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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Love and. 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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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현 Apr 10. 2017

나와 함께 춤을

시리아 난민과 방글라데시 학생의 결혼식 풍경


"친구, 오늘 말모(Malmö)에 있는 모스크에 1시 반까지 와 줄 수 있나?"

맞다. 오늘은 방글라데시 친구의 결혼식이 있는 날이었다. 그런데 오후 1시 반이라는 이야기를 전해 듣지는 못했다. 

"늦으면 안 되네. 와서 결혼식 사진 좀 찍어 주었으면 좋겠어!"

순간 미리 약속된 것도 아닌데 종용하는 친구가 조금 짜증이 일기 시작했다. 그의 태도는 소위 부탁하는 자의 '태도'와는 거리가 멀었다. 가끔 이럴 때는 나도 어쩔 수 없는 아시아인이라는 것을 느낀다. 

여하튼 서둘러하던 일을 마감하고 단 벌의 양복을 꺼내 서둘러 갈아 입고 한 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말모의 모스크로 향했다.



누구나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어떤 이에겐 그 사랑이 어려운 경우가 있다. 요즘 들어 이렇게 어려운 사랑에 빠지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이들의 사랑도 그러하다. 방글라데시에서 온 친구는 어렵게 어렵게 여기서 공부를 하고 있다. 학비를 감당하기 위해 2개의 파트타임 일을 가지고 있다. 정식 워킹 비자가 아니기에 일반 노동시장에서 제값의 노동비를 대우받지 못한다. 늘 일반인의 60 % 정도를 받을 수 있단다. 그렇기에 더 힘들다고 한다. 그런 그가 사랑에 빠졌다. 일하느라, 공부하느라 분명 바빠야 할 놈이 사랑에 빠질 정신이 있었다는 점이 조금 놀랍기는 하지만, 어쨌든 그 녀석은 사랑에 빠졌다. 그것도 아주 훌륭한 미모의 여인과 말이다. 그녀는 시리아 출신이다. 그러니까 난민 자격으로 스웨덴에 왔다. 그녀의 가족과 함께 말이다. 




조그만 모스크에서의 결혼식

말모의 시내에서 한적한 곳으로 떨어진 곳, 그러니까 조금은 허허벌판인 곳에 허름한 모스크가 있었다. 평생을 오픈 마인드라고 믿고 살아온 나이지만, 모스크 앞에서 조금은 꺼려지는 건 유럽에서 빈번히 발생하고 있는 무슬림의 폭탄 테러의 영향일 수도 있고, 얼마 전에 길에서 만난 무슬림 강도의 영향일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그들은 좋은 친구이지만, 길거리에서 만나는 무절제한 모습의 무슬림을 볼 때마다 무스림을 그룹으로 엮여서 비난하는 내 모습도 솔직히 나다. 어느 나라에나 좋은 사람이 있고, 나쁜 사람이 있다는 거 나도 잘 아는 사실이지만, 국민성이라는 건 솔직히 무시할 수 없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은 편견에 갇히기 마련이다. 



무스림의 결혼식은 처음이다. 모스크는 몇 번을 방문한 적이 있지만 말이다. 내부는 타일로 온통 꾸며 놓았다. 실내는 조용했고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가족 관계자와 종교 관계자들만 자리에 있었다.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을 받았지만, 늦게 도착해 버려서 결혼식의 반을 놓쳤지만, 다행히 사진기에 그들의 모습을 담을 수 있었다.


멀리 방글라데시에서 살고 있는 가족들을 위해, 한 친구는 연신 결혼식을 영상 통화로 생중계하고 있었다. 



그렇게 조용하고 무던했던 모스크의 결혼식은 끝났다. 그리고 시끌벅적한 연회가 시작되었다.



무슬림의 결혼 연회란,

두 사람은 행복해 보였다. 사실 시리아 여자는 방글라데시 남자를 만나기 전에 스웨덴 남자와 연애를 했다고 했다. 그러니까, 그 여자가 스웨덴 남자와 사랑에 빠져있을 때부터 방글라데시 남자는 그녀를 사랑했다고 한다. 물론 그녀도 그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 시리아 여자는 스웨덴의 남자를 많이 사랑했었던 거 같다. 그런데 문제는 그 남자가 양아치였다. 물론 어린 나이에 양아치일 수도 있다. 어려서 양아치인 사람이 나이 들어 철드는 경우는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시리아 여자의 스웨덴 남자 친구의 양아치 기질이 영 나아질 수 없는 그런 성격의 문제였다. 그러니까 그는 마약에 중독되어 시간을 낭비하는 그런 청년이었다. 


나라가 잘 살아 기본적 생활을 지원해 주는 스웨덴의 남자, 그리고 나라가 엉망이라 스웨덴까지 와야 했던 시리아 여인의 만남은 뭔가 아이러니한 구석이 있다. 마약쟁이와 사랑에 빠진 일, 사실 말은 쉽겠다. 그냥 헤어지라고 말이다. 그런데 그게 어디 사람 마음대로 되는 일인가? 아무리 마약쟁이지만 사랑에 빠지면, 혹시 그가 변하지 않을까 건실한 청년이 언젠가는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왜 들지 않겠는가? 그렇게 그녀는 그 스웨덴 양아치를 기다렸다보다. 그러다, 방글라데시 친구를 만나 속마음을 터고 지내다 보니, 점점 현실에 눈을 뜬 거 같았다. 그리고 스웨덴 남자를 떠나보내고, 마침내 방글라데시 남자에게로 왔다. 시리아의 난민자, 스웨덴의 양아치를 거쳐 방글라데시 대학원생을 만난 것이다. 이게 그들의 사랑이다. 


그리고 그들은 여전히 어렵게 생활비를 벌며 산다. 누구나 말렸던 결혼이다. 조금 생활이 안정이 되면 그때 결혼하라고 말이다. 그런데 그들은 결국 어린 나이에 결혼을 선택했고, 그 선택으로 인해 더 많이 일을 해야만 한다. 집값에 생활비에 학비에 말이다. 이젠 돈 버느라 수업도 종종 빠져 먹는 방글라데시 친구다. 하지만 그는 행복해 보였다. 마치 어렵게 만난 인연이니 행복해져야만 한다고 수없이 다짐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끊임없는 축하, 간지러운 말들로 가득한 사랑의 메시지, 행복한 웃음이 넘쳐나는 연회였다. 


이라크에서 온 남자와 사랑에 빠진 한 스웨덴 친구도 이 신혼부부처럼 어렵게 사랑을 키워가고 있다. 그녀의 남자 친구는 곧 그의 나라로 추방된다. 스웨덴 정부가 그의 난민 신청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언제고 떠날 처지의 남자와 사랑에 빠져버린 친구는 점점 다가오는 이별의 이벤트 앞에서 점점 어쩔 수 없는 사랑에 빠지고 있다고 했다. 어찌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마음대로 빠져드는 사랑을 주체할 수도 제어할 수도 없다고 했다. 그냥 시간이 가는 대로 그냥 사랑하다 시간이 다가오면 그때 다시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아주 열정적으로 서로의 손을 잡고 춤을 추던 부부,


끊임없이 찍어대는 사진들,


무스림의 연회에서 가장 기가 막힌 건, (한국인의 입장에서 보면 말이다.) 그들은 술을 전혀 먹지 않고 술에 취한 사람들처럼 흥에 겨워 춤을 춘다는 것이다. 멀쩡한 정신으로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밤이 늦도록 연회는 술에 안 취한 사람들의 춤으로 이어졌다.



나와 함께 춤을 추어요

이 기쁜 날을,
모두가 우리를 축하해 주기 위해 모인 사람들을 위해
멋지게 춤을 추어 보아요.
흥겨운 음악과 함께.
모든 이들의 축복이 쏟아지는 이곳에서,
모든 이들의 시선을 받는 이곳에서,
나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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