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종현 May 22. 2019

게으른 자들을 위한 곳

벤토타 비치클럽 호텔

아침부터 부산을 떨었다

간단히 아침밥을 챙겨 먹고 서둘러 떠날 채비를 시작했다. 작은 가방에다 수영복과 읽을 책, 땀에 젖어 냄새가 나기 시작할 때 갈아입을 여벌 티셔츠, 수건 등을 집어넣으니 간편해야 할 가방이 빵빵해져 버렸다. 

콜롬보에서 버스를 타고 땀이 나는 몸을 현지인들과 부대끼며 해변도로를 따라 약 2시간을 넘게 달렸다. 좁은 공간에는 땀에 젖은 사람들의 암내로 가득했다. 

어떤 일본 학자가 연구한 자료에 의하면, 한국인은 지구 상에서 암내가 가장 적게 나는 민족이라고 한다. 겨드랑이의 쾌적함으로 세계를 제패할 줄은 몰랐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은 일이다. 그렇다고 어디 가서 자랑하고 다니기엔 다소 이상한 이야깃거리임이 분명하다. 


제프리 바와의 수작벤토타 비치클럽

호텔 건물이 아름다운 건 건물 혼자만의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다. 바와의 건축이 놀랍도록 아름다운 건, 그가 자연환경에 기대어 건물을 만들기 때문이다. 이 호텔도 아름다운 벤토타의 풍경과 만나 절정을 이룬다. 특히 다듬지 않은 바위를 적절한 곳에서 노출시키면서 건축물이 마치 자연의 일부인 것처럼 위장하기도 한다.  

바와는 현대 건축물에 전통적인 요소를 많이 반영했다. 그럼에도 전통적 요소를 어설프게 베껴놓지 않고 독창적으로 재해석했다. 그 결과 이 호텔에는 마치 잃어버린 고대 장소의 흔적, 식민지 건축양식이 현대적 감각으로 잘 조화되어 있다. 그렇게 과거에서 온 익숙한 편안함과 자연에서 온 생경한 아름다움이 이 호텔에 잘 반영되어 있다. 

초기의 계획안은 거대한 공공 공간과 30개의 객실이 전부였다. 바와는 자연을 압도하지 않는 작은 호텔을 원했다. 그러나 개발이 진행되면서, 20개의 객실이 있는 북쪽 동이 추가되고, 40개의 객실을 위한 남쪽 동이 추가되었다. 돈이 되는 개발은 언제나 사람들의 욕심이 뒤따랐다.  

  


가난한 나라의 스마트한 건축

호텔을 지을 당시, 오랜 내전으로 스리랑카는 공사자재와 가구, 조명, 장식품 등을 수입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그렇지만 바와는 가난한 나라가 가진 재료와 인재를 현명하게 사용했다. 이 호텔도 국내에서 구할 수 있는 자재로 대부분 지어졌다. 또한 지역 예술가의 도움을 받아 내부를 꾸몄다. 

그러니 좋은 재료가 없어 좋은 건물을 못 만든다는 변명은 여기선 궁색할 뿐이다.   

  

<호텔의 출입구, 지역에서 생산되는 자재와 지역 예술가의 도움으로 완성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중정

이곳에는 이제까지 살면서 본 중정 중에 가장 아름다운 중정이 있다. 중정의 연못에는 나무가 자라는 세 개의 작은 섬이 있다. 섬 위의 나무는 마치 물 위를 부유하고 있는 것만 같다. 물 표면에 반사된 나무의 복잡한 줄기와 푸른 하늘이 중정의 분위기를 주도한다. 섬에서 흘러나오는 작은 물줄기가 만드는 잔잔한 물결이 수면에 반사된 풍경을 일그러트린다. 

중정은 객실과 호텔 리셉션을 연결해주는 공간이다. 처음 바와가 호텔을 지을 당시에는 로비에서 중정으로 바라보는 창문을 유리로 막아놓지 않았다. 자연적으로 공기가 순환하도록 두 개의 공간을 열어놓았었다. 

그러나 후에 에어컨을 요구하는 관광객들이 많아지자 유리로 창문을 막았다고 한다. 나는 ‘투어리스트’는 ‘테러리스트’라는 말이 떠올랐다.



게으름을 추천합니다

나쁘지도 좋지도 않은 점심을 먹고, 야외수영장으로 내려갔다. 광활한 평원에 누워있는 듯 조용하고 약간은 고립된 평화가 몰려왔다. 누워서 책을 읽으려 했지만, 정작 그 편안한 풍경 속에서 머리마저 생각하기를 멈춰 버렸다. 그저 한참을 그렇게 누워있었다. 몸의 근육은 긴장하기를 멈추었다.

한국 사회는 나에게 계속 부지런하길 강요했다. 그러나 여기의 삶은 너무 부지런할 필요가 없다는 걸 가르쳐 주었다. 자신의 에너지를 고갈시키지 말라고 한다. 

과연 나는 이제까지 누구를 위해, 그리고 무엇을 위해 그렇게 부지런을 떨고 살았을까? 내가 부지런했던 건 대부분이 남의 이익을 위해서였다는 걸 안다. 정작 나에게 부지런한 적은 없었다. 

노동의 착취는 공동체의 발전과 전체의 행복을 위해 개인이 희생하거나 감당해야 할 사소한 일이었다. 우리 아버지의 시대가 그랬고, 나의 시대도 그렇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개인이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로 구성된 사회는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인가?’       



세상에서 적당한 개발이란 없다

바와는 이 호텔이 주변의 자연환경에 비해 너무 크게 개발되었다고 생각했다. 물론 초기의 규모를 본 적이 없기에 비교를 할 수는 없다. 문제는 이렇다. 세상에는 적당한 개발이 존재하지 않는다. 개발이 한번 시작되면 끝없이 이어지는 개발의 길을 걸어야 한다. 최대한의 이윤을 얻고 최대한 이용할 수 있을 때까지. 그렇게 자연도 인간도 고갈되어 사용되었다.   

건축은 자연이라는 공간을 훼손하고 탄생하는 결과물이라는 숙명을 피해 갈 수는 없다.      

멀리서 들려오는 천둥소리에 잠에서 깨서보니, 주위가 갑자기 어두워져 있었다. 그 비구름은 점점 호텔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호텔 마당까지 어두워졌다. 그리고 곧 비가 쏟아졌다. 해변에서 여유를 즐기던 사람들은 서둘러 소지품을 챙겨 호텔 내부로 황급히 사라졌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 아름답다

늘 그렇듯 유별난 히피들이 알려지지 않은 곳을 찾아낸다. 벤토타는 저렴하지만 아름다운 파라다이스와 같았다. 바다와 강이 만나는 이곳에는 몇 개의 작은 상점과 현지인들이 사는 허름한 집들이 전부였다. 그러나 평온하고 작은 마을이었던 벤토타는 언제부터인가 관광객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그렇게 새로운 관광지가 개발되는 동안, 현지인이 멀뚱멀뚱한 눈으로 말한다.

“이 작은 마을에 뭐 볼 게 있다고, 그렇게들 몰려오는 거요?”

이제야 알 거 같다. 날 것의 자연 그대로가 주는 아름다움을 말이다. 원래 모습 그대로 자연은 아름답지만, 자꾸 사람들은 거기에다 뭔가를 보태려고만 든다. 그건 대부분 욕망이다. 편하게 아름다움을 즐기고자 하는 욕심이다.      



우리는 우리의 잘못을 알아야 한다. 

여행자로서, 우리는 우리의 잘못을 알아야 한다. 여행자들은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세상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 비행기를 이용해 기후변화를 적극 앞당기고 있고, 우리가 방문하는 곳에 경쟁적으로 건물이 들어서게 만들고, 현지 물가를 비현실적으로 올려 정작 현지인은 그 높은 물가를 감당할 수 없게 만든다. 자연환경을 오염시키고, 현지인에게 돈 맛을 알게 만든다. 이뿐인가? 우리는 현지인에게 상대적인 박탈감도 안겨준다. 우리는 그렇게 세상을 떠돌며 그대로 아름다운 자연을, 그리고 그대로 순수한 사람을 오염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장소: Bentota Beach Hotel, 1967-69, Bentota     

설계: 제프리 바와

건축가 제프리 바와의 소개: 열대 모더니즘(Tropical Modernism)을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스리랑카의 지역 건축가이다. 40여 년간 개인 주택, 정원, 호텔, 오피스 빌딩, 학교, 관공서 건물, 상점까지 약 50채의 건물을 설계했다. 


이전 06화 오래됨의 아름다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