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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Love and. 1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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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현 Dec 15. 2016

사랑에 빠지는 속도

느려 터진 그들의 사랑법


문화권마다 사랑에 빠지는 속도가 있다. 일반화의 오류에 빠지기는 싫지만, 그리고 사람마다 온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확실히 어느 문화권에서 왔느냐에 따라 사랑이냐 아니냐를 결정하는 그 속도의 차이가 존재한다.


우리는 사랑에 빠지는데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할까?
혹은 그 속도의, 온도의 차이로 인해 어떤 상처를 받을까?




기숙사 복도에는 9명의 학생들이 사는데, 그중 말레이시아에 27살, 위나(Weena)가 어느 날 물었다.
"나, 요즘 좀 외로워서, 틴더(데이팅 앱)를 깔고 남자 고르고 있어."
틴더를 쓰고 있다는 걸 그렇게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건 아닌 거 같은데, 이 친구는 참 솔직한 편이다. 뭐든 쑥스러워하면서도 술술 알아서 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래서 누구를 골랐어?"
위나는 몇 개의 매칭 된 사진을 보여줬다. 그리고 내가 살아온 인생의 경험을 기준으로 위나의 관심권에 든 사람들의 관상을 봐줬다. 
"애는 좀 애가 성격이 날카로워 보이는데, 애는 착해 보인다. 잘해 줄 거 같아. 음... 이 애는 안 만나는 게 좋은 거 같아. 애가 말하는 걸 보니 연애가 목적이 아니고 즐기려고 만나려는 의도가 다분해 보여."
나의 설명을 듣고, 결국 2명으로 데이트 상대를 정했다. 그리고 몇 주가 지났다.

공용 주방에서 마주친 위나는 표정이 좋아 보였다.
"데이트했구나?"
웃음을 감추진 못한 얼굴로 위나가 말했다.
"한 사람은 덴마크 사람이고, 한 사람은 폴란드 사람인데 스웨덴에 살고 있어."
"그래, 두 사람 다 만나보니 어때?"
"둘 다 좋은 사람이긴 한데, 왠지 스웨덴에 살고 있는 그 폴란드 사람에게 더 끌려."
우린 가벼운 대화를 끝내고, 만들어진 음식을 들고 각자의 방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또 몇 주가 지났다.
위나의 데이트 상대인 폴란드 남자가 우리 기숙사를 찾아오기 시작했고, 위나도 주말에는 그 남자를 만나러 다니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그 둘의 연애관계는 진행 중인가 보다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 날 위나가 풀이 죽은 얼굴로 공용 주방에 나타났다.
"위나, 뭔 문제라도 있어?"
말하길 망설이는 위 나에게 시간을 주자, 알아서 고민거리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사실, 난 그 사람과 연인 사이로 발전하고 싶은데, 그 남자는 날 여자 친구로 생각하지 않나 봐."
그러니까 위나가 그 남자를 만나기 시작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았을 때였다. 서양인에게 한 달 안에 연인이 될지 안 될지를 결정하라는 건 정색할 일이다. (내 경험상 말이다. 노 태클.)
"맙소사, 위나~~ 서양인들은 우리랑(아시아인) 달라서, 남자 친구/여자 친구라고 규정하는데 시간이 엄청 걸려. 그 년놈들은 느려 터진 녀석들이라고. 데이트도 하고 밤에 할 것도 (물론 낮에도 가능하지만, 물론 시도 때도 없이 가능하지만) 다 하면서도 남자 친구/여자 친구라고 규정하는 데는 적어도 6개월은 걸릴 걸~. 그들이 사랑에 빠지는 속도는 우리랑 다르단 말이야."
그렇게 위나는 아시아인의 사랑의 속도와 서양인의 사랑의 속도 차이에서 힘들어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같은 반의 스웨덴 여자애 프리다의 연애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세상에, 난 세상에서 스웨덴 남자가 제일 싫어."
그녀는 치마를 입어도 양반다리로 잔디에 앉으며, 어젯밤에 나눴던 사랑이야기도 스스럼없이 하는 아주 아주 현대 여성이었다.
"왜? 스웨덴 남자들 키도 크고 잘 생겼잖아."
표정을 일그리며 프리다가 말했다.
"아냐. 완전 남자다운 구석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어. 미적거리기나 하고, 여자애처럼 굴어서 싫어."

그리고 프리다는 이라크에서 온 남자와 2달째 만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난 한 번도 스웨덴 남자와 데이트를 해 본 적이 없어."
"그 남자랑 연인관계(Relationship)야?"
"무슨, 이제 2달 보고 남자 친구인지 혹은 사랑인지 어떻게 알아."
"역시 너네(서양인)들은 사랑을 결정하는데 엄청 느리구나."
"맞아, 우린 엄청 느려. 물론 그 남자의 눈을 보면, 그 사람이 아주 날 사랑하고 있구나를 느끼지만, 그리고 나도 그 사람에게 무척 끌리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 사람을 내 남자 친구로 말하기엔 아직 이른 거 같아."

3번 데이트를 하고, 남자 친구/여자 친구일지를 결정하고 (나 때는 그랬는데, 요즘은 어떤가요?) 우리네 사랑의 속도에 비해, 한 사람과의 사랑을 확인하고  연인임을 규정하는데 적어도 6개월을 넘게 데이트를 해봐야 알고, 결혼은 애기가 생겨서 애기가 학교에 들어갈 때쯤에 하는 그들의 사랑 속도는 느린 걸까? 우리가 사랑을 너무 성급하게 빠지는 걸까? 마치 외로움에서 하루라도 빨리 탈출하려는 처절한 처지에 놓인 사람처럼. 종종 듣는 말이 있다. 

"결혼은, 연애는 천천히 하는 게 좋은 거 같아. 그리고 결혼이라는 제도, 그게 꼭 필요할까? 왜 우리의 사랑을 국가/제도의 허락 하에 하는 건데?"


어쨌든 어쨌든, 결국은 사랑이니까, 상관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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