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초년생들이 모두 그렇듯 퇴근하고는 녹초가 되었습니다. 물을 듬뿍 품은 스펀지처럼 팔부터 다리까지 무거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근하고 무엇인가를 하고 싶었습니다. 직장에서 하는 일은 단순히 일이지, 나를 발전과 성장을 위해 한다는 느낌을 못 받았기 때문이지요. 그때는 중국어를 해보려고 노력했습니다. 독학으로 4급까지는 땄지만, 5급은 쉽지 않았습니다. 외워지지도 않는 중국어 단어책을 손에 쥐고 꾸벅꾸벅 졸면서 퇴근하는 저의 모습이 지금 생각해보니 짠하네요. 애처롭기도 하고요.. 목디스크도 그때 온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렇게 세월을 보내다가 교사말고 지금은 잠시 다른 일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출, 퇴근을 합니다. 아침 8시까지 출근해야 하고, 야근을 하지 않으면 5시 30분에 퇴근을 합니다.
교사 때는 말을 많이 하고, 아이들에게 에너지를 뺏겨서 힘이 없는 줄 알았는데, 이게 웬걸... 사무직인 일을 해도 똑같이 힘듭니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졸음이 몰려오고, 퇴근하고 집에 가서는 그냥 침대에 몸을 던지고 싶습니다. 그래서 결론지었습니다. 일을 하고 퇴근하면 그냥 피곤한 거구나...(아버지....)
개인적으로 퇴근하고 시간이 너무 아까웠습니다. 하지만, 몸이 지쳐 무엇인가를 시도하지는 못했습니다. 조금씩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것에 시간을 투자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퇴근하고 몇 시간 쓰는 글로 돈을 버는 것은 제가 생각해봐도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근하고 30분이라도, 1시간이라도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렸습니다. 내가 하고 있는 것이 맞나?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퇴사하고 글만 쓰고, 그림만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하루에도 30번은 더 들었습니다. 일을 그만두고, 전업 작가나 전업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습니다. 만약에 그렇게 되면 나는 정말 잘할 수 있을 텐데.. 지금 퇴근하고 한, 두 시간 하는 것으로 내가 무슨 성취를 이룰 수 있을까? 자괴감이 빠지곤 했습니다. 하지만 '딱 여섯 시까지만 열심히 일하겠습니다'라는 책을 읽고 생각이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아.. 나만 이렇게 고군분투하는 것이 아녔구나.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회사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신을 위해 '일'하는구나.라는 생각에 마음이 놓였습니다. 위로가 되는 동시에 욕심도 났습니다. 퇴근하고 사용하는 세, 네 시간으로 충분히 성취도 이룰 수 있구나... 예를 들자면, 책에서 나오는 신원섭 씨는 6시 전에는 시스템 개발자로 일하지만 6시 이후로는 소설을 씁니다. 그리고 그 소설은 영화로 제작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퇴근하고 휴식을 원하고 자고 싶은 것은 정말 당연한 욕구입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니까요. 무슨 느낌인지 너무나 잘 압니다. 모르는 사람이 없겠죠. 맥주 한 캔 따서, 고생한 나를 위해 치킨 한 마리 시켜 넣고 텔레비전 앞에 팬티바람으로 앉는 그 느낌.
하지만, 책에서 말합니다. 퇴근하고 쉰다면 지금은 편할지 모르겠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선 더 큰 고통이 있을 수 있다.......
퇴근하고 책상에 앉는 그 고통이 어쩌면 장기적으로 나에게 더 큰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 껍질을 열었습니다.
요즘 시대에 '일'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좋은 느낌을 떠올리는 사람은 많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일을 하고 삽니다. 일 안 하고 노는 삶을 꿈꾸지만, 그것은 먼 나라 이웃나라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일을 해야 합니다.
다행히 인간은 생산활동을 좋아하도록 태어났습니다. 일에 집중하고 몰입할 때 진정으로 행복을 느끼기도 합니다. 우리가 직장이 힘든 이유는 일이 힘들다기보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지요. 일 자체는 우리에게 이따금씩 행복과 만족감을 주기도 합니다. 어차피 평생 일해야 합니다. 그러니 '일'이라는 단어를 다시 정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부심과 자존감은 단순히 '직업'을 잘 가졌다고 해서 무조건 오는 것은 아닙니다. 대기업에 다녀도 자존감이 약한 사람도 많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잃어가는 사람이 더 많죠.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느냐 보다는 되려 일을 대하는 태도와 내면의 목소리에 집중하는 능력이 더 중요합니다. 직업을 '자부심의 기준'으로 세운다면, 직업이 사실상 없는 전업주부들 중에 스스로 삶에 자부심을 느끼고 행복한 삶을 사는 주부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요?
만족감과 행복은 직업에서만 오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가치와 존엄성은 직업보다는 한층 높은 곳에 있습니다. 두 개념을 혼동하는 순간 문제는 시작됩니다. 우리 스스로를 함부로 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퇴근하고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억지로라도 가져야 합니다. 그저 맥주 따서 텔레비전에 앞에 앉는 행동은 장기적으로 회사에 더 얽매일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드는 꼴입니다.
맥주를 쓰레기통에 휙 던지고, 밖으로 나가셔야 합니다. 노트북을 켜고 글을 쓰고, 팔레트를 가져와 그림을 그려야 합니다. 엑셀 학원을 등록하고, 필요하다면 영어도 다시 배워야 합니다. 주짓수라도 등록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은 하루아침에 달라지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인생은 짧게 끝나는 게임도 아닙니다. 일에서 만족감을 느끼면 제일 좋지만, 그렇지 못한 인생을 살고 있다면, 딴집을 해봅시다. 일어납시다. 나를 찾으러 떠나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