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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현 Apr 24. 2019

자연이 되고 싶었던 호텔

칸달라마 호텔

칸달라마 호텔

비가 오는 스리랑카를 사랑한다


비가 오면 거대한 정글 속에 홀로 남겨져 샤워를 하는 것만 같다. 세상은 무지막지하게 내리는 빗소리에 묻혀 고립된 평온이 몰려온다. 주변에는 날씬하게 쭉 뻗은 고무나무와 코코넛 나무, 파파야 나무들로 가득하다. 빗방울과 레몬 그라스 풀이 부딪혀 은근한 레몬 향기가 몰려온다.  

이런 날에는 어딜 나갈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다. 이곳에서 비는 운명과 같다. 피할 생각을 하지 않는 게 좋다. 

이상할 것 없이 곧 전기마저도 끊기고 만다. 천장에 돌던 팬이 멈추어 방안은 슬슬 후덥지근해지기 시작했다. 우려낸 홍차 한 잔을 들고 서둘러 베란다 밖으로 비를 맞이하기 위해 나섰다.  

비는 마치 이 세상의 종말이라도 앞당길 기세로 쏟아진다. 한꺼번에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쏟아지는 비를 보면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게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든다. 그렇지 않아도 조용하던 동네가 빗소리에 묻혀 더 적막해졌다. 

생각보다 빨리 비는 인간의 생활을 제한하기 시작한다.

‘우리네 세상에 비가 끼치는 영향이 이리도 컸던가?'

이렇게 도시만 동경하며 살아왔던 나는 비로소 거대한 자연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만다. 인간은 자연을 떠나면서 거대한 도시를 창조했다고 생각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많은 것을 잃었다.  

어쩌면 우리가 세운 벽은 너무 높고 두꺼웠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고립된 삶을 개발해왔다.      


세상 어디에도 없을 호텔

칸달라마 호텔 (Kandalama Hotel, 1991-94, Dambula)  


아침 일찍, 비에 젖은 정글 같은 마을을 나섰다. 칸달라마 호텔을 보기 위해 담불라(Dambula)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서다. 이 호텔은 제프리 바와가 남긴 가장 창의적이면서도 자연에 대한 그의 실험 정신이 잘 표현된 작품으로 유명하다. 바와는 남들이 생각하는 호텔이라는 정의를 지나가는 개에게나 줘버리고, 세상 어디에도 없던 논리로 이 호텔을 지었다. 

개인적으로 이 호텔을 보고 있으면 꼭 자연이 되고 싶었던 하나의 건물을 보고 있는 것만 같다. 거대한 정글 숲 속에서 자연이 되고자 했던 호텔을 말이다. 건축은 자연과는 상반되게 늘 인공적인 무언가를 만드는 행위이다. 그런데 자연이 되고자 했던 건축을 만들었다는 건 어쩌면 과한 욕심이었을지도 모른다.      


<호텔 출입구>

    

숲 한가운데 지어진 호텔


원래의 건축주 의도대로라면 이 호텔은 스리랑카에서 가장 유명한 유적지 중의 하나인 시기리아(Sigiriya) 바위성 근처에 지어졌어야 했다. 그러나 바와는 시기리아에서 11km나 떨어진 외딴 숲 속에다 호텔을 지었다. 

바와가 설계를 의뢰받아 대지를 살펴보러 헬리콥터를 타고 날아가던 길에, 문득 내려다본 호수와 어우러진 숲의 모습에 바와는 매료되고 만다. 그는 건축주를 설득했다. 시기리아와 거리를 유지하면 역사적 유적지를 보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호수의 아름다운 풍경을 잘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이렇게 그의 제안으로 접근이 상당히 불편한 숲 속에 호텔이 만들어졌다.         


호텔의 내부는 별로였다


<호텔의 입구, 마치 동굴 같다.>

바와는 자연에 최소한의 부담을 주기 위해 호텔로 진입하는 도로마저도 포장하지 않았다. 그리고 새로 길이 들어설 자리에 있었던 나무는 죄다 파서 조심스럽게 다른 곳으로 옮겨 심었다. 그렇게 칸달라마 호텔로 가는 길이 조금은 귀찮고 먼지가 날리게 되었다.

그렇게 쉽지 않은 먼 길을 지나 호텔의 입구에 도착했다. 

입구의 안쪽은 갈수록 좁아져 어둠에 휩싸여 있다. 좁은 동굴 같은 통로를 지나면서 다시 한번 바와의 의도대로 궁금증이 촉발되고 만다. 그 통로를 향해 호텔 내부로 들어갔다. 흡사 어두운 중력에 이끌리듯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나는 거부할 수 없었다. 어떤 새로운 세상이 내 눈 앞에 펼쳐질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일까? 안으로 들어가 본 호텔의 모습이 그렇게 훌륭하지는 않았다. 평범한 실내 디자인과 디테일이 떨어지는 마감 수준이며, 사용된 가구와 재료들은 호텔로써의 정체성을 의심스럽게 만들었다. 

호텔이라면, 그러니까 ‘나름 유명한 건축가가 설계한 호텔이라면 이렇게 수수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라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호텔 내부>


바와는 자연에 겸손한 호텔을 지었다


그러나, 그러나 말이다. 이상하게도 그 짧았던 실망도 잠시였다. 잠시 생각을 고쳐먹을 필요가 있다. 그래, 바와가 원했던 건 호텔 내부의 고급스러운 디자인이 아니었다. 맞다. 그가 보여주고자 했던 건, 건물이 아니었다. 호텔 하나 보자고 이렇게 멀고 험한 곳으로 여행자를 번거롭게 안내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럴 거면 당초 계획대로 시기리아에 근사하고 화려한 호텔을 지었으면 될 일이었다. 

바와는 이곳에서 호텔 말고 다른 것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다. 

‘그것은 자연이다.’

열대우림의 아름다운 자연을 보기 위해서는 열대우림 속으로 들어와야 하는 게 아닌가? 바와는 이 아름다운 정글 속으로 우리를 초대한 것이었다.         


<건물은 굳이 외벽을 막아두지 않았다. 자연을 향해 열린 공간은 마치 거대한 베란다 같다.>


그리고 한낮의 정글 쇼가 시작되었다


바와가 디자인한 의자에 앉았다, 이제 막 시작된 한낮의 정글 쇼가 내 눈 앞에서 펼쳐지기 시작했다. 실내는 깊고 어두웠다. 외부에서 진입해 갑자기 어두워진 실내 때문에 동공이 확대되길 기다렸다. 적응된 내 눈은 다시 밖의 밝은 풍경에 눈이 부셨다. 명암 차이는 극적이고, 나의 동공은 이리저리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바와가 디자인한 부드러운 곡선이 인상적인 검은색 철재 의자에 앉아 밖을 보고 있으면, 실내에 있으면서도 외부의 시선에 압도당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게 자연을 향해 열어 놓은 공간들이 점차 내부의 흔적을 지우고 있었다. 어두운 실내에 비해 한낮의 빛을 다 쏟아내고 있는 외부는 극단적으로 밝다. 

오후 2시를 넘긴 낮의 태양은 무대 조명이 된다. 호수와 열대의 나무가 질서 없이 엉켜있는 자연은 그대로 아름다운 무대가 된다. 깊고 어두운 관람석에 앉은 나는 그저 자연이 만들어 내는 훌륭한 무대나 조망하라는 바와의 의도를 따른다. 나는 말이 없이 시선을 밖에 둔 채 한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조용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제프리 바와, 당신은 천재였군요.


자연이 되고 싶었던 호텔

<호텔의 외벽은 오래 자란 덩굴에 묻혀있다.>

정글 속으로 파고든 칸달라마 호텔을 통해 바와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제아무리 인간이 멋진 건축물을 만든다고 하더라도, 그게 어찌 아름다운 자연을 압도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난 이 웅장한 자연을 바라볼 수 있는 거대한 베란다 같은 건물을 만들고 싶었어요.”

칸달라마의 호텔은 우리가 알던 그런 호텔이 아니다. 주변의 아름다움에 자신의 화려함을 양보한 건물, 그래서 더불어 아름다워진 호텔이다. 

바와는 끊임없이 건물과 자연의 경계를 없애는 작업을 했다. 자연을 내부로 끌어들이다 못해 자연의 일부가 되고 싶었던 모양이다. 

벽을 뚫고 나온 바위 덩어리는 굳이 제거하지 않아 자연이 건물로 침입할 수 있도록 방관하고 있다. 건물에 칠해진 페인트 색은 검은색과 흰색으로 주변에 거슬리는 않는 색으로, 녹색은 자연의 색을 차용해 때로는 나무 사이에서 위장을 하기에 알맞았다. 

외벽에는 열대 특유의 늘어지는 넝쿨식물 줄기가 치렁치렁 건물을 감싸고 있었다. 외벽을 넝쿨로 감싸기 위해 바와는 4년이라는 시간을 계획했다고 한다. 그로 인해 호텔은 식물로 뒤덮여 마치 자연에 파묻힌 것만 같았다. 


제프리 바와는 자연에 맞서기보다는 오히려 자연의 장점을 끊임없이 건축 안으로 끌어들였다. 


그렇게 호텔은 자연의 일부가 되었다.





<칸달라마 호텔의 입면도(왼)와 평면도(오른)>


가는 법

칸달라마 호텔은 호텔로 운영이 되고 있는 만큼, 시기리아를 방문하는 여행객이라면 겸사겸사 하룻밤 묵어 가는 것을 추천한다. 담불라 타운에서 꽤나 먼 거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현지에서 트리윌(일명 뚝뚝이)나 택시를 타고 이동하길 권한다. 

https://goo.gl/maps/QoEFAe97wTMFXgLA7


Reference

1. 칸달라마 호텔의 평면도, 입면도 사진 출처: https://archnet.org/sites/3041/media_contents/29592


제프리 바와 (Geoffrey Bawa, 1919-2003)

열대 모더니즘(Tropical Modernism)을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제프리 바와는 우리나라에서는 그렇게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스리랑카의 지역 건축가이다. 그는 상당히 많은 건물을 지었는데, 40여 년간 개인 주택, 정원, 호텔, 오피스 빌딩, 학교, 관공서 건물, 상점까지 약 50채의 건물을 설계했다. 거의 마흔에 가까운 뒤늦은 나이에 건축을 시작한 것을 고려하면 대단히 많은 건물을 지었다. 아마 닥치는 대로 지었던 것 같다. 마치 자신이 집을 짓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다고 생각한 사람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토록 많은 연습은 그를 성장시켰다. 개인적으로 방황했던 시기들은 성숙함의 토대가 되었다. 후에 바와는 정말 숨이 막히도록 아름다운 건물을 짓는 건축가가 되었다.




스리랑카를 위해 기도합니다. Pray for Sri Lan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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