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울렁증

챌린지 단어: 통화/전화

by 운동하는 거북이

나는 전화 울렁증이 있다. 전화 울렁증이 시작된 것은 친구의 소개를 받아 시작한 첫 아르바이트였다.

그 아르바이트는 학원 상담, 접수 업무였다. 막 생긴 학원 프랜차이즈 분점에 상담 직원이 개인 사정으로 안 되는 주 2, 3일을 대신 나와주는 일이었다. 그 학원은 상담 직원이 한 명뿐이고 강사는 두 명인 곳이었다.

일은 간단했다. 수강료 결제, 환불, 시험지 채점, 그리고 상담 전화받기. 상담 전화는 '연락처 남기시면 다음에 전화드릴게요'라는 말만 하면 되었다.

새로 생긴 학원이라 전화가 종종 왔다. 그러다가 문제가 터졌다. 이런 식으로 문의 전화를 돌려보낸 것을 안 강사 한 분이 불같이 화를 낸 것이다.


전화 한 통이 몇 백일지 모르는데 그걸 돌려보냈단 말이야?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 나는 억울했다. 직장인이 된 지금 돌아봐서 생각해 보면 사업하는 입장에서 학생 한 명 한 명이 자금원이었을 것이다. 그때의 나는 그런 생각을 할 수 없는 학생이었고 베푸는 것이 좋아서 교육 쪽, 그중 학원 아르바이트를 최우선으로 고려했던 터라 큰 상처를 입었다. 학원에서는 학생을 그저 돈으로 본다는 사실에 말이다. 나는 그 학원에서는 상담 직원이 안 될 때만 나오는 역할이었고 계속 일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전일 근무하는 직원이 채용되자 나오지 않아도 된다는 통보를 받았다. 나는 그 뒤 아르바이트를 찾더라도 학원 아르바이트를 고려하지 않게 되었다.

전화 울렁증은 그 뒤에 회사에서 이어졌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회사는 담당자에게 전화로 요청하거나 문의하는 일이 잦았고 전화 울렁증이 있던 나에게는 힘들었다. 이런 전화 울렁증에 용기를 주는 선배가 있다면 참 좋았겠지만 같이 일한 사수 선배는 프로젝트로 인한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상태였고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후배를 대하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나에게 돌아온 건 다독임과 용기가 아니라 짜증이었다. 그렇게 위축된 채로 사회 초년 시절을 보냈다.

그 뒤 그 회사를 다니면서 전화 울렁증이 좋아진 것은 빠듯하기 그지없는 일정에 담당자에게 계속 전화로 재촉해야 하는 프로젝트였다. 일정이 틀어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 전화 울렁증을 앞섰다. 전화를 수십 번했고 메일을 수십 번 쓰고 사내 메신저로 수십 번 문의하고 요청을 했다. 그렇게 많이 하다 보니 전화 울렁증이 좋아졌다. 내 전화를 듣고 누군가 비웃거나 짜증 내지 않는다는 점도 한 몫했을 것이다.

지금도 나는 전화보다는 메일과 메신저로 문의하고 요청하는 것이 편하다. 전화로 모르는 것을 우다다다 물어보는 학부모, 내 전화를 듣고 비웃고 짜증 냈던 선배가 전화를 하는 상황마다 종종 생각난다. 그리고 그 학원은 사업이 잘되는지 계속 그 자리에 있다. 지나갈 때마다 어리숙하기 그지없었던 나의 예전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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