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딸, 단둘이 도쿄 여행 3일 차
튼튼이의 이번 여행 목표는 확고했다.
바로 시부야 파르코 백화점 6층에 위치한 닌텐도 샵에 가는 것.
여행 3일 차인 오늘(사람 없는 월요일)은 드디어 닌텐도 샵에 가는 날이었고, 튼튼이는 아침부터 들떠있었다.
사실 닌텐도 샵이 도쿄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용산 아이파크몰 닌텐도 샵 굿즈가 더 싼 거 같기도 하다.) 인형 몇 개 살 목적이었음에도 이렇게까지 기대하는 이유는 처음이기 때문일 것이다.
처음 경험하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과 기대가 주는 떨림
'난 그 떨림을 느껴봤던 것이 언제였을까..'
아이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행복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모든 것이 새로웠던 시절을 떠올리다 보니 갑자기 한국에도 파르코 백화점이 있었다는 기억이 되살아났다.
예전 한양 쇼핑센터(현 압구정 갤러리아 백화점 서관) 옥상에서 놀이기구를 타던 시절, 동쪽에 새로 짓는 백화점(현 갤러리아 동관)의 이름이 파르코였다.
나름 고급 백화점을 표방하고 런칭했던 것 같은데 어정쩡한 포지션 속에서 갈 길을 잃다가 훗날 갤러리아 명품관으로 이름을 바꿀 무렵 자리를 잡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혹시 그때 일본 파르코(Parco) 체인이 한국에 들어왔던 건가라는 의문이 생겨 찾아보니 철자가 다르다.
한국은 Parko였구나 ㅎㅎ
각설하고,
월요일의 닌텐도 샵은 비교적 한산해서 여유롭게 둘러볼 수 있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5층에 위치한 팝마트 입장을 위해 길게 늘어선 줄이었다. 일본 쇼핑 문화의 상징과도 같은 파르코 백화점에도 중국 문화의 물결이 넘실대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격세지감마저 들었다.
닌텐도 샵에 들어선 튼튼이는 신이 나서 이것저것 살피기 시작했다. 한국 판매 가격과 비교해 가며 야무지게 쇼핑을 하는 걸 보니 '많이 컸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싸다고 좋아하고, 처음 보는 굿즈라며 좋아하는 모습에 마음 같아선 다 사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는 법.
정해놓은 예산 안에서 몇 개의 인형과 굿즈를 산 튼튼이의 입은 찢어졌다.
파르코 백화점에는 아빠가 좋아할 만한 물건을 파는 매장도 있었지만, 그곳을 둘러보려고 할 때면 튼튼이는 지루해하는 모습을 티 냈다. 아무리 딸 바보라고 해도 이건 좀 아니다 싶었다. 이런 상황이 자꾸 반복되면 난 재미가 없어질 테고, 그럼 딸과의 여행을 기대하지 않게 될 것이 아닌가.
이건 튼튼이에게도 불리한 시그널이었기에 경고를 했다.
"너 자꾸 이러면 아빠 혼자 여행 가고 싶을 거 같은데 괜찮겠니?"
경고 메시지는 성공적이었던 것 같다. 이후 튼튼이의 아빠를 위한 배려지수는 많이 올라갔다.
여유롭게 카페에서 커피도 마시고, 아빠가 좋아하는 시계도 잠시 구경하고, 점심 식사도 하고 , 시부야 스크램블 교차로의 엄청난 인파에 놀라기도 하고 나니 이만하면 됐다 싶었다.
시부야엔 내가 좋아하는, LP를 틀어주는 킷사텐이 있었지만 튼튼이를 데리고 가기엔 여러모로 흥이 안 날 거 같아 포기하고 하라주쿠로 향했다.
월요일이었음에도 하라주쿠의 인파는 엄청났다. 아기자기한 샵들을 둘러보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려던 나의 계획은 초입에서 무산되었다. 대충 몇 개의 상점을 구경하고 나니 벌써 지치기 시작했다.
대만 버블티 전문점 Xing Fu Tang(행복당)에서 튼튼이가 좋아하는 버블티를 마시며 좀 쉬려고 해도 매장에 앉을자리가 없었다. 쉴 곳을 찾을 수 없었던 오사카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악몽이 떠올랐다.
어쩔 수 없이 테이크아웃하여 길거리 그늘에 앉아 처량하게 버블티를 마시고 있자니 '어?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홀로, 또는 친구들과 올 때와 왜 이렇게 다른 상황이 펼쳐지는지...
아이 위주의 여행이기 때문일까?
이유야 어떻든 하라주쿠를 빨리 벗어나자는 것에 빠르게 합의한 우리는 일단 지하철로 향했다.
어디로 갈까?
다이칸야마 츠타야를 가고 싶었지만 많이 걸어야 한다는 것이 부담되었고, 에비수 가든 플레이스에 가자니 이대로 하루 일정이 끝날 것 같았다. 튼튼이는 힘들었는지 숙소에 들어가서 좀 쉬자고 하였다.
그래 힘드니까 일단 쉬고 보자.
쉬다가 저녁에 숙소에서 가까운 오다이바에 가야겠다 싶었다.
튼튼이의 이번 여행 버킷 리스트엔 타코야끼 맛집에 가는 것이 포함되어 있었기에 오다이바는 좋은 선택지라고 생각했다. 예전(7~8년 전쯤) 좋았던 기억도 있었기 때문이다.
버스를 타고 오다이바로 가는 길에 창밖으로 보이는 야경은 멋졌다. 기대를 품고 버스 정류장에 내릴 때까진 좋았는데 버스 정류장 풍경이 영 이상했다. '어? 왜 이렇게 황량하지?'
오다이바가 한물갔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이 정도였다고? 월요일 저녁이라 더 한 건가?
으스스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튼튼이가 물었다. "여기 왜 이렇게 사람이 없어?"
이럴 때마다 당황스러운 아빠는 말이 길어진다. 아이가 신나 하는 모습만 보고 싶은 마음이기 때문이다.
"월요일이라 그런가? 건물 안에 들어가면 별천지가 펼쳐진단다." 등등의 구차한 말을 내뱉으며 발걸음이 빨라졌다.
건물 안엔 꽤 많은 사람이 있었지만 활기를 잃고 쇠락한 느낌만은 분명했다. 예전의 힙한 느낌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래도 푸드코트를 가득 메운 타코야끼 식당들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튼튼이의 목적은 맛있는 타코야끼였기 때문이었다.
목표지향적 성격은 양날의 검과도 같다.
주변을 돌아보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싶은 동반자를 들들 볶아 피곤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이런 경우엔 별 볼일 없는 주변을 돌아보지 않고 직진하기 때문에 상대방 마음의 짐을 덜어준다고 해야 할까.
결과적으로 튼튼이는 타코야끼를 먹으며 인생의 버킷리스트를 하나 이룬 것에 대해 대단히 만족해했다. (사실 별로 맛있지는 않았다.)
그래도 오다이바의 야경은 멋있었다.
오늘의 추억, 아빠와 함께 즐겼던 풍경이 인생을 살아갈 힘의 한 조각으로 남길 바랄 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