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종현 May 08. 2019

물 위의 사원

아니다, 그건 '욕망' 위의 사원이다

<시멘트 다리를 건너야 사원으로 갈 수 있다.>


물 위에 지어진 사원


스리랑카의 고대도시들은 종교에 의해 부흥했고 종교에 의해 쇠락의 길을 걸었다. 아누라다푸라(Anuradhapura)와 폴로나루와(Polonnaruwa) 등의 고대도시에는 불교가 처음 이 나라의 땅에 생겨날 적의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이러한 불교 양식은 스리랑카의 삶과 문화 그리고 건축에 큰 영향을 미쳤다.

콜롬보에는 호수 위에 지어진 불교 사원이 있다. 제프리 바와가 설계한 것으로, 그 또한 이 사원을 지을 때 스리랑카의 고대 불교 사원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  


이 사원의 이름은 시마 말라카, 작은 규모지만 아름답고 신성하며 특별하다.      



한 무슬림은 복수로 지어진 불교 사원


이 프로젝트는, 무사지(Moosajee)라는 무슬림 사업가가 재원을 지원하면서 시작되었다. 불교 사원을 짓는데, 왜 하필 무슬림의 지원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나름 성공했던 사업가였던 무사지는 자신이 속해 있던 무슬림 지역사회에 밉보이고 만다. 그가 정확히 어떤 잘못을 했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는 결국 스리랑카에서 추방당하는 수모를 겪는다. 이에 무진장 화가 난 무사지는 무슬림 사회에 복수를 하기로 결심한다. 어차피 떠날 스리랑카에 불교가 더 발전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자신의 돈을 이 프로젝트에 기부했다. 자신을 미워한 무슬림 사회에 대한 불만의 표시였던 셈이다. 

한 무슬림의 유치하고 복수심으로 가득 찬 발상이었지만, 호수 위에 사원을 짓길 제안한 바와의 아이디어와 만나 기발한 현대식 사원이 탄생하게 되었다.       


<부속 공간인 보리수 사원, 불교와 힌두신이 같은 공간에서 숭배되고 있다.>


스리랑카에서 현존하는 유일한 현대식 불교 사원


이 사원은 스리랑카에서 현존하는 유일한 현대식 불교 사원이다. 또한 바와가 유일하게 지은 불교 사원이기도 하다. 그리고 유일하게 승려들이 상주하지 않는 기념비적이고 상징적인 건물이다. 사원은 출가한 승려들의 시작을 알리는 의식을 치르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곳은 크게 세 개의 공간으로 나누어진다. 중심이 되는 사당의 양쪽으로 작은 부속 사원들을 두고 있다. 중앙의 메인 사당은 네팔의 건축 양식을 차용했다. 내부는 길게 쪼개진 나무판을 배열해 바람이 통하고 그늘이 진다. 사당의 둘레에는 복도를 따라 수십 개의 부처상이 놓여 있었다. 각자 다른 손 모양과 다른 미소를 띠고 있다. 오른쪽에는 불교 의례를 위한 공간이, 왼쪽에는 보리수 사원이 있다. 각 사원과 입구는 작은 시멘트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사원의 배치가 독특해 보이지만, 실은 전형적인 싱할라 고대 사원의 배치 방법(중앙 공간을 중심으로 작은 공간들이 대칭 형태로 배치)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중앙 사당을 중심으로 두 개의 작은 공간이 연결된다.> 
<스리랑카 전통양식을 따르면서도 중앙 사당의 외벽은 네팔의 양식을 도입해 시원하게 열린 공간을 만들어냈다.>
<중앙 사당의 둘레에는 각기 다른 모습의 표정을 가진 수십 개의 부처상이 있다>


욕망 위의 섬


보리수 사원의 네 모퉁이에는 힌두의 주요 신들을 모신 작은 사당도 있다. 한 공간에 공존하는 다른 종교의 다양한 신들은 흥미로운 이웃이다. 스리랑카 사람들에게 어떤 종교를 믿느냐는 사실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다만, 그들은 무엇이든 믿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그렇게 작은 믿음 위에 만들어진 섬에는 없애고자 애쓰는 걱정과 불안, 얻고자 애쓰는 욕망을 염원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어쩌면 그들은 신의 존재 자체를 크게 신경 쓰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저 자신이 짊어진 삶의 무게를 내려놓기 위해 이곳을 찾았을지도 모르겠다. 마치 플라시보 효과처럼 말이다. 나의 사연을 들은 신이 그걸 들어주든지 말든지는 애초에 큰 상관이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상처 받은 인간은 어쩌면 말할 상대가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신은 훌륭한 정신과 의사일지도 모른다. 혹은 자신의 이야기를 끝없이 들어주는 좋은 친구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위기에 처한 인간을 등쳐먹는 사기꾼일지도 모른다. 


애초에 신은 자연이었다. 그리고 신은 인간에 의해 창조되어 숭배되었고, 그런 신은 다시 욕망을 갈구하는 인간을 창조했다.


<현지인들은 부처를 만나고 난 뒤에, 각기 다른 소원을 들어주는 전담 힌두신을 찾는다.>


종교는 우리에게 질문을 허락하지 않는다


인간의 역사는 질문을 던지고 그 해법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발전해 왔다. 그러나 종교는 수천 년 전에 구성된 가치 덩어리임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가치로 질문을 던질 수가 없다. 

이슬람교를 믿는 여성은 히잡을 둘러쓰면서 자신이 보호받는다고 믿는다. 그러나 다른 문화권은 여성의 인권을 제한하는 행위라고 말한다. 인도에서 시크교를 믿는 사람은 오토바이를 탈 때 헬멧 대신에 터빈만 착용해도 안전하다고 믿는다. 그건 터빈을 씀으로써 자신의 머리가 신에 의해 보호받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얼마나 다른가? 그리고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는가?   

현지인들은 가끔 나의 종교에 대해서 묻곤 했는데, 내가 “전 종교가 없어요.”라고 말하면, 대부분 엄청난 충격에 빠지곤 했다. 그들은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

“아니, 여보쇼! 어떻게 종교가 없을 수 있죠? 그러니까 인간이 말이요.”  

그들은 어떻게 인간의 삶이 믿음 없이 살아갈 수 있는지를 태생적으로 이해하지 못한다.      


세상은 아이러니하고 나는 믿음이 부족하다


바와가 어떤 마음으로 이 사원을 만들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종교가 없는 사람이 설계를 맡았고, 이슬람교가 스리랑카에서 망하길 원했던 한 무슬림의 후원으로 지어졌다는 것이다. 그렇게 믿음의 부재, 복수와 증오를 바탕으로 건설된 사원에서 사람들이 무언가를 갈구한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사연은 복잡하고 말도 안 되게 우스꽝스럽지만, 사원은 그저 아름답기만 하다. 마치 아름답고 거대한 자연은 그럴 마음이 없이 존재하는데, 사람들이 찾아와 숭배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아누라다푸라(왼)의 불교 다고바'와 '콜롬보의 이슬람교 사원(오른)', 스리랑카에는 다양한 민족이 다양한 종교를 가지고 있다.>


Pray for Sri Lanka




[이야기의 장소] 시마 말라카(Seema Malaka), 1976-78년에 제프리 바와가 설계, 콜롬보     


[찾아가는 법]

시마 말라카는 스리랑카의 수도 콜롬보에서 꽤나 알려진 관광지인 강가라마 템플의 입구 쪽에 있는 호수 위에 위치해 있다. 강가라마 템플과 함께 찾아가면 좋다.

https://goo.gl/maps/oqxotuCJY8rSE7EJA

이전 04화 한 개인의 역사가 담긴 비밀의 정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