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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들래 Oct 06. 2024

시부야 명소, Lion

고전음악 감상실, 어쩌면 하루키도 다녀갔음직한 공간!

  늦가을 일주일간의 도쿄여행 중 꼭 가보고 싶었던 공간에 다녀왔다. 복잡한 시부야 거리를 따라 걷다가 골목 속에 고요하게 숨어있던 고전음악감상실 Lion으로 향했던 날의 발걸음을 추억해 본다.


  역사가 느껴지는 건물이었다. 아마 1925년이나 그 이전 주택이겠지. 그 공간을 개조해서 음악감상실이 된 건지, 아니면 처음부터 음악감상실로 건축한 건지는 모르겠다.


  고전음악 감상실 라이언, 사자 모양 문장은 카페 주인이 직접 디자인한 거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이 공간의 역사와는 좀 무관해 보이는 이쁘장한 젊은 청년이 안내를 한다. 2층으로 가고 싶다고 하니 약간 비밀스러워 보이는 문 쪽으로 안내한다. 문을 열고 계단을 오르면서 문득 안국역 사거리에 위치한 브람스 2층으로 오르는 좁은 계단이 떠올랐다.


  2층으로 오르는 계단 입구 카운터에 감성 돋는 주문 쪽지 같은 메모가 잔뜩 쌓여 있었다. 2층에 오르자 비밀스러운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층고가 낮은 공간은 왠지 다락방스러웠다. 1층을 조망할 수 있는 난간에 서서 아래층을 내려다보니 장엄한 스피커와 오디오기기, 무수히 쌓여있는 LP와 CD는 또 다른 장관을 연출했다.

그 풍경 앞에 서 있노라니 나도 모르게 70년대 말 80년대 초 명동 필하모니와 에로이카, 종로의 르네상스 같은 곳에서 음악 감상했던 추억이 샘솟았다.


  계획 같아서는 4~5시간 음악 속에 푹 젖어 들 요량이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담배 냄새가 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라이언에서 나는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워낙 낡은 건물이라 단순하게 외부에서 새어 들어오는 연기이려니 했다. 설마 요즘 세상에 실내 흡연이 가능한 곳이 있을 리가 없잖아, 완전 내 혼자 생각에 빠져 그 역한 연기를 참아내고 2시간을 음악 속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실내를 둘러보았다. 아뿔싸, 이 공간의 주 고객층은 시니어들이었다. 그들을 위해 1층은 각 테이블마다 재떨이가 비치되어 있었다. 모두 담배를 피워 물었음은 물론이다. 가슴이 철렁했다. 이 공간에 오래 머물긴 힘들겠구나 싶어서. 


  하루 전에만 왔어도 온종일 바흐의 음악을 들었을 텐데. 방문한 날은 귀에 익지 않은 낯선 곡들로 채워져 있었다. 착석하면 메뉴판과 함께 그날그날 선곡 표가 프린트된 자료집을 한 장씩 나눠준다. 고전적이고 레트로한 엘피판과 음향시설로 듣는 음악메뉴판인셈이다.


  내가 있던 2층은 금연석 같긴 했으나 글쎄 손님이 많을 때는 그곳에서도 피워댈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뭔가 배신당한 느낌이었다. 도저히 그 연기가 견딜 수 없어 속상한 마음을 접고 2시간 만에 그곳을 벗어날밖에.

사실 스피커를 향해 비치된 모든 의자들 역시 1926년부터 사용한 걸까? 쿠션감이 완전히 사라진 푹 꺼진 좌석에 앉아 4~5시간을 견딘다는 건 어쩌면 고문일 수도 있었다. 고전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단 10분도 견디기 힘든 공간일 수도 있었다.


  아날로그 감성, 엘피판, 역사가 느껴지는 대형 스피커와 실내 분위기에 아무리 마음을 빼앗겼다 해도 2시간 이상은 고통이었다. 무척 아쉬웠다. 처음 발걸음 하기 전까지만 해도 도쿄를 여행할 때면 라이언에 자주 발걸음 할 것 같았으나 흡연 가능한 공간이라니. 그저 2시간 견디어냈던 공간으로 추억하게 될듯하다.


  문득 지난여름 헤이리 카메라타에서 음악을 즐겼던 추억이 떠올랐다. 그래 엘피판 감성에 젖고 싶으면 헤이리 마을로 달려가자. 내 젊은 날의 역사와 어깨를 나란히 했던 종로 고전음악감상실 르네상스에 대한 노스탤지어가 밀려왔다.


   "에트랑제들이여... 당신들의 낙원 르네상스에서..."

  베토벤 운명이 울리면 열정적으로 지휘했던 전혜린은 곡이 끝나면 위와 같은 쪽지와 담배를 돌렸던 장소, 정경화와 정명훈 남매가 일요일마다 음악 감상하며 연주 기법을 익혔던 곳, 그러나 70년대 산업화 물결 속에 밀려 83년 폐업 위기에 처했지. 그러나 르네상스는 우리 모두의 고향으로 절대 문 닫게 할 수 없다는 단골들의 성화로 인해 87년까지 유지됐지만 결국 문을 닫고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모든 게 궁핍했던 시절이었으나 정신적 풍요로움을 느끼고 낭만을 만끽했던 아지트. 아직도 그 공간을 추억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만나서 추억을 공유하고 싶을 만큼 그리운 공간이었다.


  라이언 고전음악감상실에서 느낀 게 있다면 너무 쉽게 사라지는 우리들의 문화 공간들이다. 그에 반해 도쿄는 자랑스럽다는 듯, 언제 시작한 상점인지를 상호에 자랑스럽게 공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솔직히 그게 너무 부러웠다. 도쿄 일정 마지막 날, 하루 종일 비가 내렸음에도 도쿄대 캠퍼스를 둘러보고 지하철역을 향해 걷다가 역사와 전통이 그대로 묻어난 와인 전문점을 만났다. 와우~ Since 1751 와인 전문점이다. 놀랍다. 몇 대에 이어 온 가업일까?


  조만간 대학로 학림에 가서 창가에서 바라보는 상징적인 백양나무를 바라보고 싶다. 담배연기 없는 쾌적한 공간에서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클래식에 침잠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한국이 좋은 이유, 금연공간이 철저하다는 점이다. 일본은 은근 실내 흡연 공간이 많았다. 바리스타가 있는 좁은 카페나, 음식점이나, 음악감상실이나, 거기에 거리 아무 데서나 흡연하는 사람이 많아서 걷다가도 숨을 잠깐씩 참아야 하는 괴로운 시간이 많았다. 부러운 점도 많았지만 단점도 있기 마련이다. 담배 문화만큼은 우리가 선진국, 그들은 후진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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