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유를 알긴 아는데..
지난달부터였을까. 왠지 모를 무기력함과 우울감에 시달리고 있다. 친구를 붙잡을 만큼 심각하게 우울한 건 아니지만 또 그렇다고 내비두자니 내 디폴트 감정이 0이 아니라 -가 될까 봐 잡아야 할 것 같다. 문제는 이 부정적인 감정의 원인과 해결책을 깔끔하게 잡아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거를 해볼까, 저것을 해볼까 해도 그저 잠시 이 감정을 잊게 해 줄 뿐, 나의 전반적인 감정을 업시켜주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러다 어제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급히 점퍼를 꺼내 입고 집 앞 벤치에 앉아서 멍 때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그냥 나는 지금의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거구나.'
세상엔 행복할 수 있는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는 것 같다.
하나는 자신을 사랑해주는 타인이 있어 행복해지는 사람과, 다른 하나는 스스로가 사랑할만한 사람이어야 행복을 느끼는 사람.
나는 후자인가보다. 나르시시즘이랑도 좀 다르고 자격지심이랑도 조금 다르다. 스스로에 대한 어마어마한 기대치가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또 평균 이상은 돼야 할 것 같고 그런, 어릴 때부터 큰 실패도 성공도 없이 자란 사람의 평범한 결과일까.
생각해보면 내가 행복했던 시기에는 난 항상 어떤 자신이 있었다. 공부를 해야 할 때는 나름 공부를 잘한다는 자신, 연애를 할 때는 후회하지 않게 해 봤다는 자신, 일을 할 때는 또 남들보다는 빠르게 적응해 간다는 자신. 그런 의미에서 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불만, 불편을 하는 사람보다는 듣는 쪽에 가까웠다. 듣고 토닥토닥해주는 역할. 나는 그래도 여유가 있으니까라는 생각.
그렇게 어제가 됐고, 오늘이 됐다. 난 여전히 듣는 편이고, 친구들은 나를 자존감도 자존심도 높은 사람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최근의 내 속내는 영 그렇지가 못하다. 10년 넘게 아무렇지 않았던 면도를 하다가 갑자기 입술을 잘라내고, 배달 온 국수를 뜯다가 국물을 허벅지에 다 쏟아버리고, 생각해보니 10cm의 '그게 아니고'가 된 것 같다.
'나의 가치'에 대한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나쁜 편은 아니지 않아 라고 내심 자부했던 '나의 가치'가 그게 맞나? 내심 무시하던 사람들에 비해 내가 그렇게 뭐가 낫나?
오늘도 뭐 하나에 5분 이상 집중 못하는 나를 보며, 몇 시간이고 그 자리에서 열심히 공부하던 고등학생 때의 내가 차라리 그리워지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