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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현 May 01. 2019

한 개인의 역사가 담긴 비밀의 정원

소금의 강, 루누강가


소금의 강

장소: 루누강가(Lunuganga), 1948-98, 벤토타(Bentota)     

루누강가는 스리랑카어로 소금을 뜻하는 ‘루누’와 강을 뜻하는 ‘강가’가 합쳐진 말이다. 강이 바다와 만나 가끔 소금물이 강 상류까지 올라온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이 강은 바와의 정원 앞을 가로질러 흐른다. 

루누강가는 스리랑카의 건축가 제프리 바와의 개인 주택이었다. 그렇지만 단순히 이를 개인 주택이라고 묘사하기엔 그 설명에 부족함이 크다.


아주 적막하고, 아주 고요한

루누강가로 가는 길은 쉽지 않다. 벤토타(Bentota) 타운에서 멀리 그리고 아주 외진 곳에 있어, 외지인이 찾아가기엔 절대 무리다. 이곳은 현지인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은 곳으로, ‘도대체 왜 이런 후미진 곳에다 집을 지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먼 곳에 있다. 

벤토타 타운에서 내려 트리윌을 타고 달렸다. 그 길은 꽤나 험난했다. 강을 가로지르고, 메인 도로에서 한참을 벗어나 달리는 동안, 스리랑카 어디서나 볼법한 마을 어귀 몇 개를 지나치자, 집도 절도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논과 밭, 숲이 질서 없이 공존하는 지루하고 평화로운 풍경이 보일 뿐이었다. 

그렇게 걱정과 지루함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좁은 길을 끝으로 루누강가의 허름한 출입구에 도착했다. 

이런 산골에, 콜롬보에서 약 2시간이 넘는 거리에 바와의 마지막 작업실이자 집이자 정원이 있다. 바와의 정원은 열대우림 한가운데 있었다. 그곳은 마치 사람들에게 버려진 곳만 같았다. 

그러나 루누강가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생각하지 못했던 놀라운 장소를 발견한 것만 같았고, 세상에 파라다이스가 존재한다면 이런 모습에 가까울 것이라는 착각마저 들었다.      


<마치 버려진 곳만 같은 루누강가의 허름한 출입구>


바와는 이 정원을 만들기 위해 건축가가 되었다

바와는 누구나 원하는 부유한 엘리트의 삶을 살았다. 그러나 어머니가 돌아간 그해 바와는 변호사 일을 그만두고, 가진 재산 일부를 처분해 긴 여행을 떠났다. 여러 곳을 여행하던 그는 우연히 이탈리아의 한 정원을 방문하게 된다. 그곳은 멀리 강이 내려다보이는 작은 농장이었다. 바와는 그 정원에 마음을 빼앗기고 만다. 그리고 스리랑카로 돌아가면 이탈리아식 정원을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스리랑카로 돌아온 바와는 여러 곳을 물색하고 다녔다. 그러던 차에 지금의 루누강가를 발견하게 된다. 그곳은 고무나무가 자라는 오래된 농장이었다. 바와는 땅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넘쳐나는 아이디어와 열정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바와가 자신의 넘쳐나는 아이디어들을 실현해 낼 건축적 지식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었다. 

바와는 정원을 만드는 일을 중단하고, 건축을 공부하기로 결심한다. 잘 나가던 변호사에서 직업을 바꿔 30대 후반의 늦은 나이였다. 그를 건축가가 되게 만들었던 장본인은 바로 이 루누강가였다.      



개인의 취향으로 가득한 정원

이곳은 바와가 가장 사랑한 곳이었다. 그가 건축가의 삶을 살기 시작한 이래로 평생을 다듬어 온 곳이기도 하다. 즉, 루누강가는 바와의 오랜 건축 실험의 장이자 휴식처였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성장하듯, 혹은 그의 바뀌는 취향에 따라, 혹은 그의 금전적 한도가 허락하는 상항에 따라 루누강가는 아주 느리게 다듬어져 갔다. 까다로운 건축주의 취향을 고려할 필요도 없었고, 돈이 되는 건물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바와가 원하는 대로 지으면 그만이었다. 그렇기에 다분히 개인적인 공간이며 바와의 취향으로 가득한 곳이다.

정원에는 여러 가지 설치물들이 즐비하다. 정원 곳곳에는 16개의 종이 있는데, 넓은 정원에서 바와가 직원을 부를 때 사용했던 종들이다. 위치를 구분하기 위해 종은 각기 다른 소리를 가지고 있다. 맑고 오래가는 소리가 있는 반면, 짧고 된소리로 듣기 거북한 소리까지 다양하다. 각기 다른 종소리를 듣고 직원은 바와가 어디쯤 있는지 알아챘다. 휴대전화가 발달하기 전에 만들어진 바와만의 아이디어였다. 

이 넓은 정원에서 바와는 하루 세 끼의 식사를 다른 장소에서 즐겼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았던 괴팍한 노인의 여유가 느껴진다. 

타인을 들일 계획이 없었기에,
타인의 취향 따위는 철저히 고려되지 않았다. 
 
<정원 앞으로 소금의 강이 흐르며(위), 여러 작가와 협업해 설치한 조형물(아래 왼)과 각기 다른 소리를 가진 종(아래 오른)들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바와의 작업실>


고무농장이 정원으로 바뀌기까지

1948년 바와가 처음으로 루누강가를 방문했을 당시에는 고무나무 농장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 후 언덕을 조성하고, 경사지를 다듬고, 나무를 심었다. 대지는 사람의 걸음걸이에 알맞게 변화되어 갔다. 오래된 농장의 길은 묻혔고, 새로운 길이 열렸다. 모든 것은 변화를 알아차리기 어려울 정도로 조금씩 아주 조금씩 바뀌고 다듬어져 갔다. 마치 땅이 풍화되어 대지의 형태가 바뀌듯이. 아주 천천히, 자연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따라가려는 듯이, 느리게 정원을 가꾸어 나갔다. 

내부와 외부의 경계는 모호하다. 건축물의 대부분이 경사에 순응하고 있으며, 자연을 압도하지 않을 정도로 작다. 낮게 자란 풀 위에 나무가 오브제를 이루고, 지평선에 닿는 강과 산이 바라보이는 곳을 향해 창문들이 생겨났다. 이전부터 있었던 자연의 풍경이었지만 그의 손이 더해지자 전혀 새로운 공간으로 바뀌었다. 

어디까지가 자연의 힘으로 생겨났고, 어디서부터 바와가 인공적으로 만들기 시작한 환경인지 그 경계를 정확히 분간하기란 어렵다. 그는 자연을 돋보이게 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고, 그 장소에 어떻게 건물이 생겨나야 하는지도 알고 있었다. 이렇듯 세상 모든 것들은 시간에 더해 정성을 쏟으면 아름다워지게 마련인가 보다.     



이곳에 있음에 감사했다

열대우림 속 공기는 먼지처럼 느리게 부유하고 있었다. 뿌연 입자는 폐 깊숙이 와서 닿았다가 빠져나갔다. 그 공기 속의 수분 알갱이 하나하나가 느껴질 정도로 습기로 가득했다. 빠르던 발걸음은 시간의 흐름을 잊은 채 속도를 늦추었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만 같다. 마치 거대한 정원이 나를 흡수해 버린 것만 같다. 마치 차원이 다른 공간을 걷고 있는 것만 같다. 

'루누강가의 자연이 지금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    

감사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건축물과 정원을 볼 수 있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한 개인의 전설이 되다

2003년 바와는 이곳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그의 시신은 평소 그가 사랑하던 다고바가 바라보이던 시나몬 언덕 위에서 화장되었다. 스리랑카의 건축계는 큰 스승을 잃었고, 그가 남긴 고유한 스타일은 스리랑카의 새로운 건축가들에 의해 재해석되고 있다. 


아직도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그리고 바다 건너 그를 추모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이곳을 찾는다. 




Pray for Sri Lanka








<루누강가 계획도>

<출처: 아키데일리, arhdaily.com>


<가는 법>

현재 바와의 재단이 호텔로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숙박이 가능하며, 단순 방문 또한 가능합니다. 접근이 쉽지 않은 곳에 있으며, 벤토타 타운에서 택시나 트리윌로 이동해야 합니다.

https://goo.gl/maps/dgKXjAc4k9rfAEUM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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