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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포케 Apr 04. 2024

Chee~ Hoo!

12월 31일 그리고 1월 1일

  '언젠가 우리가 와이키키 해변에서 새해 불꽃놀이 함께 볼 수 있길 바라..!'

  처음으로 R과 함께 새해를 맞이하던 2020년 1월 1일, 영상통화 너머로 폭죽 터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R로부터 익히 들어온 와이키키 해변에서 새해맞이 불꽃놀이를 드디어 함께 볼 수 있다니 그것도 복실이와 함께..!


   조용한 동네엔 해가 뉘엿뉘엿 질 때 즈음부터 '펑, 펑, 삐용 펑!' 집집마다 터트리는 폭죽소리가 간간이 들리기 시작한다. 연말엔 대형 마트 판매대에 여러 종류의 폭죽이 잔뜩 쌓여 있다. 코스트코 세일 전단지에 있는 폭죽은 사진만 보면 꼭 애들 과자박스처럼 생겨서 제품 이름을 발견하기 전까진 과자 선물세트인 줄 알았다.

  저녁을 먹은 후 완전한 어둠이 깔렸을 땐 본격적으로 너나 할 것 없이 터져대는 폭죽은 어쩔 땐 포탄이 터지는 것처럼 굉음을 내면서 방바닥이 울리기도 한다. 푹신한 회색침대에 누워있던 복실이도 놀랐는지 고개를 획 들고 '대체 무슨 일이야?'라는 듯 반짝이는 땡그란 눈으로 날 쳐다본다. 그런 복실이를 쓰다듬으며 진정시키고 늦은 시간 외출하기 전 쪽잠이라도 자려던 바람은 서라운드 사운드처럼 사방으로 터지는 폭죽소리와 함께 공기 중에 흩어진다.

  우린 늘 그렇듯 알라 모아나 몰에 주차한 후 20분 정도 걸어 와이키키 해변까지 가기로 했다. 그래서 집에선 밤 11시에는 나가야 했는데, 평소 밤 11~12시 사이에 잠자리에 드는 내겐 불꽃쇼가 끝난 후 적어도 새벽 1시에 집에 도착한다는 것에 벌써 피곤해지는 듯했지만 당연히 기대감과 궁금함에 들떠버린 마음은 육체의 피곤함을 신경 쓰지 않는다.


  '나는 잠깐 누워있을게~'

  잠들진 못해도 잠시 누워있으면 있다가 덜 피곤하겠지. 컴퓨터로 뭔가 열심히인 평소 늦게 잠드는 쌩쌩한 R을 뒤로하고 침대방으로 터벅터벅 걸어간다. 옆집과 구분하는 흰 담벼락과 옆집만 보이는 거실 창문과 달리 침대방은 2개의 창문 중 한 개의 창문으로 탁 트인 풍경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암막 커튼 없이는 한낮에 강렬하게 때리는 볕을 가릴 수 없기에 늘 커튼을 닫아 놓는다. 침대방 커튼은 시원하게 쏟아지는 비를 보기 위해 여는 것 말곤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문데, 침대에 누워 커튼 사이로 화려하게 반짝이는 불꽃에 홀려 빼꼼 열어본다.  

  '뭐야?!'

  중학생 때 해 본 초라한 폭죽과는 비교할 수 없는 불꽃축제에서 볼 법한 커다랗고 다양한 모양의 불꽃이 집들 사이사이에서 터져 나오는 모습을 보며 눈이 휘둥그레지면서도 마트에서 쌓아 놓고 팔던 형형색색 커다란 상자의 폭죽세트가 이해가 됐다. 다른 주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저물어 가는 한 해를 보내고 맞이할 새해를 기뻐하며 축하하는 이들이 미국 독립기념일 때보다 더 많은 폭죽을 터뜨리는 것 같다. R을 불러 암막커튼을 활짝 연 창문을 가리키며 끝없이 터지는 불꽃들을 보여준다. 침대에 걸쳐 앉아 창문을 한 동안 바라보다 결국 나가기 전 잠시 쉬어보겠다는 바람은 온 데 간 데 없이 외출 준비를 할 시간이 된다.

  쌀쌀한 밤공기에 긴팔을 입어볼까 생각했지만 알라 모아나에서 와이키키 해변까지 도보로 이동하니 더워질 수 있을 것 같아 캐주얼한 흰 반팔티와 하와이 가면 편하게 입으라며 엄마가 남대문 시장에서 사준 꽃무의 헐랭이 반바지를 입곤 복실이에게도 나시티를 입힌다.

  R과 복실이까지 집을 나서 흰색 쪽문을 열고 나가니 동네에 희뿌연 연기가 그득해 깜짝 놀랐다. 노란 가로등 불빛에 그득한 연기에 잠시잠깐 몽환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설마 폭죽을 터트려서 그런 걸까? 아니면 안개? 우리가 와이키키 해변 새해맞이 불꽃놀이를 보고 집에 돌아왔을 때 이 희뿌연 연기가 더욱 짙어지고 촘촘해진 걸 보니 폭죽이 대기 오염에 영향을 준다는 말이 이해가 됐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집을 나서 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아니면 오아후섬 전체가 새해맞이에 들뜬 듯한 이 순간에 동화된 건지 우리는 희뿌연 연기를 뚫고 달리는 차를 타고 끊임없이 이어질 것 같은 자정의 어둠을 따라 알라 모아나 몰로 향한다.


  차를 타고 와이키키 해변까지 가는 건 여러모로 좋은 생각이 아니다. 그 부근은 교통체증이 정말 심할뿐더러 주차공간도 충분치 않아 쇼핑몰에 주차를 해야 하는데, 그러니 주차요금도 하와이 다른 어느 지역보다 비싸다. 유명한 관광지라 평일, 주말 가릴 것 없이 일주일 내내 북적거리는 거리인 데다 이렇게 특별한 행사까지 있다면 더더욱. 알라 모아나 몰에 도착한 우린 빈 공간 없이 자동차로 가득 찬 한낮의 주차장이 환상이었던 것처럼 거대하고 텅텅 빈 한 밤중의 주차장에 덩그러니 주차한 후 와이키키 해변을으로 발길을 옮긴다. 쇼핑몰 근처 길거리에 가끔 보이는 몇몇의 사람들은 알라 와이 운하를 지나며 조금씩 늘어나더니 와이키키 거리 초입에 가까워졌을 땐 미생물이 증식하는 것처럼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생겨나 거리엔 차분한 밤공기와 어울리지 않는 활기가 감돈다.


  본격적으로 와이키키 거리가 시작되니 수많은 인파 때문에 뽈뽈거리며 신나게 걷던 복실이를 어느 시점에서는 안아야 했는데, 요란한 음악소리와 유독 북적거리는 건너편을 쳐다보니 그리 크지 않은 팝업 형식의 클럽 안엔 파란색 형광조명과 사람들로 가득 찼다. 30분 남은 새해 전엔 클럽 안에서 카운트 다운을 외칠 수 있길 바라며 본인의 차례를 기다리는 줄이 안이 훤히 보이는 클럽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길게 늘어서있다.

  아직 시간이 남아 주변을 걷기로 한다. 혹시 있을 사건 사고를 위해 와이키키 거리 곳곳에 배치된 경찰들과 경찰차를 흘깃 한 번 보곤 빽빽한 인파와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며 건너편에 복작거리는 또 다른 가게가 눈에 들어온다.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R이지만 아이스크림 프리존인 우리 집 냉동실이기에 와이키키에 올 때면 꼭 들리는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다. 하지만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영업을 할리 만무하기 때문에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없을 줄 알았지만 웬걸 하겐다즈 가게가 팝업 클럽 다음으로 붐빌 만큼 훤히 밝힌 간판 조명에 이끌리는 나방들처럼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가자. 빛에 홀린 나방처럼 아이스크림 가게로. 우린 신호등 신호가 바뀌자마다 발걸음을 재촉하며 줄을 섰고 10여분 정도 기다리는 동안 어떤 맛을 먹을지 신중히 고민하며 두 가지 맛을 골라 달콤한 행복 두 스쿱 가득 담은 콘을 한 손에 들고 신나게 나서니 자정 10분 전이다. 해변으로 계속 몰려드는 인파를 피해 인적이 드문 문 닫은 가게 앞에 서서, 아이스크림을 음미하며 먹을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을 눈앞의 새해를 놓치지 않으려 시린 이를 참아가며 콘 아래까지 가득 담긴 아이스크림을 끝내고 와이키키 해변으로 입성한다.

  해변 앞부분부터 빼곡하고 질서 정연하게 앉아서 곧 시작될 불꽃놀이를 기다리는 수많은 사람들의 뒤통수는 기대와 설렘, 들뜸, 흥분이 버무려져 상기됐다.

  해변 뒤편에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도 다행히 우리 핵가족이 서있을 만한 작은 공간이 있었으니 앞에 선 사람들 사이에 서서 카운트 다운을 기다리는 우리 뒤로 젊은이 무리들이 오더니 전자담배며 대마를 피운다. 여기에 모인 모두가 들뜬 이 상황에 낯선 이가 만든 불편한 상황을 하나하나 따지면서 별스럽게 자리를 옮겨 다니며 에너지를 소모하기보단, 우리 가족이 함께 하는 순간에 집중하고 싶어 나는 곧장 마스크를 써서 담배냄새보다 지독한 대마초 냄새를 가려본다. 카운트다운하는 전광판도 없는데 누군가 시작한 카운트다운에 한 목소리로 함께 외치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로 화려한 폭죽이 터지기 시작한다.


  'Chee~ Hoo~!'

  우리 뒤에 있던 젊은이 무리들 중 몇 명이 있는 힘껏 'Chee Hoo'라고 소리치니 불꽃 터지는 소리와 함께 와이키키 해변 곳곳에서 'Chee Hoo'가 울려 퍼진다. 그렇게 10여 분간 터져 오르던 반짝이고 화려한 불꽃놀이가 끝난 후, 누구 하나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해변을 빠져나간다. 불꽃놀이가 진행되던 사이에 경찰들이 와이키키 메인 도로를 통제했는지 와이키키 거리 중간지점까지 도로가 휑하니 수많은 사람들을 감당하기엔 힘든 인도를 벗어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도로를 걷기 시작했다. 함께 새해를 즐긴 수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있던 곳으로 돌아가지만 걸음을 재촉하진 않는다. 자정이 넘은 늦은 시간이지만 우린 새해를 함께 맞이하며 생긴 얄팍한 동지애의 낯선 이들과 안전하게 알라 모아나 몰까지 걸어서 갈 수 있었다.

  돌아가는 길에 조금씩 떨어지던 빗방울이 알라 모아나 몰에 다다랐을 땐 조금씩 굵어져서 복실이를 고 주차장까지 뛰어가야 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한 치 앞도 모르는 새해에 왠지 흥미로운 것들이 이 차갑고 묵직한 한 밤의 빗방울과 함께 살갗을 툭툭 치며 스며드는 것 같았다.


  텅텅 빈 주차장에 덩그러니 있는 차에 올라타며

  '그런데 Chee Hoo가 뭐야? 왜 환호할 때 그렇게 하지? 자기 졸업식 때도 들었었어!'

  알고 보니 'Chee Hoo'축하하거나 신나는 일이 생겼을 때 사용되는 하와이어로 긍정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감탄사라고 한다.

  그래서 마라톤, 졸업식, 그리고 새해까지 곳곳에서 사람들이 'Chee Hoo'라고 연신 외치던 거구나.

  차체에 떨어지는 옅은 빗소리를 들으며 우리가 있던 소란스럽고 귀여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한산했지만 새해를 축하하며 여기저기 터지는 폭죽소리로 쉬이 잠들 것 같지 않은 도심을 바라보며 집으로 향하는 길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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