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여행 중, 꼭 다녀오고 싶었던 곳 '광주극장' 앞에 섰을 때의 감동이라니. 복잡한 골목에 위치해 있어서 주차 문제가 걱정됐지만 극장 바로 옆에 임시 무료주차장이 있어서 어렵지 않게 주차하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광주극장 앞에 섰을 때의 기분을 뭐라고 표현할까? 그저 눈시울이 시큰했다.
광주극장은 국내 유일한 단관, 즉 스크린을 한 개만 갖춘 극장이다. 인천의 애관극장이 멀티플렉스로 바뀐 지 오래전이고, 서울 단성사는 폐관됐다. 이런 상황에서도 1935년 개관한 광주극장은 한국 극장 역사에서 독보적 존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광주시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광주극장 앞에 서 있으니 그 공간이 무척 자랑스러웠다.
70년대 후반 종로 일대에 위치한 피카디리, 단성사, 할리우드 극장 매표소에서 티켓을 끊고 입장했던 시절이 순식간에 내 곁으로 찾아온 느낌이랄까? 아직 매표소가 존재하는 극장이었다. 매표소 여직원에게 광주 여행 중인데 영화를 관람할 시간은 없고 영화관 내부를 구경하고 싶다고 하니까 흔쾌히 둘러보라고 한다.
1,2층을 둘러보는데 <국도극장>과 <버텨내고 존재하기> 영화 속 장면이 자연스레 떠오르기도 했고, 이렇게 클래시컬한 공간의 존재가 아직 버티고 존재하고 있다는데 깊은 감동이 밀려와서 울컥했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버텨내고 존재"한 사물의 "그림자들" 앞에서 우리는 멈춰야 한다. 버텨내고 존재한 사람들의 예술 세계는 경이로웠다. 영화 <버텨내고 존재하기>는 음악을 만드는 사람의 얼굴과 공간을 담아낸다. 90년간 관객을 맞이한 매표소와 상영관, 영사실과 계단 그리고 복도가 주무대다. 영화를 사랑하는 뮤지션들은 버텨내고 존재한 흔적들을 관람객에게 강요 없이 전달한다. 버텨내고 존재하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다정하게 음악으로 쓰다듬는 영화다. 광주극장을 견학한 후 관람해서인지 영화는 두 배의 감동을 선사했다. 영화는 꾸준히 관심을 받고 있기에 상암동에 위치한 한국영상자료원에서도 여러 차례 상영했다. 더욱이 영화 속 뮤지션들이 직접 영화관에서 라이브로 음악을 들려주는 이벤트도 즐길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광주극장 다녀온 추억은 긴 생명력을 유지했다.
극장 바로 옆 영화가 흐르는 골목에서의 시간은 또 어땠나? 와, 영화를 사랑하는 누군가가 이런 골목을 조성했다는 것이 그저 고맙고 감사했다. 예매 중, 암표, 대한늬우스, 심야상영, 일반, 조조할인, 예매 중, 절찬상영 중, 도둑영화, 관람석, 근일개봉, 매진 등... 추억 돋는 단어들 앞에서의 가슴 뭉클함이라니.
시네필이 사랑한 감독과 그의 영화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에릭 로메르, 오즈 야스지로, 짐 자무쉬... 내가 사랑한 감독은 누구더라?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우디 알렌, 홍상수, 신카이 마코토...
내 인생의 영화는? 전망 좋은 방, 다가오는 것들, 보이후드, 4월 이야기,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스트레이트 스토리... 광주극장 뒷골목에서 버라이어티 한 영화의 세계 속으로 빠져들었다. 계속 점프하면서 피렌체에서 런던으로, 다시 파리로 갔다. 미국 텍사스와 위스콘신으로, 도쿄와 홋카이도로, 다시 뮌헨과 베를린으로 종횡무진한 여행이었다.
심심한 일상을 살고 있는가? 찬란한 영화 속으로 여행을 떠나보라. 영화 같은 삶을 살고 있는가? 그렇다면 조용하고 심심한 영화 속으로 여행을 떠나라. 영화는 일상이고, 우리의 일상이 영화가 되는 시간을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