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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문연 Apr 15. 2024

마음에 드는 회사 면접 썰

28살에 첫 정규직을 그만뒀다. 그 이후로 줄곧 계약직 아니면 아르바이트를 했다. 나는 내가 원하는 일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원하는 일을 위해 돈을 버는 것보다 시간을 내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나의 선택은 언제나 돈보다 시간이었고, 그런 가치관때문인지 시간은 많은데 돈이 부족한 사람이 되었다. 가장 부자는 누구일까. 시간도 많고 돈도 많은 사람이다. (물론 시간과 돈이 많을 경우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데 시간과 돈이 없어도 마음의 여유가 있다면 그 사람이 진정 부자일 것이다) 시간은 없는데 돈이 많다면 시간을 늘려야 할 것이고, 시간은 많은데 돈이 없다면 돈을 늘려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나. 시간을 돈으로 바꾸는 건 자칫 쉬워 보이지만(사실 그것도 쉬운 건 아니다) 재능을 돈으로 바꾸는 건 재능을 증명해야 한다. 내 재능을 써줄 누군가를 찾아야 하는데 조직 밖에서 자유롭게 하던 일들은 주류의 취업 시장에서 돈값을 '증명'해내기가 어렵다. 홀로 뭔가를 막 해보려고 했지만 이제 막다른 골목에 부딪혔다고 생각할 때는 다른 길을 모색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지금까지 정규직(책임이 필요한 풀타임 잡)을 기피했던 이유는 미련이 남아서였다. 하지만 이제는 미련보다 미궁에 빠진 앞날을 건사할 차례다. 고여버린 물 안에서 어떻게 하면 몸과 마음을 환기시킬 수 있을지. 그래서 틈틈이 입사지원을 했다. 프리랜서도 넣어보고, 한달 단기 계약직도 넣어봤다. 떨어지기도 하고 면접도 봤지만 일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이런 거 보면 나도 참 문제다) 그러다 발견한 업무. 내가 좋아하는 업무이기도 했지만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 업무이면서 일하는 장소도 집에서 멀지 않았다(이거 중요한 거 다 아시죠?). 그래서 지원했고 면접을 보게 되었다. 면접 보러 가는 길은 순탄하지 않았으나(면접 공지 받은 메일에 이전 주소로 찍혀 있어) 그 때까지만 해도 회사 신뢰도가 0%로 하락했으나 면접을 보면서 다시 100%로 올라갔다.(이런 거 보면 나의 마음은 참 갈대다) 역시 업무가 마음에 들었고 재미도 있을 것 같았다. 오래 일할 사람을 뽑는다고 했고 사람과의 교류보다는 일에 집중하고 칼퇴하는 문화라고 했다. 면접관은 내 포트폴리오가 마음에 들지만 '구멍이 숭숭 나 있는 나의 커리어'(이렇게 말하진 않았지만 내가 느끼기에 저렇게 들렸다)가 궁금하니 혹시 개인 블로그나 OO씨의 히스토리를 알 수 있는 사이트가 있다면 알려달라고 했다. 문자로 링크 보내드리겠다고 말씀드리고 면접을 마쳤다. 정규직으로 입사를 해도 10년 넘게 해 온 일을 싹둑 자를 수는 없는 일. 업무에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병행하려고 했으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 싶은 나의 이기심이라는 걸 나도 안다. 하지만 입사하게 된다면 오래 일해보고 싶은 마음도 스멀스멀 올라왔다. 고민했다. 지원서에 솔직하게 적지 않은 것은 특별히 연관이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마이너스면 마이너스지 플러스라 생각하지 않아서다. 하지만 내가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걸 꿰뚫어 보는 면접관을 속이면서까지 입사하는(물론 뽑아줘야) 건 아니라고 생각해 구구절절한 사연과 함께 나의 히스토리를 알 수 있는 링크를 보내드렸다. 지원공고는 마감되었고 나는 떨어졌다. 잘 맞는 사람이 뽑혔으리라 생각한다. 오랜만에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업무와 회사였다. 마치 소개팅에서 '괜찮은 사람'을 만난 것 같은 기분.(물론 없지만;;) 면접에서는 떨어졌지만 이 경험은 나에게 신선한 공기가 되어주었다. 정말 괜찮은 회사를 만나면 홀가분하게 다시 취업할 수도 있다는 것을 확인했고, 떨어짐으로써 세상이 나에게 다시 한 번 내 일에 몰두하고 집중하는 기회를 부여했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건 뭔가를 기획하고 그걸 글이라는 콘텐츠로 풀어내는 일이라는 것. 언제쯤 또 불안정한 일에 치여 지원서를 작성할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내 일에 다시 집중할 때이므로 나에게 닥친 것들을 잘 해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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