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은 자가 갖는다 - 스티븐 킹, 호지스 3부작 중 2번째.
"Wake up, Genius.(일어나시지, 천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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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첫 문구부터 깔끔하게 딱 떨어지면서 눈길을 확 잡아끈다. 그리고 이 껄렁껄렁하면서 매력적인 문장은 이 이야기를 깊이 타고 들어갈 수록 더욱 더 끈끈하고 강력하게 이야기와 독자를 지배한다.
스티븐 킹이 탐정물을 썼고, 그 작품이 에드거상을 탔다는 것에 더욱 화제가 되었던 [미스터 메르세데스]에 이은 호지스 3부작 중 두 번째 이야기인 이 소설은, 탐정이 나오니 물론 탐정물이겠지만 그보다는 한 미국의 대작가와 그가 남긴 노트, 그리고 이 작가와 그 작가의 대표작의 '광적인' 팬과 비뚤어진, 하지만 절실했던 애정에 대한 이야기다.
40여년 전, 한 시대를 풍미했던 '천재' 작가는 자신의 미출판 원고들과 함께 숨어살다가, 작가를 꾸역꾸역 찾아온 어린 팬에 의해서 살해당한다. 그 팬은 작가의 미발표 원고들을 가지고 도망치지만, 의도치 않은 일로 감옥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시간은 흐르고, 현재가 되고, 전작의 [미스터 메르세데스]의 테러 피해를 입은 한 가족과, 호지스와,이제는 노인이 된 그 팬은 시간과 우연과 필연의 짜임 사이에서 교차한다.
그리고 현재의 인물인, 은퇴한 경찰 출신의 탐정인 호지스는 이 이야기의 시간상 끝 축에서, 전작에서 만난 홀리 기브니와 함께 사건이 우리가 예상할 수 있고 납득할 수 있는 방향으로 흘러가도록 적당히 선을 다듬는 역할을 한다.그래서 천천히 흘러가던 이야기가 (스티븐 킹의 많은 다른 이야기들이 그렇듯이) 교차점이 점점 커지면서 불꽃이 튀면서 이야기가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치닫는 와중에, 일종의 추의 역할을 하면서 이야기의 중심과 무게를 잡고, 잔가지를 치고, 방향을 잡는다. 물론 그 방향이 어느 정도 눈에 명확히 보이는 방향이란 것은 아쉽지만, 원래 이야기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것이 탐정물의 미덕 아니겠는가.
이런 '탐정물'의 미덕 외에도, 이 책의 또 다른 미덕이 있으니, 그것은 '책에 대한 애정'이다. 이 소설에서는 스티븐 킹의 유명한 전작 중 하나인 [미저리]와 마찬가지인, 소설과 소설의 주인공에 대한 왜곡된 애정을 가진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운다. 물론 이 책의 주인공은 애니 윌크스보다 훨씬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만, 그 대신 주인공들이 듣는 어떤 글쓰기에 대한 지론이라든가, 현재의 왜곡된 애정보다 그 이전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이고, 그 감정을 스티븐 킹은 훌륭한 필력으로 그려낸다. 이건 독자들에게는 너무나도 소중한 서비스고, 나 역시도 순간 내가 책을 좋아했을 때를(혹은 스티븐 킹을 처음 접했던 순간을) 떠올리면서 마음이 두근거렸다. 전반적으로 스티븐 킹의 소설은 이야기가 천천히 시작되다가 중반부를 넘어가면서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지는 경향이 있고, 이 책 역시 마찬가지여서 초반부는 간혹 조금 지루하다고 느낄 수도 있는데, 이런 서비스 덕에 지루하기는 커녕 책을 넘기는 것 자체가 아까울 정도로 즐거웠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책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을 살면서 가장 짜릿했던 순간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책을 읽는다는 것을 넘어 책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대책 없이 푹 빠져버린 순간처럼 말이다.
(더불어 끝의 전편을 떠올리게 하면서, 3부작의 예고까지 빼놓지 않는 꼼꼼함은 또 하나의 미덕이다.)
기본적인 흡입력과 재미와 함께, 작가의 여유로움마저 느껴지는 이 이야기는, 이렇게 여기저기 당연하면서도 흔하지 않은 미덕으로 빛난다. 더불어 책을 덮을 때가 되어, 책을 폈을 때 그저 도발적으로만 보였던 'wake up, genius'라는 문장이 훨씬 묵직하게 다가올 때쯤 되면 호지스 3부작의 마지막은 또 어떤 미덕으로 가득 차 있을 지, 얼마나 강렬한 모습일 지 기대되면서 얼른 손에 쥐고 싶다는 생각만 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