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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현 May 15. 2019

오래됨의 아름다움

드 사람 하우스

이 정글 같은 도시는 어떻게 변할까?

스리랑카의 수도, 콜롬보는 마치 정글에 묻혀버린 작은 도시 같다. 조금만 상공으로 올라 이 도시를 바라보면 도시의 흔적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 그곳엔 거대한 열대우림만 보일 뿐이다. 

현재의 스리랑카는 오래됨과 새로움, 옛것을 지키려는 자와 신식 문물을 받아들이려는 자, 변화가 두려운 자와 변화가 가져올 번영을 동경하는 자가 뒤죽박죽으로 공존한다. 내전 후 콜롬보는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지금은 이렇게 푸른 도시지만, 이 도시도 곧 변할 것이다. 무지막지하게 쏟아지는 외국자본에 의해 뾰족한 유리 빌딩들이 하루가 다르게 생겨나고 있다. 특히 중국의 영향은 무서울 정도다. 인도를 견제하기 위해 막대한 투자를 쏟아붓고 있는 중국은 콜롬보도 싸구려 중화권 변두리로 만들어버리고 말 것이다.      

<콜롬보, 거대한 가로수가 도시를 지배한다.>


오래된 할머니가 사는 오래된 집

콜롬보에는 바와가 설계한 주택이 꽤나 있다. 그러나 주택은 그 집에 사는 가족의 프라이버시가 있기 때문에, 무턱대로 구경을 시켜달라고 말하기가 참 미안하다. 유명한 건축가가 지은 집이니 그동안 얼마나 많은 낯선 사람들이 문을 두드렸을까? 

그렇게 망설이다 집을 지나쳤다. 그렇게 일 년이 흘렀다. 우연히 콜롬보를 방문할 일이 있어 찾은 집에 앞에서 그날도 망설이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현관문이 열렸다. 그리고 허름한 옷을 입은 할머니가 현관문 앞마당으로 나왔다. 할머니가 오늘 배달된 신문을 집으려는 순간이었다. 다시 그 작은 문 안으로 사라지기 전에 집주인을 막아서서 물었다.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집 좀 구경시켜 주실 수 있으세요?”

잠시 놀라는 표정이 살짝 얼굴에 스쳐 지나가긴 했지만, 선뜻 “그러세요.”라고 허락을 받았다. 이렇게 실제 사람이 거주하는 바와의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아름답고 작은 문이 열렸다

이 주택은 동일한 구조를 가진 네 채의 집이 나란히 붙어 있다. 의뢰자가 네 자녀를 위해 1970년 바와에게 설계를 부탁한 집이다. 스리랑카는 조금이라도 경제적 여유가 있으면 자녀들이 결혼할 때 이렇게 집을 새로 지어서 보낸다. 살림이 조금 빠듯한 집은 땅이라도 사서 보내는데, 나중에 아들과 딸들이 10년이고 20년이 걸리더라도 자신의 벌이로 집을 지어나간다. 집을 짓기 위해 은행에서 돈을 빌리지는 않는 모양이다. 

스리랑카 사람들에게 집이란 투자의 개념보다 평생을 가족과 함께 살아갈 소중한 터전으로 생각하는 개념이 강하다. 

집은 크지 않다. 놀랍도록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유지하면서도 개방된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다. 상대적으로 적은 면적(15m×35m)에서 공간 사용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구성은 간결하고 집약적으로 설계되었다. 

각 집의 구조는 크게 세 등분으로 나누어진다. 첫 번째 공간이 주차와 응접실, 두 번째 공간은 사적인 공간인 침실이 있고, 맨 안쪽의 세 번째는 공용공간으로 양 옆으로 중정과 마당을 둔 거실이 있다. 현관을 통해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공간은 점점 더 밝아지고 상쾌해진다.


부모의 마음이 담긴 집

이 집은 네 자녀가 같은 동네에서 나란히 생활하기 바랐던 부모의 마음이 담겨있다. 물론 그 결과는 부모의 뜻과는 달랐다. 세월이 흘러 할머니가 된 딸들 중 딱 한 명만 여전히 이 집에서 살고 있고, 나머지 세 채의 집들은 어느 광고회사의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었다.  

집주인 할머니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스리랑카에서 제프리 바와가 설계한 집에 산다는 건 무척이나 명예로운 일이에요. 바와의 주택을 소유한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자랑스러운 일이죠. 제프리 바와는 스리랑카에서 존경받는 인물이고, 우리나라의 건축뿐만 아니라 사회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친 사람이니까요.”

사람이 사는 집이라 약간은 어지러이 자리 잡은 살림살이들, 가족들의 추억이 담긴 오래된 사진이 벽에 걸려 있었고, 집주인의 취향을 짐작하게 하는 골동품들이 흥미로웠다.      


취향을 권하는 건축가

바와는 종종 건축주에게 집안에 사용될 그림이나 장식품, 가구에 대한 조언을 주곤 했다. 이 할머니 댁에 놓인 장식품에서 바와의 취향이 묻어나는 것은 바와가 그런 작은 물품에도 관여를 했기 때문이다. 

사실, 바와에게 집을 설계할 정도면 스리랑카에서는 부자이거나, 명망이 높거나, 정치인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집은 아담했고 살림살이들이 사치스럽지 않았다. 여느 평범한 가정집을 엿보는 느낌이었다.      

이런 집에서 살면 어떤 느낌일까?


오래됨의 아름다움

오래된 공간이 화려하지 않더라도 집이 아름다운 이유는 새집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멋이 있기 때문이다. 화려하게 빛나는 청춘의 멋도 멋지지만, 품위 있게 늙은 사람의 아름다운 멋을 이기진 못한다. 우리는 젊음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어쩌면 젊음이란 그 육체적 아름다움을 찰나의 시간에 담은 것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인생의 긴 터널을 지나 사연이 많은 노인이 들려주는 삶의 지혜는 그렇기에 재미있고 흥미롭다. 무언가가 아름다워지려면 오랜 시간을 거치는 동안의 섬세한 관리가 필요하다. 이 할머니의 오래된 집처럼 말이다. 

나도 이제는 젊음을 동경하는 나이가 되었다. 그러나 서슬 퍼렇던 젊음의 시절로 돌아갈 기회를 준다면 나는 거절하겠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 수없이 저질렀던 실수와 좌절들을 겪고 싶지 않다. 그렇게 성장한 그 길을 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다. 그건 한 번으로 족하다. 인생은 그렇게 흘러가야 한다.      


어떻게 잘 늙을 것인가? 

요즘 들어 새로운 고민이 하나 생겼다. 그건 '나는 어떻게 잘 늙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오래된 집은 간간히 수선이 필요하다. 그렇듯 나도 어딘가를 조금만 잘 수선하면 그렇게 큰 문제없이 ‘오래된 아름다움’을 간직한 집처럼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낯선 이가 찾아와 문을 두드리면 편안한 휴식과 삶의 지혜를 제공할 수 있는 그런 여유가 있는 사람으로 늙어가길 희망한다.  


집과 함께 늙어가는 할머니의 거실 한 구석에는 빨래가 말라가고 있었다.      






장소: De Saram Terrace House, 1970-73, Colombo     

설계: 제프리 바와

건축가 제프리 바와의 소개: 열대 모더니즘(Tropical Modernism)을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스리랑카의 지역 건축가이다. 40여 년간 개인 주택, 정원, 호텔, 오피스 빌딩, 학교, 관공서 건물, 상점까지 약 50채의 건물을 설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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