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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현 Jun 05. 2019

당신의 공간을 열면

라이트하우스 호텔

시간이 멈춘 곳

1505년 포르투갈의 로렌조(Lorenzo De Almeida)가 폭풍으로 이 작은 섬나라에 불시착한 후로, 스리랑카의 약 450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유럽은 스리랑카의 문화와 예술, 건축과 도시, 산업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쳤다. 

콜롬보에서 약 120km 떨어진 남부의 항구도시 골(Galle)에는 골 포트(Galle Fort)가 있는데, 유럽인이 아시아에 만든 가장 큰 규모의 항구 요새로 유명하다. 골 포트 안에는 200년은 우습게 훌쩍 넘긴 건물들로 수두룩하다. 식민지 시대에 발전한 도시들은 흥미롭다. 마치 대항해 시대를 사는 것 마냥, 시간은 멈춘듯하고, 사람들의 촌스러움을 그대로다. 

식민지 정부가 스리랑카를 다른 나라에 빼앗기지 않으려고 만든 곳이었지만, 나라의 주인은 계속 바뀌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다양한 문화가 융합되는 시작점이 되었다.

외부에서 온 새로운 지식과 문화는 이전에 없던 색다른 도시와 건축으로 만들어졌다. 바와는 그것을 다시 현대적 감각으로 변형하는 데 성공했다.      

<골 포트 내의 모습>


바위 투성이 못생긴 해변에 위치한 호텔

골의 외진 해안가, 도로와 바다 사이의 좁은 대지에 길쭉하게 생겨 먹은 라이트하우스 호텔이 있다. 건물은 2차선 도로에 빽빽하게 면해 있고, 주변에는 바위 투성이인 못생긴 해변이 있다. 

스리랑카에는 고운 모래로 덮인 아름다운 해변이 많다. 그런 곳을 두고 하필 이런 곳에다 호텔을 지었는지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주요 관광지인 콜 포트까지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도 아니다. 

‘땅 살 돈이 없었나?’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 봐도, 상대적으로 이 커다란 호텔이 골 포트 안에 생기지 않은 건 바람직한 일이다. 바와는 골 포트의 아름다움을 해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잘 짜인 서사를 가진 건물 

서두가 있고 갈등이 있고 클라이맥스가 존재한다. 그의 건물에 들어서면 많은 감정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마치 바와는 심리학을 공부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적어도 그는 사람을 잘 다룰 줄 아는 건축가임이 분명하다. 

호텔의 공간들은 궁금하기도 실망스럽기도 하다. 그저 그렇다가도 놀랍기도 하다. 설렘을 주다가도 편안함도 동시에 준다. 모든 것이 완벽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아름답지 않았다. 마치 오래 봐온 친구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동시에 알고 있어 오히려 인간적이고 편안한 그런 공간처럼. 아주 인간적인 면모를 가진 사람과 같다.     


치장하지 않은 솔직한 공간들

바와가 건축가로 활동하던 시기에는 수입자재에 대한 규제가 심했다. 대부분의 건축자재는 열악한 국내 시장 안에서 해결해야 했다. 따라서 넉넉하지 못한 스리랑카의 형편에서 건물을 짓는 일이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 바와가 더 대단하게 느껴진다. 그는 단순한 재료를 가지고도 멋진 건물을 만들 수 있는 재주가 있었다. 바와는 오히려 겉치장에 신경 쓰지 않고 본래의 건축이 집중해야 할 기본 요소에 충실했다. 좋은 가구와 값비싼 외장재로 덮어씌울 수 없으니, 날 것의 아름다움을 보여줘야 하지 않았을까? 치장하지 않은 솔직한 공간을...

     

인도양을 향해 열린 공간들

출입구와 리셉션 홀을 지나면, 원통의 계단실이 나타난다. 계단 손잡이를 따라 설치된 작품은 바와의 오랜 친구인 라키 세나나야케(Laki Senanayake)가 네덜란드와 싱할라인의 전투(Battle of Randeniya)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계단 한 층을 올라가면, 왼편에 레스토랑과 편의시설이 있다. 오른편에는 바다를 조망할 수 있게 해안선을 따라 길쭉하게 객실을 배치해 놓았다. 레스토랑은 바다를 향해 열려있다. 레스토랑과 이어지는 베란다가 넓었다. 마치 골 포트에 오른 듯, 마치 보루 위에 오른 듯,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아래의 바다가 색다르다.    


무엇을 볼 것인가

이 호텔은 도로로 향하는 면을 철저히 차단하고 바다를 향해 열어 놓았다. 호텔 밖의 세상과는 확연히 다른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의 반전은 신기할 정도다. 그렇게 못나 보이던 바다도 이곳 초록 잔디 위에서 바라본 바다는 아름다웠다. 인간의 감각은 이렇게 쉽게 제어되고 조종당한다. 모든 것은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달렸다. 저 인도양의 깊은 바다를 바라보기에 적합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바와는 이 호텔을 지었다. 마치 골 포트의 높고 단단한 보루처럼.      


건물은 아주 간결하게 지어졌다

다시 호텔 구경에 나섰다. 출입구와 메인 리셉션 공간, 중앙 계단실, 레스토랑, 중정이 있는 공용공간은 해안가를 따라 북쪽으로 뻗은 두 개의 객실 건물과 연결된다. 가장 북쪽에 위치한 객실 동은 수영장과 작고 경사진 산책로를 감싸고 있다. 

건물은 아주 간결하게 지어졌다. 해안지방의 습하고 소금기가 날아다니는 혹독한 기후를 견뎌내기 위해 외부의 재료는 거칠고 투박하게 처리되었다. 수영장으로 향하는 중간중간에 드러난 바위들은 과거 이곳이 바위 투성이 땅이었음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좁은 산책길을 따라 걸었다. 그곳에는 잔디가 깔린 마당과 수영장이 보였지만, 투숙객들은 어디로 갔는지 수영장 근처에는 빈 비치베드만 놓여있었다. 






이야기의 장소: 라이트하우스 호텔(Lighthouse Hotel & Gall Port), 1995-1997, Galle, Sri Lanka     

가는 법https://goo.gl/maps/kDKU8dpXQNizyff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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