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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와 모과 Jun 10. 2024

즐기는 자가 승리한다

저희 집은 식물이 많습니다. 

남편은 꿀벌처럼 부지런히 화단을 가꿉니다. 

시들시들 죽어가던 식물도 남편 손에만 들어가면 싱싱하게 살아납니다. 

열 손가락이 다 초록색이거든요. 


남편은 아침에 눈을 뜨면 화분부터 살핍니다. 

새 잎이 나왔는지, 벌레는 없는지, 흙은 마르지 않았는지 확인합니다. 

식물이 자라면 큰 화분으로 바꿔줍니다. 

영양제를 주고 해충제를 뿌립니다. 

연약한 식물에 지지대를 세우고 꺾꽂이를 합니다. 

과일에서 나오는 온갖 씨앗은 화단에 묻어 싹이 나기를 기다립니다. 

몇 년이 걸리던 개의치 않습니다. 

깻잎을 키워 깨를 일일이 손으로 딴 뒤(50알 정도) 미니 절구에 갈아보기도 합니다. 


식물에 관심이 없다던 남편이 어쩌다보니 식물 전문가가 되었습니다. 

식물과 사랑에 빠졌기에 식물 뒷바라지를 귀찮아하지 않습니다. 

물주고 환기 시키고 벌레 잡는 건 식물 성장을 위한 필수 과정이기에 기꺼이 그 일을 합니다. 

새 잎이 나고 식물이 자라는 걸 보면 뿌듯한 마음이 들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감당하는 거죠.


창조 활동도 마찬가지입니다. 

작품을 만들며 힘든 시간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그 과정도 창조를 완성하는 일부라 생각하고 즐길 수 있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교향악단 악기 중 오보에가 있습니다. 

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부속품 리드(reed)가 필요합니다. 

갈대가 원재료인 리드는 오보에 음색을 좌지우지하는 중요한 부품입니다. 

연주자의 입 모양과 주법이 모두 달라 오보에를 불려면 리드를 직접 만들어야 합니다. 


오보에 연주자는 자신만의 리드를 만드는데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매일 리드를 깎아야 합니다. 

리드는 온도와 습도에 민감해서 연주 장소에 따라 딱 맞는 리드를 찾는 게 쉽지 않다고 합니다. 

리드 케이스에 몇 십 개의 리드가 들어 있어도 당일 연주에 사용할 수 있는 리드는 한두 개에 불과하다고 하네요. 

오보에를 연주하려면 평생 리드를 깎아야 하는데 그 과정이 너무 괴롭다면 오래 지속할 수 없겠지요.


사진가가 사진을 찍을 때 카메라 셔터 속도는 1초를 125로 잘라 나눈 125분의 1초입니다. 

셔터를 누르는 그 짧은 순간 뷰 파인더를 통해 원하는 감정과 정서를 모두 담아야 합니다. 

그 찰나의 순간 햇빛, 바람, 비, 눈, 사람, 건물, 사물을 나만의 시각으로 담아내려면 얼마나 많은 사진을 찍어야 할까요? 

얼마나 많은 기다림이 필요할까요? 

즐기는 마음이 없다면 한 장의 사진을 위해 기다려야 하는 물리적 시간을 견디기 힘들 겁니다. 


창조를 할 때는 언제라도 실패를 할 수 있다는 마음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창조를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만들어 보세요. 

창조를 하는 내내 괴롭고 힘들기만 하다면 그만두는 편이 나을지도 모릅니다.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는 첫 소설인 <낙원의 이쪽>으로 문단의 주목을 받으며 미국에서 손꼽히는 젊은 작가가 되었습니다. 

그러다 1925년에 세 번째 장편소설인 <위대한 개츠비>를 출간하였는데요. 

초기작으로 유명세를 얻은 그는 이 작품이 좋지 않은 평가를 받을까봐 전전긍긍 하였다고 합니다. 

예상대로 문학계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위대한 개츠비>는 전작의 반도 팔리지 않았습니다. 

좌절한 그는 괴로워하다 1940년 마흔네 살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퍼 리는 1961년 <앵무새 죽이기>로 퓰리처상을 받으며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올라섭니다. 

그 후 50년이 넘도록 그는 어떤 작품도 발표하지 않았습니다. 

사망 1년 전인 2015년이 되서야 <앵무새 죽이기>의 초고 형태인 <파수꾼>을 발표한 것이 전부입니다. 

단 한 번의 성공과 명성이 작가에게 큰 압박감을 주었을 겁니다. 

하퍼 리도 피츠제럴드처럼 다음 작품이 이전 작품보다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부담감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신혼 때 일 년 동안 월간 가족 잡지를 발행했습니다. 

잡지 제목은 ‘소풍’이었습니다. 

이달의 추천 도서와 영화, 이달의 예술가 소개, 저 집 소식이 담겨 있었습니다. 

칼럼은 제가 썼고 4컷 만화와 편집은 남편이 맡았습니다. 

완성된 잡지는 스캔 하여 문서로 바꾼 뒤 가족과 친구들에게 메일로 보냈습니다(정말 용감했네요). 

둘 다 대학원 공부를 시작하면서 월간 잡지 만들기는 막을 내렸지만 다른 형태의 글쓰기는 계속되었습니다. 


자판기 커피와 카페 커피 맛을 비교해 보자는 남편 제안에 주말마다 자판기와 카페를 찾아 다녔습니다. 

카페 30곳을 방문하여 커피를 마시고 글을 썼습니다. 

남편은 30곳의 자판기 커피를 마시고 그림을 그렸지요. 

글과 그림을 모아 부크크라는 자가 출판사에서 책을 내기도 하였는데요. 

많은 시간을 쏟고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작업이었습니다. 

보상도 없고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활동이었습니다. 

글 쓰고 그림 그리는 행위가 즐거웠기에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출판사에 원고를 보내 봐야겠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습니다. 

어설픈 글을 쓰며 문장을 갈고 닦은 시간이 있었기에 수 년 후 책을 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날은 남편이 라면 서른 개를 정해 그림을 그리고 시식기를 써보자는 제안을 하더군요. 

둘이 머리를 맞대고 신중하게 라면을 선정했습니다. 

라면 역사를 조사하면서 우지파동에 대해 알게 되었고 너구리와 제 출생연도가 똑같다는 사실도 발견했습니다. 

아빠가 처음 라면을 맛본 때가 중학생이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요. 

1960년만 해도 라면이 귀한 음식이라 엄마가 라면 한 봉지에 미역과 소면을 잔뜩 넣어 끓인 후 친오빠들과 함께 나눠 먹었다는 추억도 듣게 되었습니다. 


이런 건 제가 라면에 대해 쓰기로 마음먹지 않았더라면 평생 알지 못할 이야기였는지도 모릅니다. 

쓸데없는 활동일수도 있지만 저희는 작업을 하며 꽤 즐거웠습니다. 

남편은 라면을 서른 개나 맛볼 수 있다며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릅니다. 

다 쓴 글과 그림을 모아 <둘이서 라면 하나>라는 제목으로 브런치에 올렸는데요. 

나중에 이 원고가 당첨되어 책으로 나왔으니 꿩도 먹고 알도 먹은 셈이죠.


 화가 앙리 마티스는 일흔이 넘어 결장암에 걸렸습니다. 

수술을 받았으나 탈장이 생기는 바람에 13년 동안 거의 침대에 눕거나 휠체어에서 작업 했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그는 카탈로그 종이를 오려 작품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말년에 그가 종이로 만든 작품은 단순하면서도 밝은 느낌을 줍니다. 

그의 육체는 고통 받고 있었지만 작품에서는 기쁨과 생동감이 느껴집니다. 

마티스는 질병에 걸렸지만 침착하고 평온한 마음을 유지하며 창작을 이어가다 생을 마쳤습니다. 

창조하는 행위를 즐겼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창조 하는 시간은 남들과 전혀 다른 시간을 보내는 순간입니다. 

창조 시간은 순수한 놀이의 시간입니다. 

삶의 복잡함을 잊는 시간입니다. 

창조의 기쁨을 알게 되면 필연적으로 따르는 고통을 견딜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창조 결과를 걱정하기보다 과정에 몰입한다면 창조가 좀 더 즐겁게 느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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