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절제 미복원 결심
2023.12.18.
뼈스캔 검사만 남기고 저명하신 에스 병원 에이치 선생님을 다시 알현했다.
"사이즈가 크네요. 4.8 센티미터라서 전절제 하셔야 합니다. 복원하실 거죠? 보기 숭하니까..."
만졌을 때는 암덩어리가 작았는데 MRI를 찍어보니까 예상외로 컸던 것이다. 그사이 빨리 자란 거냐고 물으니 그런 건 아니라고 한다.
복원은 고민이었다. 병원에 오기 전날만 해도 복원은 하지 않겠다 생각했는데 의사 선생님이 복원을 수순으로 생각하시니 '해야 하나' 싶었다. 복원에 대해선 아직 결정을 못했다고 하니까 성형외과 선생님과 상담 후 결정하셔도 된다며 진료를 마무리했다.
성형외과를 당장 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성형외과 스케줄은 다음 주로 잡혔다.
고민에 휩싸였다.
복원은 신체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얘기도 있었는데 에이치 선생님은 '보기 흉하니까'라고 말씀하셨다. 복원을 안 하면 몸에 안 좋다는 말은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 병원 복도에서 1시간 정도 고민하고 박풀고갱과 의논해서 복원을 안 하기로 했다. 다시 진료실 앞으로 가서 간호사 선생님에게 말씀드렸더니 진료실로 다시 불러줬다. 무슨 말이 오고 가긴 했는데 잘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건 에이치 선생님의 친절하지만 무심한 한마디.
"잘 될 거예요."
진료실을 나와 수술 날짜를 잡는 좁은 사무실로 들어갔다.(사무실이 정말 좁았다.)
"2월 7일 입원하셔서 2월 8일 수술하실 수 있는데 설 연휴예요. 괜찮으시겠어요?"
"더 좋죠 뭐."(야호! 시월드에 안 가도 된닷!)
"근데 왜 복원을 안 하세요? 아직 젊으신데? 요즘은 70대 분들도 하시는데..."
그러게... 왜 복원을 안 하겠다고 결심한 거지?
조직 검사 결과 유방암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유방암 선배인 친구가 복원수술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 줬는데 그때 이미 복원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을 했었다. 10여 년 전만 해도 달랐다.
2009년 혜화동에 있는 직장을 다닐 때 근처 수영장에서 아침 수영 강습을 받고 출근을 했었다. 샤워를 할 때 보니 왼쪽 가슴을 절제한 분이 있었는데 나에게 대입해 보니 상실감이 몰려왔더랬다.
10여 년이 흐른 지금의 나는 한쪽 가슴 없이도 살 수 있을 거 같았다. 흔들렸던 건 행여나 후회를 하게 될까 봐였다. 복원 수술은 절제와 동시에 하는 것이 가장 좋다. 절제 후 마음이 바뀌어 복원하려고 하면 이미 조직이 굳어서 훨씬 어렵다고 한다. 나라는 사람은 전절제 후 복원을 안 해서 후회가 되더라도, 나중에 성형외과에 가서 복원할 사람이 절대 아니다. 다만 샤워할 때마다 후회하겠지. 후회가 깊은 성격이니까. 그게 걱정이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전절제 후 복원 안 한 케이스를 검색해 보니 검색에 걸리는 게 없었다. 복원을 한 케이스는 많이 있었는데 그중 '킨토'님의 블로그가 큰 도움이 되었다. 글에 재치와 유머가 있었다. 30대에 유방암에 걸려 에스 병원에서 수술 받았다고 하는데 전절제 후 복원한 가슴 사진까지 올려주셨다. 감사합니다, 킨토님!
복원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자기 살로 빈 부분을 보충하는 것과 보형물을 쓰는 방법이 있다. 킨토님은 뱃살로 복원을 하셨는데 수술 시간이 10시간에 달했다. 수술 후, 배 사진까지 올려주셨는데 '기왕 하시는 거 옆구리살은 왜 그냥 두셨지?'라고 자학개그를 하셔서 웃음을 주셨다.
킨토님 블로그를 통해 복원은 수술 시간과 입원 기간이 두 배 이상 길고, 수술 후 유방외과와 성형외과 진료를 둘 다 해야 한다는 것, 유두와 유륜 복원은 별도로 해야 된다는 것을 알게 되니, 복원을 안 하기로 한 나의 결정이 내게 정말 맞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스신화에는 가슴이 활을 쏘는데 방해가 된다고 오른쪽 가슴을 잘라냈다는 아마존이라는 여전사의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아마존은 ‘a(부정)+mazos(가슴)’, 즉 ‘가슴이 없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 옛날에 그런 일이 정말 있었는지 없었는지 알 수는 없으나, 나도 오른쪽 가슴이니 곧 아마조네스의 일원이 되는 건가?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