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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Love and. 1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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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현 Nov 26. 2016

시리아 난민을 만났다



제발 전쟁만 멈춰주세요. 그게 전부예요.


어린 나이에 난민이 된 어느 시리아 소년의 말이다. 2011년부터 시작된 시리아 정부군과 반정부군과의 내전, 그리고 IS와의 전쟁은 약 20만 명의 사상자, 시리아 인구 절반에 해당하는 2천2백만 명의 난민을 발생시켰다. 시리아 내전은 UN이 사실상 집계를 포기할 만큼 복잡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2015년 터키 보드럼 해변에서 발견된 세 살배기 시리아 아기의 시신이 발견되자 시리아 난민에 대한 문제는 전 세계적으로 급속히 퍼져갔다. 유럽에서는 독일, 그리고 스웨덴이 난민에 대한 포용 정책을 펼쳤다. 




시리아 난민을 만났다

난민에 대한 관심은 꾸준히 있었지만, 스웨덴에서 난민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는 그렇게 많지 않다. 물론 난민을 길에서 마주치는 경우는 많지만, 스웨덴 사회가 난민들을 지나치게 보호하려는 분위기 때문에 다가가 궁금한 질문을 던지는 건 상당히 무례한 일임에 분명하다.

그러던 중, 방글라데시에서 온 무슬림 친구가 자신이 아는 시리아 친구가 난민 자격으로 스웨덴에 살고 있는데, 한번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겠냐고 제안을 했다. 당연 나는 오케이! 바로 약속을 잡았다.




말모(Malmö)는 다양한 이민자로 구성된 스웨덴 남부의 도시다. 그곳에서 다마스쿠스에서 온 월라(Walaa, 25)를 한 카페에서 만났다. 

"제가 고등학교 과정을 절반 정도 마쳤을 무렵 전쟁이 시작되었어요. 전쟁으로 마을이 파괴되었고 많은 친구들을 잃었습니다. 물론 공부도 중단해야만 했죠. 다마스쿠스는 정말 긴급한 상황에 처하고 말았습니다. 그때 이곳을 떠나야겠다고 결심했죠. 저는 가족을 남겨두고 시리아를 떠났습니다."

전쟁 경험을 들려주는 월라는 몹시도 긴장하고 불안해 보였다. 자연스레 질문이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월라는 레바논에서 터키, 그리스를 거쳐 스웨덴으로 왔다. 터키에서 그리스까지는 보트로 이동했고, 육지로 연결된 국가는 걷거나 버스로 국경을 넘어왔다고 했다. 

“난민이 국경을 넘는 일은 상상도 못 할 만큼 위험한 일이에요. 어쨌든 불법이니까요. 각 나라마다 우리를 도와주려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강간이나 폭행과 같은 위험한 상황에 처하기도 했죠.”

그녀의 트라우마가 치유되려면 아주 긴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스웨덴은 난민에게 어떤 지원을 할까?

“그런데 왜 하필 스웨덴을 선택하게 되었나요?”

“유럽에서 우리를 받아주는 곳은 독일과 스웨덴이 대표적입니다. 그런데 독일은 1년 거주 비자만 발급해줘요. 그에 비해 스웨덴은 5년 거주비자를 주죠. 그리고 대부분 3년이 지나면 스웨덴 여권을 가지게 돼요. 스웨덴 정부는 하루 300 크로나(한화 3만 9천 원)의 생활비를 지원하고, 스웨덴어를 배울 수 있는 무료 강의도 제공해 주죠. 이뿐만이 아니라, 무상 의료가 지급되고 난민을 고용한 사업주에게 정부가 임금의 75%까지 지원을 해줘요. 난민이 일자리를 찾는 걸 도와주고 있죠. 물론 주거비까지 지원을 해주고요.”

스웨덴 정부의 난민 지원 프로그램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했다. 그러나 한 스웨덴인은 “사실, 엄청난 지원처럼 보이지만, 스웨덴 GDP의 1%에 지나지 않아요. 그 정도 돈은 쓸 수 있는 거 아닐까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 


"어쨌든, 안전한 나라에 와서 다행입니다. 그 어렵고 험난한 과정을 다 거쳐서 이곳으로 왔을 텐데, 혹시 시리아에 남겨진 친구들이나 가족들에게 이런 여정을 겪으면서까지 스웨덴으로 오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물론 어느 나라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난민이 국경을 넘고 위험한 상황에서 도망치는 과정은 엄청나게 힘든 일이죠.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시리아에 남아 있는 게 훨씬 위험하다는 사실이에요."



스웨덴의 생활에 대해 묻는 질문에 월라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다 같아요. 물론 조금씩 틀린 점은 있지만, 누구나 사랑에 빠지고 누구나 조금씩 거짓말을 하죠. 물론 정도의 차이도 있을 거고 문화의 차이도 있겠죠. 그러나 우리는 똑같은 사람이잖아요. 그렇기에 적응이 힘들지는 않습니다."

그녀는 스웨덴의 생활의 어려움에 대해서도 말했다.

"스웨덴은 대단한 나라입니다. 이렇게 난민을 포용하는 정책을 가진 나라는 유럽에서도 드무니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친절하고 배려가 넘치지만,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환영해 주는 것은 아니에요. 물론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나쁜 말을 하거나, 무시하는 행동을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가끔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불편함을 느끼죠. 여기서도 우리는 완전히 환영받는 것은 아님을 느끼죠."

저녁시간이 되자 카페는 시끌벅적한 사람들로 가득했다. 월라도 처음과 달리 안정을 찾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저는 이제 강해졌습니다

“전 솔직히 스웨덴 사람보다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어째서죠?"

"생각해보세요. 전 그 먼 길을 거쳐서 스웨덴에 왔어요. 죽을 고비도 넘겼고, 무서운 곳에 갇혀서 밤을 보내기도 했죠. 협박을 당하기도 했고, 전쟁을 겪었으며, 눈앞에서 누군가가 죽어가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죠. 먹을 것이 없어 몇 주를 굶주려 보기도 했고, 살 떨리는 무서운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전력을 다해 도망치기도 했습니다. 그러고 나니 이젠 세상에 무서울 게 없어요. 제가 훨씬 강해졌다는 걸 알게 돼요. 이 모든 걸 겪은 저는 어떤 사람보다 강하다고 불 수 있지 않을까요?"


인터뷰를 마치고 월라의 사진을 찍었다. 몇 장의 사진을 본 그녀는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을 써달라고 부탁했다. 슬퍼 보이는 얼굴로 찍힌 사진을 싫어했다. 마치 이제는 행복해져야 한다고 다짐한 듯 보였다.



난민의 신분으로 국경을 넘는 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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