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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Love and. 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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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현 Dec 06. 2016

어떤 사랑

무슬림 유학생, 그리고 복잡한 난민의 연애


여기서 같이 공부하는 친구가 있다. 방글라데시에서 왔고, 나이는 24살이라 나보다 한참이나 어리다. 나를 언제나 Bro라고 부르고, 칼같은 스웨덴 수업의 쉬는 시간 15분을 이용해 싸구려 커피를 마시는 게 하루의 일상이다. 
처음엔 이렇게 생각했다. 방글라데시에서 이 머나먼 스웨덴에 왔으니, 부잣집에서 잘 자란 아들일 거라고... 그리고 스웨덴 정부는 개발도상국에서 온 학생들에게 언제나 인심이 좋기에 장학금도 받고 왔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왠걸... 학비도 자기나 내고, 생활비도 인도 식당에서 일하면서 번 돈으로 충당한다.
그 친구의 이름은 SaDman, 방글라데시 발음으로 사드만이지만, 영어로 옮겨 놓으면 새드(sad) 맨 같다고 농담을 하곤 했다. 그는 늘 잘 웃는 편이고, 인도 문화권 특유의 발음으로 질문도 적극적인 그런 학생이다. 

어느날, 그가 말했다.
"Bro... 나 사랑에 빠진 거 같아."
스웨덴에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났으며, 또 그렇게 쉽게 사랑이라는 단어를 쓰는 걸 보니, 이 녀석 아시아권 특유의 '빨리 사랑에 빠지는 문화'에서 온 게 분명해 보였다.
상기된 표정으로 웃고 있는 사드만에게 물었다.
"세상에나... 좀 놀랍기는 하지만, 축하할 일이잖아. 도대체 누구야 근데?"
사드만이 대답에 조금 놀랐다.
"시리아에서 온 친구야. 난민으로 스웨덴으로 왔고, 같은 동네에서 인도 댄스클럽 모임에서 만났어."
인도 문화권이 특히 춤을 좋아하는 거야 알고 있어지만, 굳이 또 댄스 모임에서 일이 발생하다니... 그나저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겠지만, 시리아 난민과 사랑에 빠지다니, 이건 좀 이 친구가 걱정되었다. 뭐 딱히 시리아 난민을 경시하거나 그런건 절대로 아니지만, 왠지 모르게 시리아 난민과의 사랑이, 그것도 국제 연애가 그것도 모자라 스웨덴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결코 쉬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여튼 그거야 내가 이래라 저래라 간섭할 성격이 아니었으므로 그 문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리고 시리아 난민을 인터뷰 할 일이 있어 사드만이 사랑한다는 그녀의 친구를 인터뷰하는 자리에서 사드만, 그의 그녀, 그녀의 친구 이렇게 4명이서 만났다. 카페가 무척이나 시끄러웠고, 우리가 앉은 테이블은 작고 구석진 곳에 있어 상당히 불편한 그런 자리였다. 몇 번이나 상대방의 이야기를 알아듣기 위해 귀를 쫑긋하고 세워야만 할 정도였다. 그러다가 문득 본 테이블 위에 포개진 두 손을 보았다. 사드만이 그녀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그녀는 생각보다 이뻤다. 생각해 왔던 혹은 미디어에서 봐왔던 그런 전형적인 슬픔과 충격에 빠지고 검정색 히잡을 쓴 그련 나약한 난민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녀가 걸치고 있는 악세서리, 값비싼 시계 등을 보아 시리아의 상류층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Bro, 아주 이쁜 여자를 골랐네. 그녀의 미모에 깜짝 놀랐어."
라고 귓속말로 사드만에게 그녀에 대한 나의 첫 인상을 말했다. 
"고마워." 
기뻐 죽는 사드만을 두고 내가 그녀에게 물었다.
"근데, 도대체 사드만의 어디가 좋은 거에요?"
라고 물은 장난스런 대답에 그녀는 그저 웃기만 했다. 소극적이지만 다정한 그런 여인이었다.

그렇게 몇일이 지나갔다.

그리고 지나간 시간만큼, 그들의 사랑도 깊어갔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되지도 않는 영어로 공부하느라 늘 정신이 없었고, 머리를 식힐 때는 동네 산책을 하며 사진을 찍거나 학교에 있는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는 그런 일상적인 날들이 지나갔다.
그리고 문득 사드만을 만난 날 물었다.
"헤이, 브라더. 그때보니 완전 사귀는 분위기던데. 이제 여친으로 만든거야?"
그는 부쩍 추워진 스웨덴의 날씨에, 그리고 그런 추위에 노출되어 본 적이 없었던 사람으로서 꽁꽁 싸매고 와서는 말했다.
"아냐. 우리 아직 사귀는 그런 단계는 아냐."
"저번에 보니까 손도 잡고 아주 좋아서 서로 죽더만, 그게 사귀는 게 아니면 뭐니?"
사드만은 얼굴에 오만상을 찡그리며 이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걸 표현하려 했다.
"사실은 말야. 아주 복잡해. 그녀는 지금 남자친구가 있어."
남자친구라니.. 이건 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사실 난 무슬림들은 조금은 사랑에 보수적일거라고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사드만은 혼전순결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있을만큼 연인관계에 있어서 보수적인 건 사실이었다. 그런 그가 남자 친구가 있는 여자와 사랑에 빠지다니, 어찌 되었든 그건 양다리가 아닌가? 
"남자친구가 있다니? 시리아에 있어?"
"아니 스웨덴에 있어. 스웨덴 남자고. 그녀가 나를 많이 좋아하고 곁에 있고 싶어하는 건 사실인데, 남자친구 문제를 정리 못하고 있어."
"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 남자애는 뭐랄까? 조금 문제가 많아. 스웨덴 사람인데 무슬림이야."
"스웨덴 백인 남자가 무슬림이라고?"
뭐 별 이상한 이야기를 다 들어본다. 그래서 무슬림 여자를 만났나 보다. 
"응. 그리고 마약에 빠져서 애가 정상이 아냐."
'응? 뭐라고?'라고 묻고 싶었지만, 그냥 "그렇구나."라고 말하고 말았다. 어떤 사랑은 그렇게 어떤 사람에게 복잡하게 다가왔다. 난민에, 정리되지 못한 연인과의 관계에, 마약에 등등 그들의 사랑은 어떤 식으로 결말을 맺을까?

친구의 말대로 그 사랑은 좀 복잡했다. 그리고 왜 그 많고 많은 길 중에 복잡하고 어려운 연애의 길로 접어들었을까라고 생각해 보았다가, 이네 나의 과거 연애사도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음을 깨닫곤, 그냥 깊이 생각하길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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