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물린여자 10
내 병은 괜찮다가 나빠지다가를 반복했다. 염증이 생길 때마다 붕대를 감았고 파스를 박스로 사 쟁여두고 사용했다. 관절통은 약을 먹는다고 사라지지 않았다. 나중에는 출퇴근이 어려워 결국 병원 앞에서 자취를 시작했다.
동생의 엉덩이를 지켜주던 비싼 방석을 물려받고 손목과 손가락의 무리를 덜어주려 인체공학 키보드를 샀다. 양손에 부목형 손목보호대를 차고, 매일 파라핀 배스를 했다. 주말마다 정형외과로 가 도수치료도 받았다. 수련기관에서도 슈퍼바이저 선생님들이 수련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도록 정말 많은 배려를 해 주셨다.
사방에서 버팀목이 받쳐주어 여기저기 꺾인 가느다란 줄기의 나무 같았던 나도 끝까지 수련을 마치는 것이 가능했다. 혼자서 하라고 돌멩이처럼 버려둔다고 의지만으로 굴러갈 수 있는 몸 상태는 결코 아니었다.
감사함을 느끼는 대상에는 환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붕대를 감은 채 절뚝이며 요법 준비물들을 카트에 끌고 돌아다는 나를 보며 한결같이 오늘은 몸이 괜찮은지 물어봐주었다.
어느 손가락에 붕대를 감았고, 붕대위치가 어떻게 바뀌는지 그들은 더 기민하게 알아챘다. 매년 바뀌어 잠시 왔다가는 사람일 수련생에게도 너그러운 환자들에게 언제나 감사함을 느끼며 최선을 다하려 노력했다.
“많이 쓰더만.”
항상 작은 수첩을 들고 바삐 다니는 것을 보고 남들이 버리는 이면지를 모아 온 환자가 있었다. 그는 직접 한 장 한 장 전화카드로 종이를 찢고 풀로 붙여 수첩으로 만들어 선물해 주었다. 그 마음이 어찌 기쁘지 않을까. 어찌 소중하지 않을까. 항상 말을 툭툭 내뱉고 길게 말하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그는 가끔 나를 보면 언제 붕대를 다 풀겠느냐 묻고는 했다. 그곳의 우리 모두는 다정했다.
내 직장은 산속에 있는 병원이었고, 산은 온갖 풀과 나무들이 호들갑을 떨며 때마다 옷을 갈아입는 통에 항상 시끌벅적했다. 많은 우여곡절 끝에 수련을 마치고 그곳에서 계속 일을 이어나갈 수 있게 되었다.
새로 담당하게 된 병동에서 내가 맡게 된 환자들, 요법들, 면담들. 단 하루도 같게 느껴지지 않았고 그래서 좋았다. 수련 때야 바로 앞의 과제에 급급하여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없었지만 일을 시작하면서는 숨을 돌릴 여유도 생겼다.
나는 계절이 바뀌는 걸 후각으로 가장 먼저 알아차린다. 공기의 향이 달라지면, 계절이 달라진다.
벚꽃이 만개하는 병원에는 목련이며 개나리며 진달래까지 온갖 꽃들의 향연이 펼쳐지고는 했다. 오색빛깔 꽃들은 순서대로 피며 바람을 타고 흩날리면서 고유의 향을 내뿜는다. 도시에 살 때는 꽃의 향이 각자 다르다는 걸 알지 못했지만, 이곳에 와 비로소 꽃마다 간직하고 있는 이야기가 다름을 알게 되었다.
여름은 화려하다. 아카시아가 필 때쯤, 혹은 장미와 등나무꽃이 열릴 때쯤이면 볕이 뜨거워진다. 그러나 나는 여름을 흰 치자꽃으로 기억한다. 치자꽃이 피면 아주 진하고 눅진한, 달큼한 향에 출근길마다 오솔길 너머로 고개를 돌리게 되었다. 토끼풀 군락 사이에 딱 한그루 피어있는, 아직은 작은 치자꽃나무는 꽃을 몇 송이 피우지도 않았지만 여름이 왔다고 내게 성급하게 인사하고는 했다.
새순 같던 월계수 잎이 자라면서 단내를 풍기기 시작하고 병원 앞이 온통 첫사랑의 달콤한 향으로 감도는 가을이 오면 울긋불긋한 단풍으로 온 산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바람이 한 번 불 때마다 눈대신 낙엽이 후두두 떨어졌다. 환자들은 더 추워지기 전 산책시간마다 소운동장에서 모여있는 마른 잎사귀를 밟으며 사박거리는 소리를 즐겼다.
겨울이 오면 소리 없이 눈이 내리고는 했다. 하늘을 향해 높이 뻗은 소나무 가지 사이사이로 눈이 쌓였다. 새벽 공기의 어딘가 빈 것 같은 차가운 향이 폐부를 시리게 훑어 맴돌고 나가면 날숨이 새하얗게 공기 중에 번졌다.
급박할 것이 없는 하루와 한 달, 그리고 일 년이었다.
의사는 피검사가 안 좋게 나왔을 때 또다시 “입원합시다!” 소리를 했지만, “조금 더 조심할게요.”라며 웃었다. 한 번 입원하면 2주는 쉬어야 하는데 우리 모두 잘 알지 않나. 직장인이 어떻게 2주를 쉬나. 젊을 때 벌어둬야지. 언제 더는 돈을 못 버는 몸이 될지 모르는데 말이다.
비록 연차를 외래진료로 모두 날렸으나 그럭저럭 이만하면 괜찮았다. 내년에는 해외여행을 갈 수도 있지 않을까? 몇 년째 친구, 동생과 한 달에 5만 원씩 붓고 있는 여행계가 터져나가기 전에 가볍게라도 여행을 떠나보고 싶었다.
누군가는 매우 재미없는 하루들이라고 이야기할지도 모를 만큼 지루하고 평온한 일상이었다. 하지만 나는 너무나 소중했다. 평생이라도 좋으니 제발 이렇게만 흘러가기를 바랐다.
평범한 일상, 평온한 하루, 아무 일 없이 멈춰있다는 것은 어떤 사람에게는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니까. 누군가는 앞으로 성취하고 더욱 뻗어나가는 일과가 중요하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지 않았다. 내 몸은 지금이 최선임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 모든 사실을 아프지 않았다면 느낄 수 있었을까? 불붙은 개처럼 살아가던 내가?
그럴 리 없었다. 앞만 보고 걸어감을 중시하던 사람이 이 고요함과 적막함을 평안함과 동일시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무언가를 잃었기에 생긴 평안함이라 여기며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여겼다.
그렇게 특별할 것도 없더라. 루푸스가 뭐 별거더냐. 그렇게만 여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