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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이기적으로

by 이문연

코로나에 걸렸다. 어쩐지 일주일 전부터 목이 따끔하더라니. 나는 내가 아이스 커피를 너무 많이 마셔서 그런갚다 했다. 그런데 지나고보니 코로나 잠복기 였던 것 같다. 그렇게 코로나에 걸리고 또 48시간 폐인모드. 원래도 방바닥 순이지만 내가 원하는 방바닥 순이는 건강한 방바닥 순이다. 하지만 그것 또한 건강한 습관같지 않은 것이 몸은 움직일수록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 같은데 주인이 계속 누워만 있으면 생체 리듬이 0에 수렴할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체 리듬의 기준이 0이 되는 것만 같은 기분? 그래서 뭘 좀만 해도 피곤해지고 하는 것들. 물론 이건 나의 뇌피셜이니 믿거나 말거나고. 코로나에 걸리면 하루라도 빨리 약을 먹는 게 좋다는 친구의 말에 코로나 발발 당일인 일요일에 집에서 6.5km나 떨어진 병원을 찾았다. 주말이 아니었으면 1km 근방에 있는 병원을 갈 수 있는 건데. 조금 참았다 월요일에 갈까. 열이 나서 아픈 머리로 30분 정도 고민했는데 내일은 또 내일의 일이 있기에 하루라도 빨리 쾌차하는 게 낫겠다 싶어서 친구의 말을 들었다. 병원에 가서 열 체크를 해보니 38도. 아이고 머리야... 약을 타왔는데 입맛은 없고 속도 안 좋다. 뭐라도 먹고 약을 먹는 게 좋다고 했지만 속이 안 좋아서 그냥 약만 먹었다. 코로나 아니면 아플 일도 잘 없어서 챙김 받을 일도 잘 없다. 허나 누군가를 잘 챙기는 일도 '학습'되어야 가능한 일이기에 이렇게 아파봐야 누군가를 케어할 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차이를 느끼게 된다. 하긴, 집에 아무도 없거나 혼자 산다면 어차피 케어는 자신의 몫. 챙겨줄 사람이 있으면 고마운 것이고 없어도 아픔을 잘 도닥이면서 그 시간을 견뎌내는 것이 어른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게 약을 먹고 하루가 지나니 좀 괜찮아지더라. 휴가때문에 집에 와 있는 여동생이 이것저것 챙겨주었다. 그래봤자, "뭐 필요한 거 없어?", "물 더 갖다 줄까?", "죽이라도 끓여줄까?"였지만 아픈 이에겐 그런 케어가 필요하다는 걸 나도 잘 못하는 입장에서 또 한번 깨닫는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필요한 걸 요청했다. 그래봤자, "물 더 갖다주라.", "창문 좀 닫아줄래?" 였지만 부탁에 인색한 성격이라 물어봐주지 않으면 표현하지 않는다는 것에 놀랐다. 자신의 욕망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 아프니까 그렇게 되더라. 학습된 기질을 깨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가족으로부터 만들어진 나가 아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새로운 나를 학습해 만들어왔다고 생각했지만 그 모습이 가족으로 들어왔을 때 발현되지 못하는 기분. 그건 아마 내가 내 아이덴티티를 적극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또 인정받지 못한다고 생각하기에 굳이 이야기하지 않는 것과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여러모로 요즘은 재독립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강하게 한다. 그런데 어디에 가서 살지 너무 고민됨. 하지만 예산에 맞추면 이런 고민은 하등 쓸모가 없어지겠지. 올 해 말까지 이사할 지역을 정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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