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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색고양이상점 Jun 27. 2024

스스로를 인정할 수 있나요?

완전한 인정.

 5월 25일에 명상일지를 쓴 후에 명상을 하면서 이렇다 할만한 진전이 없이 답보 중이었다. 명상을 하면서 나아가기도 하고 좌초하기도 하면서 일렁였던 감정의 변화가 미미했고, 새로운 인식의 지평이 열리지도 않았다. 다만 명상을 하는 중에 특정 단계에 들어서면 가슴이 답답했고, 며칠 동안 계속되었지만 아직 그 구간에서 어떤 의식의 전환이 보이지는 않았다. 그저 며칠이 지나고 나서 답답함이 사라졌을 뿐이다.


 오늘 명상을 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텅 비어서 넓디넓은 무한한 '나'의 상태에 의식이 한동안 머물러 있었다. 갑자기 무한한 지평이 열린 것은 아니고, 그동안 마음의 어떤 지점들을 경유하면서 인지 된 부분들이 협력했다. '나'라는 말을 듣고도, 머릿속에 어떤 이미지도 떠오르지 않게 된 경지. 머릿속에 그려지는 모든 것은 과거라는 자각. 단어를 들으면 마음에 그 단어가 품고 있는 이미지나 느낌이 떠오르기 때문에, 말한 대로 내 마음이 이루어진다는 자각. 모든 기억의 결과로 내 행동패턴이 정해진다는 자각 등등이 한데 어우러져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무한한 나'의 상태에 서서 의식과 마음작용을 이리저리 둘러보았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이 상태에서는 지나간 어떤 사건이 불러일으킨 감정이나 생각이 내 마음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았다. 과거의 나는 현재의 나와 전혀 다른 사람이라는 확실한 인지 덕분이다. 더불어 명상하는 중에 머릿속에 떠오르는 어떤 생각이나 마음에서 일어나는 어떤 감정들이 내 것이 아니라는 확실한 마음이 들었다. 그것들 역시 과거의 결과물이며 명상 중에 숨을 내쉬고 들이마시고 있는 '나'와는 전혀 다른 것들이라는 인지 덕분이다. 어떠 사건을 생각할 때 그 사건을 보고, 해석하는 '나'는 진짜 '나'가 아니라는 자각이 들었다.


 이런 자각이 쏟아지자 자신감이 넘쳤다. 평소에 내가 아등바등 지키고자 했던 나의 모든 모습들을 완전히 포기할 준비가 되었다. 스스로를 방어하거나 항변할 필요도 없다고 느꼈다. 스스로 미흡하다고 생각하는 모습도, 잘났다고 생각하는 모습도 내 모습이 아님을 자각했다. 사실, 스스로 미흡하다고 생각하거나 잘났다고 생각하는 모습은 오롯이 내가 스스로를 보는 시선이 아니고,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를 통해 내게 자리 잡은 내가 아닌 자들의 목소리일 경우가 많다.


 이제는 하얀 도화지인 나를 마주하고 다시 처음부터 써 내려가야 한다.


그래서 어떻게 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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