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에 내는 뿌리의 길

산수유

by 서휘

산아래 2층집에 살았던 적 있었다. 뒷산엔 두릅이 지천이었고 마당엔 사시사철 계절을 대표하는 꽃부터 이름 모를 들꽃들로 날마다 새로운 생명들을 만나던 집이었다. 그때 나는 산수유라는 꽃나무를 처음 알게 됐는데 봄을 가장 먼저 알려온다고 했다.


이 꽃을 피우려고 겨울 내내 땅속으로 길을 냈을 뿌리를 생각하다 몸이 아파왔다. 마치 내가 뿌리가 된 듯한 고통. 그러나 알 수 없는 그 무엇의 힘이 나를 견디고 버틸 수 있게 해 주었다. 뿌리가 내 몸으로 길을 내는지 내가 뿌리가 되어 땅속으로 길을 내는지 알 수 없는 고통을 느끼다가 그 단단한 땅도 나의 가늘고 연약한 잔뿌리들을 위해 길을 내 줌을 보았다.


생에 충실하다는 건 그런 것. 나의 가느다란 숨소리마저도 알아차리며 길을 내주는 생 앞에 눈물 나게 감사한 것이다.


축복처럼 내 생에 노란 산수유가 폭죽을 터트렸고 나는 이 시를 썼다.



산수유



/ 정온유




가장 먼저 봄을 알린 산수유 꽃망울이


햇살을 하나씩 발등으로 떨굽니다


지나온 추운 겨울이 기절하듯 들어가고,


땅속으로 아프게 길을 내는 봄


꼭 다문 작은 입술 보고서야 압니다.


상처가 만들어낸 길,


환장하게


노.오.란.

keyword
이전 11화이곳과 저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