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지 교사

by 미니힐

대학 졸업 후 몇 개월 만에 나는 또 무너지고 말았다. 취업 준비 과정에서 패배감, 두려움, 정체성 혼란을 겪으며 날마다 울며 밤을 지새웠다.


이 거대한 세상 속에서 아무것도 아닌 나.

쓸모없는 사람처럼 느껴지는 나.

할 수 있는 것도, 좋아하는 것도 없는 나.


고작 몇 개월간의 방황인데 그 환경이 그 상황이 내 마음속 깊은 믿음마저 흔들어버렸다. 그 당시에는 내가 좋아했던 것도, 나의 꿈도 생각나지 않았다. 거절당했다는 상처와 패배감에 사로잡혀 연민에 빠져 울기만 했다. 나란 인간은 왜 이렇게 쉽게 흔들리고 무너지는지...당시에는 눈에 보이는 상황에만 압도돼 두렵고 부끄럽기만 했다. 남들은 다 잘 취업하고 각자 자기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데 나만 너무 늦은 거 같고, 나만 아무것도 못하는 것 처럼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날 학습지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나의 공개 이력서를 보고 면접을 한번 보러 오라고 한 것.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직종이었지만 당장의 무료함을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에 일단 면접을 보러 가기로 했다. 면접장인 지부장님은 나를 마음에 들어 하셨고, 바로 합격!


나의 첫 직장생활이 시작됐다. 그것은 바로 학습지교사! 미취학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가끔 초등학생 아이들까지 국어, 논술, 독서 지도 수업을 하게 된. 졸지에 선생님이 된 것이다. 다행히 적성에 맞았던 건지 아이들도 좋아하고 학부모들도 나를 좋아했다. 수업 외에 와서 책을 읽어달라든지, 과외수업을 따로 해줄 수 없는지 문의가 들어왔다.


짧은 시간이지만 좋은 수업을 하고 싶은 마음에 집중력이 짧은 아이들의 흥미를 끌기 위해 구연동화, 짧은 콩트, 율동과 재밌는 제스쳐 등을 열심히 준비했다. 그야말로 아이들을 위한 쇼쇼쇼! 너무 열심히 한 나머지 3개월에 한 번씩은 병이 나고 말았다. 집집마다 돌아다니는 방문 수업이었기에 몸 관리도 잘해야 했는데 목도 자주 아프고 힘이 달렸다.


재정적으로 정서적으로 여유가 생기고 안정기에 접어들자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내 꿈은 뭐였지?’ 그제야 나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영화과를 졸업하고 영상제작사에 들어가 시나리오, 대본 등 글을 쓰고 싶었다. 어렸을 때부터 작가가 되고 싶은 꿈이 있었는데 대학진학, 취업, 돈, 여러 걱정 속에 파묻혀 내 꿈은 하얗게 잊혔던 것이다. 다시 내 꿈을 찾고 도전하고 싶었다.


학습지 교사는 그만두어야 할 것 같았다. 회사에 말을 했지만 여러 아이를 가르치는 업무이다 보니 다음 선생님이 오기까지 수업을 계속 진행해달라고 했다. 사실 당장 일을 정리하고 싶었다. 당시에 몸도 힘들고, 그 상황에서 빨리 나오고 싶었다. 하지만 회사는 다른 선생님을 빨리 연결해주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도 계속 ‘좀 더 해달라. 며칠만 더 기다려라.’라는 말뿐. 이러다가 계속 몇 달을 붙잡힐 것만 같았다.


결국 회사에 더 이상 일을 못 하겠다고 통보하고, 당분간 하지 못하는 수업은 내 월급에서 수업비를 보상하기로 했다. 원하는 대로 그만두게 되었지만 아이들에게 학부모에게 미안하고 죄송했다. 그리고 내 후임 선생님이 인수인계를 제대로 받지 못해 고생할 것은 생각하니 걱정이 됐다. 생각해보니 가르치던 아이들과 마무리 인사도 제대로 못 하고 나왔었다. 며칠 동안 밥도 잘 못 먹고 잠도 못 자고 책임감 없는 내 모습에 자책하며 괴로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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