지인의 종교가 무엇인지 궁금해한다. 현지인들은 종교란 나약한 인간이 이 험악한 세상을 살아가는 하나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종교가 다른 것은 이해하지만 종교가 없는 것은 이해하질 못한다. 그들은 종교가 없는 나에게 말한다. 

“어떤 종교라도 좋으니 얼른 아무거나 하나 정해서 믿어 보세요.”


이 작은 섬나라는 다양한 민족의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에 따라 믿는 종교도 다르다. 민족 구성의 과반수를 차지하는 싱할라인이 약 70%로 이들 대부분이 불교인들이다. 그리고 약 20%에 해당하는 타밀인은 힌두교를, 나머지 10%는 이슬람교와 기독교 등을 믿는다. 

그렇게 다양한 종교가 작은 섬나라에 존재하지만, 이들은 종교의 다름에서 오는 차이를 인정한다. 그 점은 우리가 배울 점이 아닌가 싶다.

<시기리아 바위성의 정상>



[이야기의 장소] 스리랑카 시기리아

[위치] https://goo.gl/maps/3qcA64GHskqJQA5TA


이전 07화 게으른 자들을 위한 곳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