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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현 Apr 17. 2019

자라나는 집

건축가의 입맛대로 40년을 뜯어고친 집

가족과 함께 자라는 스리랑카의 집


나는 스리랑카의 수도인 콜롬보의 한 외곽에서 살았다. 그곳은 작고 조용한 동네로, 나는 동네의 유일한 외국인이었다. 

나는 평범한 가정집의 2층에 세를 내고 살았는데, 어느 날 그 집주인 아주머니가 내게 말했다.

“우리 집은 아직 완성된 게 아냐. 아직도 할 게 너무 많이 남았어.”

아직도 공사 중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물론 허름한 집이었긴 했지만, 꽤나 오래된 집을 아직도 공사 중이라고 말한 것이 조금 의아했다. 

“내가 처음에 이 양반과 결혼했을 때는 그냥 빈 땅에 방 한 칸이 전부였어. 그때 우리는 겨우 방 하나를 만들 수 있을 정도의 돈만 가지고 결혼을 했거든. 그래도 남편이 성실히 일하며 돈을 벌고 모았지. 그이 덕분에 살면서 부엌도 만들고 거실도 만들 수 있었지. 그리고 큰 아들이 커서 방이 필요해지니까 다른 방을 하나 더 만들었고. 작은 아들이 큰 애 방에서 더 이상 잘 수가 없을 만큼 커버려서 또 다른 방을 만들려고 2층을 지은 거지. 이렇게 조금씩 만들어 간 거야. 돈이 생길 때까지 기다려야 했으니까.”


사실 동네에는 반쯤 지어지다 만 듯한 집에서 사는 이웃들이 많다. 그들은 자기의 형편에 맞게 방한칸을 먼저 만들어 놓고 지내다, 돈이 더 모이면 커실이나 다른 방을 더 연결해서 만든다. 

우리네가 집을 짓는 방법과는 조금 다르다. 우리는 이미 지어진 집을 가족 수나 혹은 경제적 형편에 따라 옮겨 다니는 주거문화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스리랑카 사람들에게 집이란 가족의 역사가 함께 자라는 곳이었다.    

  



건축가 바와의 집

33rd Lane, Colombo, 1959-98      


제프리 바와가 콜롬보에 거주했던 집도 마찬가지다. 바와의 집도 그가 사는 동안 수선하고 확장하길 반복했다. 

잘 나가던 변호사를 때려치우고, 늦은 나이에 런던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돌아온 바와는 콜롬보에 거주할 공간이 필요했다. 이곳저곳을 알아보던 그는 바가텔레(Bagatelle) 33번 골목길 끝자락에 작은 집 하나를 빌리게 된다. 이곳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던 바와는 자신의 주거공간과 더불어 사무실로 사용했다. 그때가 1959년의 일이다.


지금은 한 채의 집이지만, 처음에는 네 채로 쪼개진 작은 집이었다. 처음 이사 올 당시 네 채중 한 채만 세를 주고 살았는데, 후에 기회가 생길 때마다 옆집들을 사들였다. 한 채를 사들여 증축했고, 또 다른 한 채를 사들여 증축하고 고쳤다. 마음 내키는 대로 수선하고 증축하길 반복했다. 그렇게 조금씩 집을 늘려가던 바와는, 결국 집 네 채를 모조리 사들여 하나의 집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렇게 이상한 집이 만들어졌다.
<바와의 집 1층 평면도: 40년의 시간에 의해 수선된 집으로 상당히 복잡하고, 곳곳에 정원이 있다; 출처(archnet.org)>



이 집은 늘 미완성이었다


바와가 사는 동안 이 집은 늘 미완성이었다. 집 자체가 그대로 건축을 위한 실험실이었다. 바와의 끊임없이 생겨나는 변덕으로 이 집은 아주 독특하고 흥미로운 구조를 가지게 되었다.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이곤 한다지만, 바와의 호기심은 기존 우리가 가진 집에 대한 생각을 해체시켜 버리고 말았다.


이 집은 마치 자연적으로 생겨난 골목길처럼 복잡하다. 그건 처음부터 한 공간을 염두에 두고 설계한 것이 아니라 점점 공간이 확장되면서 방들을 연결시켰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집의 복도는 마치 골목길 같다. 그 복잡한 공간 속에서 쉽게 길을 잃을 수도 있다.      


바와가 이 집을 사기 전, 총 4채의 작은 집이었다. 그리고 그 집들로 이어지던 작은 골목길이 지금은 복도가 되었다. (위 사진)


과거의 기억을 소중히 여기는 집,
그리고 새롭게 재해석된 현재의 가치가 이 집을 아름답게 한다. 


공간의 곳곳에는 이렇게 천창이 있어 늘 신선한 햇빛과 공기가 들어온다.  
집의 곳곳에는 예술가와 협업한 작품들이 있다.


40년에 걸쳐 서서히 변화한 공간


평면도를 보면 집은 주거공간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정원 같다. 그 정원은 큰 규모가 아니다. 여러 개의 작은 정원들이 집 전체에 분산되어 있다. 복잡하기만 한 평면도를 들여다보기를 포기하고 집 구경에 나섰다.

좁은 통로를 따라서 이리저리 헤매다 보면, 마치 여러 공간들이 전체의 큰 덩어리 속에서 유기적으로 얽혀있는 느낌을 받는데, 이 느낌은 놀라울 정도로 신기하고 즐겁다. 


현관부터 연결된 좁은 복도를 따라 걸었다. 바와가 처음 이곳으로 이사를 왔을 당시 이 복도는 안쪽 골목길이었다. 좁은 골목길을 두고 네 채의 작은 집이 나란히 위치해 있었던 것이다. 예전 골목길의 폭은 그대로 유지되어 과거의 모습을 어렴풋이 짐작하게 만든다. 번지가 적힌 작은 간판이 아직도 벽에 남아있다. 신기하고 아름답다. 

과거의 위대한 유산은 아니지만 개인의 과거가 기록된 집이다. 이전에 그 좁았던 골목길과 주변의 환경을 기억하게 만드는 집이다. 인간은 시간을 사는 동물이다. 그렇기에 지나온 시간과 현재의 시간이 만나는 공간은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1층 거실(위)과 다이닝룸 정원의 모습(아래) 


이 집은 40년에 걸쳐 서서히 변화했다. 처음에 바와는 네 채의 집 중 세 번째 집을 빌려, 자신을 위한 침실 하나와 관리인을 위한 침실 하나, 부엌과 거실, 화장실을 만들었다. 그러다 네 번째 집이 비자, 주인을 설득해 이를 사들였고 다이닝 룸과 두 번째 거실, 전시실을 만들었다. 마침내 1968년에 첫 번째 집과 두 번째 집마저 사들이고, 첫 번째 집을 4층으로 증축하면서 지금의 모습에 가깝게 되었다. 


그가 이 집에 거주하던 근 40년 동안, 바와는 내키는 대로 그의 직감에 따라 수선하길 반복했다. 그 결과, 공간은 마치 짜깁기라도 해놓은 듯 미로처럼 복잡하다.                       



이곳은 집일까? 정원일까? 


이 집 대부분의 공간에는 크고 작은 정원들이 있다. 그 정원들이 합쳐지면, 집이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정원처럼 느껴진다. 평면도에도 나무를 많이도 그려 놓았다. 나무가 이렇게 실내에 많이 그려진 평면도를 온실 말고는 본 적이 없다. 

이곳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어느 곳이 내부이고 어디까지가 외부인지 정확히 구분하기란 어렵다. 


뚫리고 열린 공간으로 초록의 나무가 바라보인다. 한 낯의 태양은 분산되어 은은한 빛으로 실내 공간을 밝히고 있었다. 바와의 집은 내가 여태까지 봐왔던 그 어떤 집보다 흥미로웠다.  


이곳에서 제프리 바와는 평일을 보냈고, 주말이나 휴일에는 도시에서 벗어나 작은 어촌 마을인 벤토타의 루누강가에서 가까운 지인들과 함께 한적한 삶을 보냈다.


1층 현관의 모습
1층, 작은 정원에는 빛이 들어오고 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2층 게스트룸의 모습과 계단의 모습





<찾아가는 법>

현재 바와의 집은 바와의 재단에서 운영하고 있으며, 관광객의 관람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정보는 제프리 재단을 통해 관람시간을 알고 방문하시길 권합니다. 제가 방문할 당시엔, 예약이 따로 필요 없었고, 현지인 가이드가 영어로 간략한 투어를 진행해 주었습니다. 내부 사진 촬영도 가능합니다.  

바와의 콜롬보 집(33rd Lane) 구글맵 링크


<Reference>

1. 제프리 바와의 집 33rd Lane 평면도 이지미 출처: https://archnet.org/sites/3008/media_contents/29615; 더 많은 평면도와 사진은 (http://hiddenarchitecture.net/33rd-lane/)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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