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terans Day
작년 11월 즈음 재향군인의 날 전날 밤, R과 영상통화 하며 내년 재향군인의 날은 우리가 함께 축하할 수 있겠다며 신나 했다.
군인이었던 R은 매년 11월 11일 재향군인의 날에 다양한 혜택을 받는다. 그중 하나가 꽤 많은 식당에서 재향군인과 현직군인들에게 무료로 식사 제공하는데, 나라를 지키고 큰 희생도 따르는 그들의 섬김을 존경하는 의미의 이벤트다.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 잔, 던킨도넛에서 도넛 한 개를 무료로 먹을 수 있는 것에서부터 음식점에서는 미디엄 사이즈 피자 한 판, 파스타, 치킨, 버거, 브런치 플레이트 등등 정말 다양한 식당이 참여해서 군인들에게 식사 대접을 한다.
'우리 쫓아내는 건 아니겠지?'
이번 재향군인의 날 하루 전날 밤, R과 테이블에 앉아 어느 식당들이 올해 참여하는지 찾아보며 둘 중 누구도 답을 알 수 없는 질문을 몇 번이고 반복한다. 두 사람이 가서 한 개의 무료 식사만 주문하는 게 민폐인 건 아닐지 걱정됐다.
'그럼 캘리포니아 피자 키친이랑 버팔로 윙스, 스타벅스 그리고 마지막에는 데이브 앤 버스터에서 게임하는 걸로 하자!'
수많은 고생을 무사히 마치고 큰 사고 없이 제대한 R을 위한 날. 어떻게 축하하고 즐길 수 있을까 생각하다 1년 중 하루 있는 재향군인의 날은 혜택 받을 수 있는 곳을 다니며 데이트를 하기로 했다.
11일, 일을 마치고 온 R이 약간의 휴식을 취한 후 함께 저녁을 먹으러 나섰다. 우리가 가려고 한 두 식당이 알라 모아나 몰에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런데 평소보다 사람들이 많아 보이는 건 기분 탓일까. 다들 우리처럼 무료 식사하러 온 재향군인 가족들 아니냐고 우스갯소리를 했는데, 켈리포이나 피자 키친 앞에 긴 대기줄은 '응, 맞아.'라고 내게 대답하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엄두도 못 내고 버팔로 윙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캘리포니아 피자 키친 웹사이트에서 급하게 예약을 했더니 거의 한 시간 반이 넘는 예상 대기 시간이 보였다. 버팔로 윙에는 대기 줄이 없길 바라며 도착했을 때 역시나 대기줄이 있었지만 10분 내외로 들어갔다.
UFC 경기를 보며 환호하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 작은 테이블에 앉아 무료 식사를 주문하기 전에 R은 군인카드를 보여줬다. 상당히 어두운 실내는 사방팔방에 놓인 대형 TV 불빛으로 조명을 대신하는 것 같았다. UFC를 즐겨 보는 R을 따라 경기를 보다 보니 주문한 순살 프라이드치킨이 두 가지 소스와 함께 나왔다.
소스 중 하나는 매운 걸 가끔 즐겨 먹는 나를 위해 주문한 매운 소스였는데 정말 충격이었다. 감칠맛은 없는 맵고 짜기만 소스라니. 이 정도로 짠 소스는 고문용 아닌가. 그래도 치킨은 괜찮아서 맛있게 다 먹었다. 앞 테이블의 중년 커플도 배우자가 재향군인인지 우리와 같은 메뉴였고, 우리가 식사를 마치고 나갈 즈음 뒷 테이블은 젊은 군인들이 군인 카드를 보여주며 주문하고 있었다.
30분 정도 남은 피자집 대기 시간. 일단 천천히 피자집까지 걸어간 우리는 그 주변을 걸어 다녔는데 이미 저녁 8시가 넘은 시간이지만 피자집은 여전히 손님으로 가득 찼고 바깥에도 대기줄이 있었다.
그중 베트남전 참전 용사 모자를 쓴 할아버지와 휠체어를 탄 할머니가 함께 차례를 기다리고 계셨고 맞은편으로는 또 다른 백발의 커플분들이, 그 뒤편으로는 가게 유리를 통해 보이는 짧은 머리의 젊으니 네 명이 각자 주문한 피자와 파스타를 먹고 있다.
세차게 부는 차가운 밤바람을 맞으며 정처 없이 가게 주변을 걸어 다녔다. 우리 차례가 다가올수록 주황색 조명이 가득 찬 가게 안의 왁자지껄한 그들 사이에 어서 껴서 R과 나도 즐거운 인생의 한 장면을 만들고 싶었다.
'우와! 피자 진짜 맛있어!'
식당에서 정해 놓은 몇 가지 무료 메뉴 중 하나를 골라 주문한 5가지 치즈와 토마토 피자는 기가 막혔다. 식전 빵에 함께 나온 올리브 오일에 피자를 찍어먹으니 더욱 맛있었다. 치킨으로 이미 어느 정도 배가 찬 나는 2조각, R은 4조각. 그렇게 20분 만에 식사를 마친 우리는 서둘러 데이브 앤 버스터로 향했다.
프랜차이즈 게임장인 데이브 앤 버스터 역시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10달러를 무료로 충전해 주는 이벤트였는데, 어라 에일리언 잡는 게임 한 가지만 했는데 벌써 충전된 10달러를 거의 다 사용한 게 아닌가.. 북적거리는 사람들 틈을 요리조리 헤쳐나가며 흥미로운 게임이 있는지 돌아다녔지만 마땅한 게 없어 집으로 향하기로 했다.
밤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 R과 나는 집 마당에 주차하자마자 집 안으로 허겁지겁 뛰어 들어갔다.
롤드컵 기간이었던 이 날은 T1과 JDG의 4강전이 하와이 시간으로 밤 10시에 시작했기 때문에.
그리고 T1의 승리로 R과 나는 환호하며 하이파이브를 하고 완벽한 하루의 마무리를 지었다.
생각보다 이른 마감시간에 내년을 기약한 스타벅스 무료 커피. 그리고 식당에서 R과 나를 쫓아내지 않은 것에 안도. 걱정과 달리 우리처럼 커플이 와서 함께 무료 식사하는 사람들 포함 정말 많은 재향군인 가족들과 현역군인들이 다 함께 즐기고 축하하는 분위기의 재향군인의 날.
아차차. 내년 11월 11일에도 맛있는 디저트 선물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