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의 특권

배우기를 다시 배우기

by 나나

모비딕 읽기 챌린지 9회차

기간 : 9월 18일~9월 21일

분량 : 107장까지 (문학동네 일러스트판 714쪽)

소감 : 고래 치수 같은 거 궁금한 적 없었어...





나는 지난번 연재글 말미에 아래와 같이 썼다.


목숨을 담보로 한 포경선에 올라 고래를 향한 호기심을 전력으로 채우는 그의 얼굴을 보면, 나는 내가 알고자 한 것을 위해 나 자신을 어디까지 내던져봤는지를 돌아볼 수밖에 없다. 내심 껄끄럽기만 하던 주인공과 모처럼 가까워지는 순간이다.


어쩌면 이것이 내가 모비딕을 읽으며 가장 많이 실감하는 내용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나는 이슈미얼이 일반적인 덕후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는 스스로를 지칭하여 “나 같은 고래 저술가”라고 말했으며, 현재 하고 있는 일을 “사전 편찬”이나 “논문을 쓰는 과정”이라고 표현했다. “리바이어던을 내 손으로 직접 다루어보겠다고 약속”한 뒤 몸소 바다로 나와 “리바이어던의 역사를 연구”하고 있는 것이다.


“‘영원’에 대해 소논문”을 썼다거나 대학 교수와 친구라는 대목에서도 짐작했지만, 그는 취미나 호기심만으로 고래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지 않다. 백과사전처럼 지루하다고 느껴지던 부분은 실제의 백과사전이었다. 그렇게 말해도 틀리지 않을 정도의 전문성을 겸비하고 있었다.


열혈 덕후가 전문적이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슈미얼은 지나치게 전문적이다. 선원 생활의 경험을 학술적으로 기록할 수 있을 만한 능력치가 그에게 내재해 있다.


이후부터 고래에 대한 서술은 관찰과 경험 그 이상의 무게를 지닌다. 그 모든 것을 근거로 한 연구의 결정으로 읽힌다.


요나의 특권을 취하고 싶은 그의 심리를 이해한다. 요나처럼 어른 고래의 피부 깊은 곳까지 뚫고 들어가 보는 것은 앎을 삶으로 사는 인간의 갈망일 수밖에 없다.


고래의 내장 기관을 알기 위하여 고래에게 먹히기.


무언가를 알아낸다는 것은 그만한 각오가 바탕이 되어야만 가능한 일일 테다. 그런 일을 당하고도 무사히 살아남을 특권이 우리에게도 요나처럼 주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한편으로는 그런 특권 따위야 아무려면 어떠냐 하는 마음이 있기도 하다. “살아있는 것들 가운데 가장 커다란 생명체의 척추도 결국에는 순진한 동네 꼬맹이들의 장난감 신세가 되고 마는 것(694쪽)”을.


사는 동안 전력을 다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오늘은 독서모임 친구들과 민주화운동기념관을 다녀왔다. 성해나의 소설집 『혼모노』에 실려있는 「구의 집: 갈월동 98번지」를 읽고 나서다.


그 소설에는 남영동 대공분실을 설계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인간을 위한 공간을 만들겠다던 건축가가 완성한 고문실. 공포의 집약체.


7-80년대 민주화 운동에 대해서라면 나도 꽤 많은 정보를 알고 있었고, 공부하기도 했다. 박종철 열사가 숨졌다던 대공분실 509호는 영화나 여러 매체를 통하여 여러 번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실제 그곳을 방문하고 보니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은 모두 빈약한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느꼈다. 어떤 앎은 완성되지 않는다. 발을 내딛고, 몸을 들이밀기 전까지는.


전신을 세차게 떨고 나서야 비로소 발음되는 지식이 있다.


모비딕을 읽기 시작한 후로 배우는 것을 다시 배워야 한다는 생각을 부쩍 많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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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진도 체크


은윤슬 93장 저는 오늘 드디어 따라 잡혔나!


다들 하선하셨나 봐요. 후후. 이해합니다. 독파하기 쉬운 책은 아니었죠. 저도 어서 끝내고 안 벽돌인 책 읽고 싶어요. 하지만 그러려면 일단 지금의 벽돌을 깨야만 하는 것입니다. 다음 주면 모비딕 챌린지도 마무리가 될 것 같아요! 스치는 관심이라도 좋으니 마지막까지 함께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한 줄 읽고 인증하기도 괜찮아요. 한 페이지 읽고 마음에 들었던 문장 1개 뽑기도 괜찮습니다. 책이란 것을 꼭 다른 사람들의 속도와 방식대로 읽을 필요는 없으니까요. 제가 그 부분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했어야 했는데, 많이 늦어버렸습니다. 후후. 다음 챌린지 때는 꼭 미리 알려드릴 것. 이렇게 또 배우고, 저는 이만 자러 갑니다. 모두들 밉지 않은 월요일을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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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