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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현 Apr 10. 2019

제프리 바와의 건축이 우리에게 건네는 조언

가난한 공간에서 배움을 얻다 

가난한 자의 공간


우리나라의 건축계에서 아주 유명하신 분이 있다. 그분의 말이라면 모두가 귀를 기울일 정도다. 나는 건축을 공부하던 학창 시절부터 그 건축가가 설계한 건물들을 공부하며 자랐다. 그 스타 건축가를 향한 막연한 동경은 무조건적인 찬양으로 이어지곤 했다. 사실 그분은 대단한 사상가였다. 그리고 대단한 경지에 오른 분이라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 건축가의 이름은 승효상이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건축 철학을 ‘빈자의 미학’이라고 말했을 때, 나는 약간 머리를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에게 디자인을 의뢰하려면 한국에서 활동하는 그 어떤 건축가보다 비싼 비용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난을 모티브로 한 건물을 위해 가장 비싼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게 조금 이상하게 들리지 않는가? 

물론 승효상 건축가가 말한 그 ‘빈자’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물질적 빈곤의 상태‘를 뜻하지는 않는다. 그의 용어 선택에서 빈자란 비움을 뜻한다. 공간의 비움. 그러나 깔끔하게 비워진 생활을 유지하는데 적지 않은 돈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승효상 건축가가 말한 ‘가진 게 없는 자’의 공간은 심플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값비싼 재료로 공간을 채웠다. 승효상에게 가난은 그저 낭만적 감수성이 흠뻑 담긴 단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단어의 뜻 그대로 가난과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 그리고 가난한 자를 위한 건축도 아니며, 약자를 위한 배려도 없는 공간이다.          

물론 집을 짓는다는 행위는 자본가의 의뢰로, 그리고 상대적으로 큰 자본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행위이다. 그렇기에 건축가가 의뢰자 이외의 사람들을 배려할 의무는 없다. 따라서 건축가 승효상의 행동도 잘못된 것은 전혀 없다. 그는 지극히 아름다운 건물을 자신의 유명세에 맞는 의뢰비를 받으며 집을 설계했을 뿐이다. 


그러나 이런 개개인의 집들이 모여서 도시라는 조금 더 큰 공간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해보면, 이야기가 틀려진다.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에는 빈자와 부자가 공존하고, 약자와 강자가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며 사회를 이룬다. 이것뿐인가? 우리는 콘크리트 정글 속에서 자연을 밀어내고 있지만, 점차 우리에게 남는 건 자연에 대한 그리움이다.           


한 건축회사의 말처럼, 더 좋은 세상은 올까?



가난한 공간을 여행하다


내가 건축학도였던 시절, 나는 선진국의 선진 기술로 만들어진 건축만을 공부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선진 건축이 정답만을 향해 달려가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렇게 교과서에 없는 내용을 알게 된 것은 내가 졸업을 하고 꽤나 시간이 흐른 뒤였다. 우연히 스리랑카의 건축가 ‘제프리 바와’를 알게 되었고, 가난한 나라의 건축에서 더 많은 배움이 존재했음을 깨달았다.               


스리랑카의 철도, 영국 식민지 시절에 지어진 인프라는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나는 오만했다, 그들에게 


나는 스리랑카에서 가난하고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자 했다. 그곳에서 2년간 건축을 가르치는 봉사활동을 하게 되었다. 그 밑바탕에는 내가 그들보다 낫다는 자만이 마음 속 어딘가의 깊은 곳에 깔려있었음이 분명했다.

그 당시의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무슨 이런 저개발 국가에 제대로 된 게 하나라도 있겠어?’ 

그 당시의 난 소위 못 산다는 이 나라의 삶을 한껏 얕보았던 게 분명했다. 

그들의 삶을 보고 누군가는 이런 평가를 하기도 했다.

“저러고 사니 지지리도 가난하지.”

나는 그 말에 적극적으로 동의하진 않았다. 그렇지만 암묵적으로 그리고 소극적으로 동의하고 있었다. 그렇게 그들은 가난하다는 그 이유만으로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타인에게 자신의 삶을 함부로 평가받고 만다.

그 모든 기준들, 우리가 그들을 함부로 판단하는 기준들은 어디서 오는가? 그건 잘못된 선입견에서 온다.               

이상한 일들이 내게 벌어졌다


그러나 이곳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점차 그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삶 속으로 점점 녹아들어 갔다. 그런 그들과 어울리며 나는 한국에서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이상한 일들이 내게 벌어지고 있었다. 무언가를 가르치러 이곳에 왔지만, 난 오히려 더 많은 깨달음을 그들에게서 얻었다.


오만했던 나에게 그들은 친절했고 다정했다


그리고, 가난한 공간에서 배움을 얻기 시작했다


콜롬보의 한 카페를 찾았을 때의 일이다. 우연히 스리랑카의 지역 건축가 제프리 바와(Geoffrey Bawa, 1919-2003)가 설계한 카페를 방문하게 되었다. 

그의 건축은 우리가 발전해온 그 어떤 건축보다도 훌륭했다. 그는 마치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뭔가를 창조해내는 마법사 같았다. 냉각장치의 도움 없이도 시원하고 쾌적한 실내, 자연으로 한없이 열린 공간들, 햇빛이 잘 조절된 실내로 들어오는 자연광을 체험하면서, 우리가 그토록 찾던 자연친화적, 혹은 지속 가능한 발전이 바로 이곳에 존재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이 작고 가난한 나라에서... 그들은 어떻게 우리도 가지지 못한 건축을 지으며 살 수 있는 것일까?


나는 바와의 건축을 경험하고 그의 공간을 걸어 다니면서 그의 재능에, 그리고 그가 지은 공간들에 반하고 말았다. 그의 건축을 보고 느낀 건, 나 자신이 ‘얼마나 오만했으며 참으로 무지했는가?’에 대한 반성이었다. 나름 대학이라는 고등교육 기관을 통해 건축을 배웠지만, 그곳을 나와서야 나는 다시 건축이란 것을 다시 배웠다고 생각한다. 

‘왜 우리는 가난한 삶에서 배울 점이 없다고 단정하고 마는 걸까?’

못 사는 나라에 와서 허세나 좀 부리려 했던 나는 오히려 겸손해졌다. 그리고 가난한 나라의 건축에서 배움을 얻기로 했다.


제프리 바와의 정원, 루누강가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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